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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현 May 20. 2021

"나"라는 흔적을 온전히 남길 수 있을까

피어오르는 향을 앞에 두곤, 국화꽃 사이에서 무덤덤한 표정을 짓는 증명사진. 외계인 침공이나 인류의 멸절을 야기하는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 마지막 인사를 위해 찾아와  사람들에게 남기는 나의 마지막 모습일 것이다. 종이컵에 소주를 채우며 무슨 얘기를 할까. 나와 있던 에피소드를 얘기할 수도 있고 족을 걱정할 수도 있고 본인들의 집값이나 주식 얘기에 몰두할 수도 있다. 떠나간 사람에 대한 기억은 각자 만의 방식으로 기억하다가 오래 지나지 않아 소각되고 만다. 짧은 조각으로 남는 기억의 파편에 존재하는 나는 과연 나를 제대로 설명할지 미지수다. "걔가 덩치가 있는 편이었지." "무슨 소리야, X 했는데." 과거의 누군가가 대화 주제가 되었을 때도 눈에 보이는 유형적인 요소마저 의견이 엇갈린다. 하물며 성적 취향, 정치 성향, 취미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인 요소는 오죽할까.


몇 해 전, 전 직장에서 부사수 격이었던 동료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당시 이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아직 새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던 중이었다. 밤에 찾아간 장례식장에선 사내 프로필로 올려둔 사진을 마주했다. 겨우 서른 남짓한 나이. 상주석엔 온 기운이 빠져버린 그의 어머니와 동생이 힘들게 지키고 있었다. 빈소를 가득 매운 그의 친구들은 멀뚱히 앉아서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전 직장 동료들은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장례를 돕고 있었다. 모두가 놀라 슬퍼할 겨를도 없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한밤 사이에 눈을 감았다고 한다. 출근하라고 깨운 아침에 그는 눈을 뜨지 못했다. 그렇게 떠나갔다.


개인적인 친분이 쌓여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 팀에서 그의 첫 사회생활을 이끌었던 선배였고 조만간 만나 의례 이직한 사람들이 하는 겸손한 자랑을 할 참이었다. 내 결혼을 축하해줬던 것처럼 언젠가 그의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내가 받은 것보다 더 많은)을 건네고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연락이 닿지 않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한 관계가 갑작스러운 부의금을 내며 끝나버렸다.


그의 죽음은 내게 오랫동안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가까운 가족의 죽음보다 내 또래의 남성에게 닥친 삶의 종료가 더 큰 공허함을 울렸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도 다가올 수 있는 위기로 느껴졌고 삶의 허망함에 대해 마주하기 시작했다. 내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무엇이 가장 억울할지 고민을 했다.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실체이므로 내가 느낄 고통은 없어 보였다. 나와 가까운 가족이 느낄 슬픔이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본인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다. 어쩌면 슬퍼할 것이라는 가정도 나의 오만함일 수 있다. 여행이나 음식을 더 경험하지 못한 게 억울할 순 있겠다는 생각도 났지만 백세 인생을 살아도 아쉬울 수밖에 없는 영역으로 남는다. 고민 끝에 가장 억울하게 느낄 수 있다고 떠오른 건 생뚱맞게도 나에 대한 왜곡이었다.


연예인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니지만, 넓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나라는 피사체가 어떻게 찍혀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나를 민주당 열혈 지지자로 알고 있기도 하고 높은 수준의 미식가로 오해하기도 하며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내는 잘생긴 걸로 착각하고 있다.


나의 생각, 가치관을 나 스스로 정리해서 남겨두겠다는 결심을 했다. 브런치가 유용한 툴인지는 모르나 네이버 블로그는 UI가 마음에 안 들었고 이글루스는 사용자가 없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봐주길 바라진 않는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남기는 '흔적'이 온건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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