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기형 May 03. 2023

클라이언트의 속마음을 읽어서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기

'일하는 사람의 생각'에서 발견한 문장과 시선 #1

얼마 전, 배우 이보영이 나온 드라마 '대행사'를 보았습니다.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이보영)이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오피스 드라마로 일하는 모습뿐 아니라 임원 간의 정치 싸움 등이 흥미로웠는데요.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우원그룹 기업PR 경쟁PT' 에피소드였습니다.  



회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기업PR을 진행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거라고 설명하며 고아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이유를 몰라서 다들 저렇게 새 날아가는 소리들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요, 왜 하는지를 모르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모르니까. 문제는 아는데 답을 모르니까 빙빙 돌아가는 거죠." 이 대사를 들으며 생각난 건, 광고인 박웅현과 디자이너 오영식의 창작에 관한 대화를 담은 책인 '일하는 사람의 생각' 이였습니다.


광고는 언뜻 보면 새로움과 창의성의 영역으로 생각되지만, 결국 광고 역시 문제해결이며 이를 위해서는 클라이언트의 속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제가 어떤 건축가를 만났는데 그분 말씀이, 건축주가 외국의 건축 책을 가져오면서 "이 책에 나온 것과 똑같이 해주세요"라고 요구했을 때 그 요구대로 해주면 '이류'라는 거예요. 그 책을 가져온 동기, 진짜 욕망이 뭐인지 헤아려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고수는 클라이언트의 속마음을 읽어서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실현시켜 준다는 거예요.


또한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것이 핵심이라고요.

RFP가 왔을 때 문제가 명확한 경우도 있고,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했잖아요. 대부분 경쟁 PT를 하다 보니 우리의 능력이 어디서부터 나와야 하냐면,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명확하지 않은 RFP를 보면서 이 사람들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진심은 이런 거야, 이걸 한 줄로 썼지만 사실은 이게 더 중요한 거야, 이렇게 잡아내는 것, 우리의 경쟁 PT 승부처가 거기서부터 시작되죠.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고객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한 제안을 할 때 뿐 아니라 보고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의 속마음과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문제를 접근하고 해결책을 찾아서 설명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제약사항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하, 이것도 안 되고 저거도 하지 말라고 하면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은데, 저자들은 이런 제약이 오히려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좋은 환경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픽 디자인에서 '그리드'라는 게 어떻게 보면 틀이 짜여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그리드가 오히려 굉장히 많은 창의성을 부여해주기도 합니다.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축구 경기에서 경기장의 선이 있지 않으면 오히려 창의적인 경기력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요. (...) 화가들도 대부분 사각형 안에 그림을 그려야 하지요. 디자인을 할 때도 주어진 조건에 가장 적합한 걸 찾아내는 게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아닐까 해요. 자율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을 전개하는 거지, 마음대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 제한 사항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정제하는 것이 좋은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같은 창작자들이 하는 일은 문제 해결이거든요. 해결책을 조건 속에서 잘 찾아낼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의뢰가 들어오면 조건을 먼저 물어봅니다. 예산은 얼마가 있느냐,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성향이 있느냐, 이렇게 제한의 벽을 먼저 쌓아요. 어떤 벽이 뚫고 나갈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벽을 고정 변수로 잡아야 합니다. 고정 변수가 곧 디자인에서 말하는 그리드가 되지요. 그다음은 전술이고요. 주어진 예산 안에서, 주어진 기간 안에서 어떤 의사 결정을 거쳐야 하는가, 사용 가능한 리소스가 무엇인가, 이렇게 고정 변수를 잡고 거기서 경기를 시작해야 하는 거지요.


오늘도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상사의 신뢰와 서포트를 얻기 위해, 오래 고민하며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전 IBM CEO 버지니아 로메티의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모두들 파이팅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는 그들이 미래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의해 정의된다. 따라서 당신의 경쟁자가 아니라 클라이언트에 의해 당신을 정의하라.
매거진의 이전글 전문성이란 결국 내 일을 내 언어로 정의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