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밖으로 나온 루카와 알베르토에게 경의를 표하며.
주의! 본 글에는 영화의 내용과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루카는 현실 세계의 사회적 소수자를 상징한다. 주류 문화에 속하는 인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바닷속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며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숨어사는 루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를 마주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보일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공포 때문이다. 자신들에 대한 공격을 두려워하는 사회적 소수자의 공포는 물론이고, 주류 집단 또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질감에서 발현된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우리 사회 속 LGBTQ 공동체를 예로 들어보자. 이성애자가 주류에 속하는 사회 안에서 LGBTQ 공동체는 반문화적으로 규정되곤 한다. 자신들과 사뭇 다른 입장을 취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기독교 신자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일 경우에는 그들은 ‘병에 걸린 사람들’, ‘죄를 짓는 사람들’로 간주되어 핍박을 받곤 한다. 루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루카와 같은 바다괴물들은 채식을 하며,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바다 괴물이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믿으며 두려워하며, 혐오한다. 결국, 집단 간의 이질감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혐오 때문에 사회적 소수자들이 상처를 입게 된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피해자인 마냥 소수자들을 부정하는 잘못된 이론을 합리화하려든다. 이로 인해 소수자에 대한 이슈에 관심이 많지 않던 사람들도 잘못된 이론에 합류하여 소수자들에 대한 거센 탄압을 계속한다. 이로 인해 소수자들은 주류 사회속에서 소외되거나, 소외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살아가게 된다. 바다괴물이 인간으로 변한다는 영화의 설정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이를 주류 사회에서 탄압받지 않기 위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위장인 것으로 느꼈다.
영화 후반부에서 에르콜레의 방해로 정체가 탄로난 알베르토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낸 루카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던 루카의 모습은 사라지고, 세상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당당한 루카로 다시 태어났다. 영화에서는 루카의 진정한 모습을 사람들이 인정하면서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결말로 이어졌으나, 현실 세계에서는 이러한 해피 엔딩을 기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당함을 갖춘다고 해서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세상을 기대할 수는 없다. 여전히 사람들의 핍박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마음 속에 비수가 꽂히며 여전히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욱 당당하게 세상에 맞서야 한다. 우리는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니므로. 세상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우리의 방패로 막음으로써 시련들을 극복해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늘 다른 사람들과 대적하며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헤쳐나가야 할까? 지난 시간에 언급했던 극중 대사를 떠올려보자.
Some people, they’ll never accept him. But some will and he seems to find the good ones.
어떤 사람들은 저 애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어. 그리고 저 아이는 좋은 사람들을 찾는 법을 아는 것 같구나.
(브런치 LHS작가님의 번역을 인용하였습니다.)
영화 속 대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아니었나 싶다. 그 유명한(?) “Silenzio, Bruno!”보다도 더욱 인상깊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 옥죄어올 것이고, 혐오로써 우리를 대할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고 화합하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숨어있지 말고, 물 밖으로 나와 세상에 당당하게 소리치는 우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