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 수업 1
지난 5월부터 복지관에서 한글교실 수업을 하고 있다. 한글교실 수업하시던 선생님이 아파서 그만두면서 내가 하게 되었다. 담당 복지사 선생님이 교육생들의 한글 수준이 중급 정도라고 했다.
나는 나름대로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했다. 수업 중에 짬을 내어 간단한 체조도 하고 동요를 부르기로 했다. 또 일기 쓰기도 하고 글쓰기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육생은 18명, 모두 여성 노인들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은 91세다. 고령의 나이에도 매우 정정하였다. 심지어 돋보기를 끼지 않고 책을 읽는다. 교재는 교육부에서 발간한 지혜의 나무 12다.
처음 몇 번은 탐색의 시간이다. 교육생의 수준을 알아야 교육생들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분이
"받아쓰기를 많이 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이분만이 아니라 다들 받아쓰기를 많이 하고 싶어 했다. 교육생이 원하거나 원하지 않든 받아쓰기는 필요하다. 첫날 받아쓰기를 할 때였다. 교재 중에 있는 어려운 낱말을 불러주었다.
교육생 중 여러 명이 교재를 보고 쓰고 있었다. 이건 받아쓰기가 아니라 보고 베끼는 것이잖나. 나는
"받아쓰기인데 왜 보고 보고 쓰세요?"
라고 물었다. 한 분이
"머리가 나빠서 안 보면 쓸 수 없어요."
라고 대답했다. 교재를 보고 베끼던 분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턱 숨이 막혔다.
"보고 쓰면 받아쓰기가 아니잖아요. 보고 쓰면 안 됩니다."
웅성웅성 불평이 쏟아졌다. 한결 같이 늙어서, 머리가 나빠서 안 보고는 못 쓴다고 했다. 나는 받아쓰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다니며 살펴보았다. 뒤쪽에 앉아있던 한 분이
"저번 선생님이 받아쓰기 못하겠는 사람은 보고 베끼라고 했어요. 그냥 두면 됩니다."
나는 그냥 둘 수가 없다. 받아쓰기와 보고 쓰는 것은 다른 영역의 공부다. 받아쓰기할 때 보고 베끼던 한 분이 내게 말했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못 써요."
"머리 나쁜 게 아닙니다. 머리 좋습니다. 글자를 배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요."
이 말을 마친 후 나는 앞에 서서 모두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머리가 충분히 좋습니다. 말을 잘 하시잖아요. 머리가 나쁜 사람은 말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글자를 잘 못 배웁니다. 여러분은 말을 아주 유창하게 합니다. 머리가 좋은 겁니다. 왜 말을 잘 하죠? 수십 년 말을 해왔잖아요. 그래서 잘합니다. 글자공부는 얼마나 하셨어요? 받아쓰기는 얼마나 하셨어요?"
모두들 말했다. "얼마 안 된다고."
" 좀 더 하면 됩니다."
라는 내 말을 교육생들은 반신반의했지만 받아쓰기 수업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다음 글에서 그 이야기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