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 고관절 수술 때 박아두었던 철심을 빼기로 했다.
고관절 수술했을 때 7시간 걸린다고 해놓고 실제로 9시간이 넘어서 회복실로 올라와 마음 졸였던 기억에 재차 물어보니 철심 빼는 건 매우 간단한 수술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고관절 수술 이후에 꼬박 2년을 치열하게 재활해서 제법 잘 걷고 있으니 철심을 뺀들 무슨 일이 생길까 싶었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철심을 빼고 나니 또다시 첫 수술 이후처럼 못 걷게 되었다. 그동안 고관절에 박혀있던 철심 덕분에 다리가 잘 버틸 수 있었던 거였다. 2년 동안 죽어라 치료실 다니며 열심히 치료해서 겨우 독립 보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더니 철심 하나 뽑았다고 아이는 다시 주저앉아버렸다. 지난 2년의 시간이 너무 억울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처음보다 상황이 나았다. 고관절 수술 이후엔 다리가 구부러지지도 않았었는데, 이제는 힘만 없을 뿐 휠체어에 바로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또 치료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지루하고 기나긴 그 길을 또 걸어가야 한다는 게 너무 무섭고 막막했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것뿐.......
땅에 발 딛는 것부터 다시 하나씩 차근차근 시작했다. 다행히 고관절 수술을 했을 때보다 회복하는 속도가 빨랐다. 다리 근육을 키우고, 힘을 기르는 운동을 참 열심히 했다. 워커를 의지해서 걷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다리에 힘을 주고, 바른 자세로 걸어야 한다며 잔소리도 많이 했다. 겨울방학이 길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6학년이 돼서 워커를 잡고 혼자 등하교를 할 정도로 다리 힘이 많이 생겼다.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물리치료는 계속 열심히 했다. 그대로 좋아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아이가 급성장기를 거치며 갑자기 키도 커지고 덩치도 커지는 걸 다리가 견디질 못했다. 무릎이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치료를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릎을 펴는 기구에 매달려있는 것이었지만 소용없었다. 무릎이 구부러진 채로 걷다 보니 점점 잘 못 걷게 되었다. 물리치료를 통해 좋아질까 싶어 일 년 가까이 치료실을 다니며 기다렸지만 점점 더 심해질 뿐이었다.
어느 날, 오랫동안 물리치료해 주시던 선생님이 무릎 펴는 수술이 있다며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하셨다. 장애인 이동지원 센터 차량으로 아이 혼자 치료를 다니던 상황이라 일부러 내게 전화를 주셨다. 삼성 병원 정형외과 진료받는 날, 선생님께 넌지시 여쭤봤다. 선생님이 바로 수술 날짜를 잡자고 하셨고 일사천리로 수술이 진행됐다. 그렇게 세 번째 수술을 했다. 중학교 2학년 봄이었다.
아이는 허벅지부터 발가락 직전까지 깁스를 하고 퇴원했다. 첫 수술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최소한 이번에는 대소변을 받아내진 않아도 되었다. 아이가 잠깐 혼자 앉아 있을 수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휠체어로 화장실까지 이동해 변기에 앉혀주면 용변은 스스로 봤다. 물론 뒤처리는 해줘야 했지만......
병원에서는 깁스를 풀고 다리를 땅에 디딜 수 있을 때쯤, 학교에 등교하라고 했다. 사실, 학교까지 데려다주더라도 화장실이 문제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집에서도 문제였다. 중학교 2학년인 아이는 예전에 할머니가 대소변 받아주던 어린 꼬마가 아니었다. 나와 남편은 계속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고, 할머니는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고 문의했다. 장애 5급이 경증으로 변경된 때였기 때문에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전화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상담원은 의외의 답변을 했다. 거동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게 판명이 나면 일시적으로 활동보조원을 지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며칠 뒤, 연금 공단 직원이 집을 방문했고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고 활동보조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직원이 직접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꼭 필요한 상황임을 알리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 그렇게 만난 활동 보조원은 경찰 출신의 남자 선생님이었다. 처음으로 활동보조 일을 시작하면서 얼마나 아이를 헌신적으로 돌봐주시던지 힘든 사춘기 시절에 그 선생님 덕을 참 많이 봤다.
1년 반이 지나고, 중3 겨울에 무릎 펴기 위에 박아 놓았던 철심 뽑는 수술을 한 뒤에 또다시 못 걷게 되었을 때도 덩치 큰 아이를 부축하며 재활 치료실과 학교를 데리고 다녀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장애아를 키우면서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게 없다고 투덜거렸었는데, 이때 도움받았던 걸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무릎 펴는 수술을 하면서 박아 놓은 철심 덕분인지 아이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드디어 무릎이 펴진 채로 걷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고관절 수술 했을 때도, 고관절에 박아 두었던 핀을 빼는 수술을 했을 때도 잘한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었는데, 무릎 펴는 수술은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수술하고 2년이 지나야 철심을 빼지만, 수술해 주셨던 의사 선생님 정년 퇴임이 얼마 남지 않아 수술한 지 1년 반 만에 급하게 날짜를 잡아 수술했다. 네 번째 수술이었다.
네 번째 수술 이후에 철심의 힘으로 견디던 무릎이 다시 구부러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살짝 구부러지면서 걷는 듯했지만, 꾸준한 재활과 운동으로 근육이 붙고 무릎이 펴져서 제법 잘 걸었다. 만 3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종아리도 제법 두꺼워지고 꽤 잘 걸어 다니며 생활하고 있다. 물론 뒤뚱거리며 걷는 건 결국 고치질 못해 아직도 많이 뒤뚱거리며 걷고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