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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사전 Nov 17. 2021

당황하다

동사: 놀라거나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

  해외여행을 가면 스마트폰 전원을 켜지 않는다. 전화통화는 물론이고 와이파이를 찾지도 않는다. 온전하게 내 시간을 누리고 싶은 마음과 복잡 다단한 인간관계를 벗어나고픈 욕망이랄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서 벗어나야만 진정한 여행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나조차도 이렇게 오랜 시간을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연락할 일이 생기곤 한다. 특히 돌아가는 비행기가 확정되지 않은 이번 여행은 핸드폰이 내 유일한 구원이 되기도 한다.


  네팔에서 전화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네팔 통신사인 N-cell의 선불식 유심카드를 구매하여 내 핸드폰에 넣으면 끝. 굉장히 간단하게 보이지만 일단 흔히 보이는 핸드폰 매장에서는 유심카드를 팔지 않았다. 카트만두에서야 여행객들이 많아 정보를 구할 수 있었겠지만 난 지금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훈련을 시작한 박타푸르에 있다.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문방구. 예전 공중전화 카드도 문방구나 버스 정류장 가판대에서 판매했음을 기억하자 웃음이 나왔다. 


  여기서 바로 유심카드를 샀다면 이런 글을 쓸 일도 없었으리라. 

  우선 영어 수준이 처참하게 비슷한 문방구 주인과 내가 어렵게 주고받은 정보를 종합해보면 일단 내 사진과 여권 사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네팔에서는 입장권 구입에 증명사진이 많이 필요하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갔던 터라 사진은 있었지만 여권을 복사할 복사기가 그곳에 없었다. 박타푸르 곳곳을 헤집으며 좀 커 보인다 싶은 건물은 전부 들어가 복사기를 찾았고 30여분을 넘게 돌아다닌 끝에 농기구를 파는 듯한 회사에서 사정사정하여 복사를 할 수 있었다. 직원에게 연신 미안함과 감사를 표하며 어렵게 얻은 사본을 들고 다시 문방구로 돌아가자 문방구 주인은 그때서야 비자도 복사를 해야 한단다. "아니 그럼 진작에 말을......" 한국어가 튀어나왔지만 다시 그 회사로 발길을 돌리고 있던 나는, 이번에는 아예 음료수와 한국에서 가져온 볼펜과 포스트잇을 아까 그 직원에게 건네주며 내 사정을 다시금 설명하고는 염치없는 복사를 할 수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여권과 비자 사본을 들이밀자 이번에는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하며 건네 준 종이에는 지금 묵고 있는 숙소의 자세한 정보와 구매 이유, 내 이름을 포함한 아버지와 할아버지 이름, 거기다 모든 이들의 고향과 계급을 적어야 하는 난관이 기다렸다.


  이제는 오기로라도 여기서 핸드폰을 개통시켜야겠다는 맘이 일었다. 반드시 여기서 보란 듯이 전화를 걸며 나가리라!

  한참을 걸어 다시 숙소에 들어와 직원에게 물어물어 정보를 기입했고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이란 본적을 알파벳으로 작성했으며, 네팔과는 조금 다르지만 대한민국 역시 경제적 신분, 계급 차가 뚜렷한 국가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마음에 '외국인'이라고만 적었다.


  천신만고란 단어가 절로 튀어나오는 상황에서 받은 유심은 그야말로 꿈만 같았다. 그 카드가 내 핸드폰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핸드폰 유심 사이즈는 마이크로 유심인데 받은 것은 그보다 1.5배는 더 컸다. 문방구 주인은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고 내 정신 회로는 핸드폰과 마찬가지로 OFF상태에 다다랐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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