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영어가 취미가 됐다"

- 내 인생의 여정을 함께해 온 외국어인 영어

영어 특기로 주요 언론사에 특채


1982년 나는 중앙일보에 경력직 특채로 입사하여 문화사업 부문을 맡게 되었다. 중앙일보에 들어가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영어 능력 때문이었다. 당시 국내 언론사 중에서는 중앙일보가 가장 문화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해외의, 특히 영어권의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국내에 초청하는 업무를 맡을 영어 잘하는 직원이 필요하던 차에 내가 공개모집을 통해 발탁이 된 것이다.


그때는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글로벌 환경이 아니어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찾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로벌 시대가 도래하기 전이니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사실 중앙일보에서 경력기자를 공채하는데 '영어 능력' 우대라는 조건으로 도전해 속된 표현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합격을 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그 이전 대학교 1학년부터 <코리아타임스>와 대학 영자지에 영어로 칼럼을 기고한 것을 복사해서 경력 증빙으로 첨부했으니 그 이상 어떤 서류가 필요했을 것인가. 영어 검증 제도가 없던 시절에 말이다.


지금이야 해외유학이다 연수다 하여 영어를 할 수 있는 젊은 세대들이 많지만 그때는 상황이 달랐다. 외국의 예술단이나 아티스트들을 초청하는 것이 대부분 일본의 기획사를 경유하여 이루어지던 때였다.


그것도 지금처럼 민간의 기획사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신문 방송사를 중심으로 해서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해외 아티스트들을 초청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당시는 아시아에서 일본의 공연시장 규모가 절대적으로 컸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의 예술단체나 개인 아티스트들을 초청하려면 일본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예술단이나 아티스트들을 한국에 초청해 봐야 고작 1~2회 공연을 하는 것에 불과해 일본의 거대 시장의 논리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의 원 매니지먼트사들도 아시아 시장을 잡고 있는 일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시장의 구조도 그렇겠지만 나보다 앞선 선배 세대들이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태여 영어를 써서 미국과 유럽의 매니지먼트사들과 직접 거래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영어를 할 수 있었던 내가 그동안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가게 된 것이다.

바로 <컬럼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Columbia Artists Management Inc.) <아이씨엠 아티스트>(ICM Artists Ltd.) <아이엠지 아티스트>(IMG Artists) <헤럴드 홀트>(Harold Holt Ltd.) <해리슨 패롯>(Harrison Parrott Ltd.) 등 미국이나 유럽의 세계적 기획사들과 영어로 직접 비즈니스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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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01116_111120223 - 복사본.jpg ◇ 문화예술기관의 CEO 시절 유럽의 유수 음대 학장과 교류협력서를 체결했다


영어는 내게 행복감을 주는 열쇠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영어를 사용하여 미국과 유럽의 매니저들을 직접 체계적으로 공략하게 된 것은 당시 신세대로서는 내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그전까지 주로 일본의 기획사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던 외국 오케스트라나 발레단이나 개인 음악가들의 한국 초청을 직접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유럽의 매니저들을 집중 이해시키며 설득해야만 하였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장문의 영어 서한을 우편, 텔렉스, 나중에는 팩스를 통해 보내야 했다.

어떤 경우에는 세계적인 예술단이나 음악가를 한국에 초청하기 위해 작성해서 보낸 영어문서가 단편소설 한 편 정도의 분량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나의 사회생활은 이렇게 영어를 주특기로 하여 시작되었다.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또 공공 문화예술기관 경영자(CEO)에 이르기까지 영어가 나의 주요 병기가 되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나의 습관이 형성되고 체질이 굳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어로 하는 일을 무조건 사랑해왔고 영어를 접하면 늘 행복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출세는 아니라 해도 성공은 누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언제나 감사해하고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독일의 물리학자 앨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은 행복의 열쇠가 아니다.

그러나 행복은 성공의 열쇠다.

만약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면

분명 행복할 것이다.”


어쨌든 주위 사람들이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지 않은 부담이기도 했다. 그냥 영어를 잘한다고만 여겨주면 좋겠는데 그것을 빌미로 기회가 있으면 영어 작문이나 번역을 부탁해 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영어는 나의 취미'가 된 것이다. 지금도 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영어를 "공부"한다.

내게 영어는 외국어이기에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과정이다. 냉정히 보면 공부가 아니라 핀란드의 국민들처럼 영어를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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