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한 걸음 더.
Some people, they’ll never accept him. But some will and he seems to find the good ones.
주의! 본 글에는 영화의 내용과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때로는 각자의 차이점 때문에 차별과 혐오에 휩싸여 괴로워하기도 한다. 나 또한 많은 시련들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수도 없이 괴로움의 늪에 휩싸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삶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 아픔을 나눌 다른 이와 함께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디즈니/픽사의 "루카"의 세계로 뛰어들어, 순수했던 어릴 적 마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다시 한번 돌아보자.
"인사이드 아웃", "코코" 등 디즈니 픽사에서 제작한 영화는 관람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기술력의 한계를 매번 뛰어넘는 혁신, 그리고 잊지 못할 감동과 교훈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루카가 픽사 영화의 팬으로서 거쳐가야 하는 하나의 관문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예고편을 보면서도 그저 귀엽고 발랄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일 뿐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열 번씩이나 극장으로 달려가고, 매번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루카"는 어떠한 내용이나 교훈을 제시하느냐고 이야기한다. 사실, 정답은 "너무 많아서 단순 명료하게 요약할 수 없다."이다. 영화의 시사점이 매우 많아서, 모두 이야기하려면 나와 함께 밤을 새워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하나를 뽑자면, "세상을 향한 당당함"이 있다.
바다 괴물인 루카는 인간들을 피해 물속에 숨어 산다. 루카의 가족을 비롯한 바다 괴물들은 인간들의 공격을 피해 깊은 바닷속에 자리를 잡고 살아간다. 대부분의 바다 괴물 들은 이러한 삶을 수긍하는 듯하다. 다만, 루카는 남들과는 달리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
사실, 루카는 물 밖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즉, 물에 젖지 않는 이상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카는 새로 사귄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우여곡절 끝에 인간 마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고군분투한다. 바다 괴물들에 대한 인간들의 혐오 때문이다.
혐오가 조성되는 과정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다른 존재와의 차이점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익숙하지 않음에 따른 두려움이 형성되고, 두려움을 촉발하는 요소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혐오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혐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방어의 수단으로써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는 공격의 수단으로써 사용된다. 이로 인해 결국 루카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마음에 크나큰 상처가 남는다.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향해 물 밖으로 나왔음에도 자유를 만끽하지 못한 채 자신의 비밀을 감추는 루카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파왔다. 그의 모습에서 주류 사회의 탄압으로 인해 자신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의 사회적 소수자들의 아픔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눈빛에서 나를 보았다. 다른 이들의 시선과 이로 인한 차별을 두려워하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의 자신을 보았다.
문화인류학에서는 문화 유형를 분류할 때, 사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향유하는 ‘주류 문화’, 일부만이 향유하는 ‘하위문화’ 그리고 하위문화 중에서 주류 문화에 의해 부정적으로 낙인찍힌 문화 유형인 ‘반문화’로 문화 유형을 구분한다. 반문화에 속하는 사회 구성원들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주류 문화를 얼마든지 향유할 수 있고, 주류 문화의 영화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회로부터 받은 부정적인 낙인을 안고 가야 한다.
우울증 환자가 반문화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규정한다면, 나 또한 루카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가 현재 많이 아프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닐 것이다. 건강 상태가 악화됨에 따라 반수를 하는 와중에도 재수학원까지 쉬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나의 의지가 부족한 것일 뿐, 나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치부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아프다는 것을. 수도 없이 찾아온 호흡곤란과 공황 증세는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몸의 반응이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결국에는 인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알려서는 안 됐다. 세상에서 바라볼 나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내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갈까 두려웠고, 세상으로부터 단절될까 두려웠다. 애써 더욱 밝은 척을 하고, 애써 주류 문화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더욱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힐 뿐이었다.
[스포일러 주의!]
결국 인간들은 루카의 비밀을 알아버리고 만다. 비를 맞아 괴물로 변해버린 알베르토를 구하고자 두려움을 무릅쓰고 비를 맞으며 자신의 비밀을 드러낸 것이다. 이를 통해 루카는 말해서는 안됐던 자신의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며, 당당한 개척자로서 살아갈 것을 선언한다. 루카는 더 이상 자신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정말 다행히도 루카의 친구 줄리아는 그의 곁에 함께한다. 모든 동네 주민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린 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의 나의 기억들을 찬찬히 톺아보았다. 아무리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하여도, 나의 아픔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된다고 믿어왔던 나는, 친구들이 나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눈앞이 깜깜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은 것 마냥 절실하게 나의 비밀을 숨겨왔다. 힘들게 사귄 친구들을 잃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있는 친구들은 그동안 나와 오랜 시간 함께 있어준 친구들이라는 점에서 나는 인생 최대의 베팅을 했다. 다행히도 나에게 돌아온 것은 상처가 아니었다. 오히려 친구들은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나의 곁에 있어주겠다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당장이라도 죽어버리고 싶었던 칠흑 같은 마음속에 스파크가 튀는 듯하였다. 영화 속 장면에 몰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죽어버렸던 불씨가 되살아난 듯하였다. 세상에 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노라 마음먹었다.
우리 아싸끼리는 돕고 살아야지.
-극 중 줄리아의 대사
물론, 누군가는 나를 여전히 근거 없이 비난하며 혐오할 것이다. 나를 유별나고 이상한 아이로 보는 시선은 20여 년 동안 지속되어왔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 같다. 나를 욕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고, 내 친구들 중에서도 나를 떠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내가 금세 우울감에 빠져 괴로워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아내는 노하우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루카를 위해,
Lu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