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선생님의 부고, 그리고 내 추억 창고
12시였나, 1시였나, 평화로운 일요일 점심,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노라면 TV에서 익숙하게 들려오는 실로폰 소리를 기억하시는지?
딩- 동- 댕,
이윽고 들려오는 더 익숙한 목소리가 전국~~~이라고 외치면, 많은 대중들이 노래자랑~!이라고 외치고,
트럼펫 소리가 리드하는 흥겹고 정겨운 악단의 연주 소리가 들리면,
내겐 마치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의 시작"을 알리는 마법의 종소리나 주문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았는데.
이젠 그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아쉽다.
오늘 아침 뉴스 속보로 송해 선생님이 별세하셨다고 한다.
전국노래자랑으로 최장수 MC로서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최고령 국민 mc였던 송해 선생님이었는데,
이젠 하늘에 별이 되셨고 그 소식이 내겐 마치, 또 하나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시그널같이 느껴진다.
불과 어제까지는 그저 내가 어렸을 적부터 진행하던, 지금은 바빠서 못 보는 프로그램으로 내 페이지에 적혀있었다면,
오늘은 그 문구를 수정선 두 줄로 슥슥 긋고 내 어린 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로 접혀서
현실 세계 페이지에서는 없어져 버린 것 같은 느낌 이라고나 할까.
우스갯소리로 일부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송해 선생님이 1등으로 꼽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요지인즉슨 90세가 넘어서도 꾸준히 돈을 벌어 오며 외부에서 밥을 잘 챙겨서 먹고, 게다가 지방 출장이 많아
집에 잘 들어오지 않기까지 하니 좋더라, 뭐 이런 시답지 않은.. 약간은 요즘 세대에서는 위험할 법한 그런 시시껄렁한 농담도 기억난다.
내 어린 시절 전국노래자랑은 사실 그렇게 유쾌한 프로그램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릴 때야 당연하지만 나랑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트로트를 부르며 시답잖은 장기 자랑을 하는데
재미있을 리가 있나. 지금이야 슈퍼스타 K..... 아... 이것도 이젠 지금이라고 하긴 세월이 좀 지났나?
아무래도 이것조차 트렌드가 지나버린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더 나은 노래 경연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겨났고,
이런 신세대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극적인 긴장감과 편집점 등이 있어 스릴 있게 보았다면
전국노래자랑은 송해 선생님의 편안한 진행이 마치 구수한 집밥스러웠다고나 할까.
사실 유쾌하지 않았던 본래 이유는 이 부분이 더 큰데,
그때는 전국노래자랑이 끝내야지만 KBS1 TV에서 만화영화를 틀어 줬고,
날아라 슈퍼보드, 은비까비, 배추도사 무도사, 2020 원더키디 등등 일요일에 오후를 책임져주는 만화가
전국노래자랑이 끝나지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1등 수상자의 앵콜을 무척 싫어했던 기억이 지금도 떠올라 큭큭 웃음이 나온다.
자칫 잘못해서 노래자랑에서 송년특집, 명절 특집 또는 몇십 주년 특집이 편성되는 날에는
어김없이 편성표에서 만화는 편집되어 없어져 버리고 유일한 낙이었던 만화 시청권이 사라진 나와 동생은
그저 상실감에 일요일 오후를 마룻바닥에 누워서 흘러가는 하늘 속 구름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새삼 돌이켜 송해 선생님의 부고 소식과 더불어 추억해보니,
그 어린 나날들이 그렇게 평화롭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더군.
송해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내 기억 속엔 평화로운 일상의 목소리로 영원히 남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