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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사전 Nov 24. 2021

보시하다

동사: 자비심으로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풀다.

  네팔 어디에서도 사람이 모인 곳이면 돈을 달라는 아이들의 작은 손이 몰려든다. “one dollar”를 외치는 아이들의 큰 눈을 외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리 준비해 간 볼펜과 메모지를 나눠주거나 해당 지역 아동보호기금(유니세프)에 기부하는 것으로 마음 한편의 죄책감을 밀어둔다.      

  나는 여행자다. 아무리 그들을 이해하려 해도, 아무리 여기와 동화되려 해도 여행자는 잠깐 들렀다 떠나는 사람. 그 한정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느끼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 분명하다. 잠깐의 동요로 어설프게 베푼 내 동정이 이들에게 어떤 결과로 나타날 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무섭다.


  네팔의 1인 GNP는 현재 약 1,085$로(우리나라 약 3.4만$)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경작 가능한 땅이 국토의 1/5를 넘지 않으며, 주요산업으로 꼽히는 임업 역시 에너지가 부족한 네팔에서 연료로 쓰이며 대부분을 자국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기오염은 최악이며 숲이 파괴되어 심각한 침식현상을 겪고 있다. 

  그러다보니 관광산업의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외국 관광객들에 맞춘 편의시설과 숙박업, 기념품 가게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내 팔을 잡고 one dollar를 말하는 아이들 역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선뜻 돈을 주는 외국인들을 보고 그들이 느낄 굴욕감과 그것이 길들여져 또다시 외국인들을 찾는 악순환을 생각하면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임이 분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여행 서적 전문 출판사인 론리 플래닛이 아이들이 내미는 손을 뿌리치기 쉽지 않을 때 단순히 구걸에 대한 보상이 아닌 고귀하고 뜻깊은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바로 그 나라, 그 지역의 NGO리스트를 잘 정리해 놓은 것이다. 각 단체의 이름과 주요 활동, 위치, 기부 창구를 알려주고 있으며 나 역시 론리 플래닛을 통해 네팔 유니세프를 알았고 지금도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꼭 돈이 아닌 방법도 있다. 공정거래 물건을 구입하거나 학용품이나 문구류를 준비해서 아이들에게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크게 본다면 입장료를 꼬박꼬박 낸다거나 환경을 위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또한 책임있는 여행자의 자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난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했다. 당장 배가 고파 죽어가는 이에게 백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봤자 그는 곧 죽는다. 최소한 사람은 살리고 봐야 물고기를 잡든 산짐승을 잡든 할 게 아닌가. 하지만 캄보디아나 네팔 등 흔히 빈국이라 여겨지는 곳들을 여행 하며 기존의 내 생각은 참으로 오만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한낱 여행자 따위가 그들의 상태를 평가하다니.

  네팔의 어린이들이 무탈하게 자라길 바라며 다시 배낭 끈을 잡는다. 




 -보시하다: 여행하는 곳의 아이들을 위해 그 지역 NGO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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