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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Jul 10. 2023

이놈의 모기 어디 숨었지?



“앗! 따가워!”


왜 이리 가렵지? 잠결에 다리를 하늘로 쳐들고 벅벅, 양쪽 팔도 긁적긁적, 도저히 못 견디고 일어났다. 불을 켜고 살펴보니 모기란 놈이 팔다리를 다섯 군데나 물어뜯고 줄행랑을 쳤다. 아~ 다행이다. 불을 켜기 전에는 모기가 물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이게 뭐지? 왜 이러지? 라고 뇌가 빠르게 가동하고 있는 걸 느꼈다. 거실로 나와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3시 20분. 물린 곳은 부어오르고, 가렵고 미치겠어서 약을 바르며 ‘이놈을 잡고 말리라' 눈을 부릅뜨고 벽과 침대 주변을 살폈다.


올해 들어 처음 당하는 거여서 더 약 올랐다. 모기란 놈은 왜 나만 물까? 같은 공간에서 자고 있는 남편은 도통 물지 않는다. 남편 살에 코를 처박아줘도 물지 않을 것 같다. 속상하다! 왜 나만 물어뜯는지. 

땀 냄새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샤워를 하고 자도 물리는 건 왜일까? 

어떤 날은 하얀 벽에 까만 모기 놈이 죽여 달란 듯이 붙어 있어서 통쾌하게 박살내고 편안히 잠들었는데 오늘은 아무리 찾아도 없다. 지능이 좋은 놈이면 동료들이 번번이 살해당한 하얀 벽이 아니라 어두침침한 침대 밑으로 도망쳤겠지. 두리번거리며 이를 갈다가 내 눈만 아프지 싶어 화장실로 갔다. 졸졸 나오는 소변 소리를 들으며 ‘에그~ 그놈의 모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만 낭비했네.’


'이 시간에 일어난 것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신호다'라는 생각에 말씀 묵상과 기도를 끝내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눈썹 주위가 지저분하다. 또 시계를 쳐다보았다. 4시 25분. ‘좀 더 잘까? 아님 눈썹을 다듬을까’ 마음은 생각을 하고 손은 가위를 집어 들었다. 다듬고 다듬었다. 

아! 양쪽 눈썹이 다르다.

‘이게 뭐람’ 펜슬로 눈썹을 그려 본다.

나는 왜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에 거울을 보고, 왜 눈썹은 만져서 기분을 망치는 걸까.


5시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새들 노랫소리가 기분 좋은 아침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일어난 김에 원고지를 놓고 책상에 앉았지만 한참을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불멍도 있고 물멍도 있는데 나는 글멍을 하고 있으니 이 무슨 조화일까? 머리가 하얗다는 말이 이런 건가보다. 장마로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집안은 습하고, 몸도 습하니 마음까지 가라앉는다. 그나마 생기 넘치는 새소리에 마음 달래고 있는데, 담배 피우러 나온 이웃 아저씨의 가래 뱉는 소리에 잠들어 있던 동네는 화들짝 놀라 자빠지고, 내 마음은 또 습하게 망가졌다.


요즘은 생각이 복잡하다. 암으로 고생하던 언니는 항암을 멈추고 요양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고, 오랫동안 직장에 다니던 남편은 자유인이 되었다. 그동안 일하느라 돌보지 못한 몸을 치료한다고 병원에 드나들면서도 이것저것 궁리하느라 머리가 터지겠지. 집에서 펑펑 놀 수만은 없고 몸을 움직이든 머리를 쓰든 할 일을 찾아야 할 텐데. 이제 매끼마다 식사도 챙겨야 하고, 아쉽다! 홀로 즐기던 나만의 시간은 이제 끝나는 걸까? 내 전성기는 이대로 끝인가 말이다. 뭐니 뭐니 해도 혼자 있는 시간에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한데.


밤새 피를 빨렸던 자리가 조금 진정이 되는 듯하다.

모기란 놈을 못 잡아 오늘밤이 걱정이지만,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하지 뭐.

하지가 지나 낮이 조금씩 짧아지고, 창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찌푸린 얼굴이다. 그 밑에 서 있는 커다란 회색빛 아파트는 아직 단잠에 빠진 듯, 불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새들은 여전히 지저귀고 날은 밝아오는데.


5시 50분. 이제 양치하고 따뜻한 물 한 컵을 마시자. 그리고 평소처럼 아침 준비를 하자.

출근할 사람이 없으니 게으름을 피워도 상관 없지만 그냥 부지런을 떨자.

새로운 일이 주어졌다. 퇴직한 남편에게 요리 수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있는데 우선 쉬운 것부터다.

라면 맛있게 끓이는 거랑 국수 삶고 씻는 거, 비빔국수 양념 만들기, 반찬 예쁘게 담기, 설거지랑 세탁기 사용하기, 그리고 밥 짓는 거, 찌개 끓이는 것도 알려 줘야겠다.

오늘 아침에는 샌드위치 만드는 수업이다.

"당신 왜 그래?" 이러겠지?

“왜 그러긴. 당신 시간 많고 할 일 없는데 요리 배워 둬야지”라고 해야지.

“하하 며칠 쉬다가 하지 뭐.” 또 이러면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세상에 사니까 안 돼”라고 할 테다.

남자들도 홀로서기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늦었다는 생각에 서두르게 된다.


어제는 장대비를 뚫고 운동 삼아 시장에 갔다. 언제나 복잡하던 재래시장이 한산하다. 지갑을 들고 손가락으로 물건을 가리키면 꾸러미는 자연스럽게 남편 손에 들려주는 상인들, 시간이 널널한 남편을 짐꾼으로 부려먹으니 마님이 된 기분이다. 그래도 애처롭게 보여서 적당히 장 보고 왔다는 걸 알까? ㅎ


6시가 조금 넘었다.

회색빛 사이로 한줄기 파란 하늘이 보인다. 이제 곧 아침 해가 활짝 웃겠지. 그리고 아파트 벽에 부딪쳐 새로운 활기로 하루의 시작을 알리겠지. 으흠~ 오늘 샌드위치 수업을 위한 준비는 강사가 해야겠고.

두 시간 넘게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뻐근하다. 일어서는데 여전히 "짹짹짹" 잠 깨우기 바쁜 새들의 날갯짓,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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