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어 학습은 언어 외 문화 체득의 수단
영어에 심취해 있었던 대학 시절
영어가 아무리 취미였다지만 하다 보면 권태감이나 싫증이 들 때도 자주 있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나도 외국어를 배우는데 소진현상을 자주 겪었다. “이렇게 영어를 해서 무엇하려고 이러나?”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 때가 많았다.
여름방학이 되면 동료들은 산이다 들이다 하여 대학 생활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골방에 앉아 갱지에 빽빽이 쓴 볼펜 잉크가 도리어 손에 묻어나도록 영어 사전과 씨름하며 있었으니 때로는 스스로에게 한심하다고까지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종이에 써가며 외운 영어 단어가 기초가 되어 쌓인 영어 실력이 후에 제 값을 톡톡히 발휘할 줄이야…. 내가 영어에 심취해 있었던 대학 시절만 해도 미래에 글로벌 세상이 올 줄은 누구도 몰랐었다.
결국 대학에서 남이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영어를 취미로 만들었던 것이 나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되어 나의 개인이나 사회생활에서 뼈대가 되고 살이 되었다.
영어 배우기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
그래서 나는 내가 경험한 것에 비추어 지금 미래 학자들이 앞으로 변화될 세상을 예견하는 것을 믿는다.
앨빈 토플러나 롤프 옌셴, 그리고 존 나이스 비트와 같은 석학들이 내다보는 미래상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내가 영어를 취미로 할 때 미래에 글로벌 시대가 올 줄은 몰랐었다.
그런 경험칙에서 나는 지금 우리 사회의 지나친 20세기적 사교육이 지나고 보면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느낄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제는 꿈과 감성의 콘텐츠가 핵심이 되는 ‘드림 소사이어티’가 올 것이다. 또 앞으로 10년이 되면 현재에 배운 지식은 무용지물이 되어 새로운 것을 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미래학자들은 말한다.
물론 영어 배우기도 마찬가지 일 수도 있다. 미래에는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영어의 장벽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어를 배우는 것은 언어 자체에 앞서 두뇌가 활성화되고 글로벌 문화를 체득하는데 긴요해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입시 위주의 우리 사교육 열풍은 미래를 대비한 투자라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보면 오로지 현재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영어를 배우는 것도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영어 어휘력과 예문 활용에 집중
어쨌든 나는 대학생 때부터 영어 어휘력에 집중하여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어휘와, 또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단어의 폭이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리아타임스》를 보면서도 유익한 영어 표현이 있으면 그것을 익히느라 새까맣게 사인펜으로 몇 번이고 밑줄을 쳐가며 읽는 습관을 몸에 붙였다.
밑줄을 치며 읽어야 그게 내 기억 속으로 확실하게 들어올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습관은 버려지지 않아 지금도 중요한 표현은 몇 번씩 줄을 쳐가며 읽고는 한다.
한 번은 내가 살던 아파트의 경비원이 쓰레기로 버리려고 내어 놓았던 영자신문을 보고 왜 까맣게 신문에 줄을 쳐서 버리느냐고 물었다.
그분이 내가 영어 배우느라 그렇게 영어신문을 까맣게 줄 쳐가며 하는 줄이야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나는 어휘력을 갖추고 나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영영사전을 들춰보는 것을 지금까지 즐겨하고 있다.
마치 책을 읽듯 영영사전에서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표제어를 찾아 영어로 풀이해 놓은 것과 그 단어를 활용한 예문들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영한사전·영영사전 동시 사용 습관화
이것이 영한사전을 보는 것보다 두 배의 학습 효과가 있다. 물론 영어 초보자들은 기본적으로 영어에 조금 익숙해진 단계부터 가능한 일이다.
영영사전을 보게 되면 단어를 영어로 쉽게 풀이해 놓고 있어 영한사전에 나온 해석만으로는 그 속뜻을 충분하게 알 수 없는 경우에 아주 효과적이다.
그래서 나는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단어를 찾을 때 영한사전과 함께 영영사전을 같이 사용하는 것을 습관화하라고 권장한다.
설령 아는 단어라 하더라도 사전을 들쳐보는 습관을 들이면 영어에 더 많이 노출되는 기회가 되어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