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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an 15. 2024

무당벌레를 살피는 마음

그때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병설 유치원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다녔던 초등학교 정문에는 오래된 고목 한 그루가 있었고, 배에 구멍이 휑하니 뚫린 그 나무 양 옆으로는 무궁화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초등학생 눈높이보다도 아래에 있었으니까 아마 매년 가지치기를 해서 높이를 맞추었을 것이다.


학교 정문은 하교 후에 이런저런 이유로 교정에 머무르는 아이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눈높이가 맞아서 더욱 잘 보이던 그 무궁화나무들에는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벌레들이 보이곤 했는데, 학년이 꽤 올라가고 나서야 그게 무당벌레 약충이란 걸 알게 되었다. 무당벌레는 어린아이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곤충이지만 그 약충은 썩 유쾌하지 않은 외모에다가 무당벌레를 연상케 하는 구석도 없다. 아무튼 그것들이 자라 무당벌레가 된다는 걸 알았을 때에는 무척이나 놀랐다. 이 외계에서 온 듯한 생물체의 정체가 우리들의 친구 무당벌레였다니?


곤충세계에서는 비교적 깜찍한 외모를 갖춘 데다가 교육과정에서 일찍부터 대표적인 익충으로 소개되는 덕택에 무당벌레는 사람들의 호감을 두루 얻는 편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들에서 길에서 만난 무당벌레들을 어여삐 여겼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는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거침없이 무당벌레를 쳐내려는 손길을 막으려고 “무당벌레는 우리의 친구야!”라는 대사를 실제로 뱉기도 했었더랬다. 몇 년이 지나서 그 친구가 나를 놀리느라고 이 얘기를 꺼내기도 했으니까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러던 시절을 거쳐 지금에 와서는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든가 벌들이 사라지고 있다든가 하는 중요한 얘기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멀어 보이고 큰 일이라서 오히려 덤덤한 걸까, 베란다에 옹기종기 모여든 무당벌레만큼 작고 가까운 것들이라면 좀 달라질까.


몇 년 전 살던 집에 (생각해 보니 이것도 벌써 십 년쯤 된 일이다) 무당벌레가 월동한 적이 있었다. 무당벌레는 구석지고 바람이 안 드는 곳에 모여서 월동한다. 아마 그 해에는 내 방 베란다가 따뜻하고 좋아 보였나 보다. 겨울이 끝나고 베란다에 쌓인 짐들 속에서 무당벌레 몇 마리가 포르르 날아다니기 시작해서야 우리 가족은 겨울 내내 무당벌레와 한 집에서 지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죽은 곤충은 조금 무서워하는데, 대부분의 무당벌레가 잠이 덜 깼을 뿐 살아있단 사실이 다행이었다. 그 길로 나와 동생은 베란다의 짐을 치우고, 창문을 열고 무당벌레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어떻게 하면 무당벌레를 다치지 않게 내보낼까 하다가, 미술시간에 쓰던 붓을 몇 자루 찾아내서 한 자루씩 쥐고 창틀 사이에서 한 마리씩 무당벌레를 털어 냈다. 붓으로 살살 건드리자 포르르 날아서 창 너머로 사라지던 무당벌레들, 그리고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서 붓질을 했던 그 마음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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