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더위는 마라의 매운 맛으로 치료하는 거야
우리의 고난은 호텔에서 나와서부터 시작됐다. 공항 내 호텔인데 뭐가 문제냐고? 호텔과 공항 사이에는 약 3미터 정도의 출입구가 있고, 공항버스를 타는 출구로 나가려면 다시 이 출입구를 통해 공항으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도 짐 검사가 필요하다는 사실. 중국 대중교통의 짐 검사는 코로나 시절 국립중앙박물관 입장하던 시절의 짐 검사와 비슷해서 무서운 것까지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바깥에 사람이 많아지면 그냥 공항에 입장하는 것 뿐인데도 줄이 길어져서 8282국에서 온 사람 숨 넘어간다.
잠시 숨 넘어가는 시간을 가진 뒤 공항버스를 탈 수 있는 출구로 나갔다. 춘시루로 가는 버스는 1번 정류장에 있고 팻말도 아주 잘 보이고, 버스도 제법 자주 다니는지 아예 대기하고 서있었다. 버스 정류장 앞에는 아주 큰 QR이 있어서 스캔해서 표를 살 수 있다고 되어 있었… 지만! 그건 내국인 얘기고요!
실제로 내가 해보니 표를 구매하는 절차에서 전화번호 인증이 막혔다. 혹시 로밍해가서 현지면 +82-10으로 시작하는 번호라도 괜찮나? 싶었는데 얄짤없다. 매표소에 가서 팅부동을 외치며 핸드폰을 들이밀었더니 그분들도 같은 데서 막혔다. 결국 이리저리 우회로(?)를 알아보더니 반려인 폰에서 위챗 결제를 성공했고? 우리의 QR을 인식해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는 일반 좌석버스 형태고, 운임은 인당 15위안이다. 베트남 정도는 아니지만 판다 체질의 더위 타 인간(반려인)에게는 냉방이 약하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안전벨트를 안 매면 삐—- 소리가 난다. 그런데 버스에 탄 현지인들은 아무도 그 소리를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삐—— 소리와 1시간 20분 정도를 함께했다.
종점인 춘시루로 가기 한 정거장 전부터 누군가가 올라와서 청두 지하철과 여행지도가 인쇄된 전단지를 나눠주고, 이거는 원하는 사람만 받을 수 있다. IFS 판다 조형물 건너편에 내리면 여행사 전단지 나눠주는 사람들 때문에 거의 전쟁통이다. 무적의 팅부동을 외치다가 나중에는 전단지를 몇 개 받았다.
호텔 체크인은 3시지만, 밥먹기 전에 호텔에 짐을 맡기기로 했다. 니콜로 호텔은 IFS 쇼핑몰 안에 딱붙어있었다. 호텔 식당이 있는 2층과 1층, 7층에 연결된 출입통로가 있었고, 로비는 3층인 좀 특이한 구조다. 다만 초대형 쇼핑몰이 늘 그렇듯 쇼핑몰 내부 출입구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 바깥에 나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지만 날씨가 무지막지하게 더워서 그럴 수 없었다. 9월 중순인데요? 하지만 서울도 그 상태였으니 먼 사천 땅도 이상기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서울보다 온도는 좀 높고 습도는 약간 낮은 그런… 여행자에게 고통을 주는 날씨였다. 내가 뭐 이 날짜에 이럴 줄 알았냐고요.
호텔에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으러 건너편의 타이구리라는 쇼핑몰에 있는 티룸으로 갔다. 청두의 춘시루, 이 명동같은 곳은 스타필드 같은 쇼핑몰 건너편에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 규모의 쇼핑몰이 또 있다. 미슐랭 1스타를 받은 티룸이라는데, 청두에서 가장 비싼 호텔로 추정되는 the temple house라는 호텔 산하의 식당인 것 같았다. 이름은 谧寻茶室(成都太古里) 이며 모든 메뉴가 채식이기도 하다. 식사 메뉴를 시키면 반주처럼 개완에 든 차가 나온다. 물의 온도는 80도 정도로 뜨겁지 않고, 개완째 들고 마시고 있으면 서버가 물을 채워주는 방식이다. 우리는 2인 600위안 정도가 나오는 코스를 주문했다.
그러면 이렇게 예쁘고 맛이 좋은 식사가 나온다!
모든 음식이 좋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마파두부였다.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 나에게도 고통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매콤하면서 향신료의 조화와 감칠맛이 좋았다.
차가 맛있고, 반려인도 잘 마시길래 서버에게 어떤 차를 쓰냐 사고싶다, 라고 했더니 대만 왕덕전 계화홍차라고 했다. 너무 놀라서 이거 맞냐고 내 폰에 깔린 왕덕전 앱을 보여줬다. 청두 고급 찻집에서 대만차를 쓴다고요…? 티룸 점수 1점 감점….(농담입니다.)
왕덕전이면 잘 아는 브랜드지만 계화홍차가… 있었던가? 과연, 한 블럭 떨어진 곳에 왕덕전 매장이 있었지만 계화우롱과 장미홍차는 있되 계화홍차는 없었다. 꽃향이 나는 홍차인 것은 확실했기에 아쉬운대로 장미홍차를 사들고 나왔다.
점심을 먹으니 얼추 호텔에 체크인을 할 시간이 되어서 호텔에 다시 들어갔다. 사실 체크인 절차는 처음에 짐 맡기면서 이미 해놨고 1000위안의 엄청난 디파짓까지도 미리 결제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컨시어지의 이영표 닮은 직원분이 나더러 진짜 미쎄스 송이냐면서 (….) 헐레벌떡 엄청난 크기의 검은 봉투를 끌차에 끌고 나타난 것이다.
너무 놀란 나머지, 실없는 사람처럼 미친듯이 큰 소리로 웃어댔고 반려인은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했다.
알고보니 내 딴에는 배송 횟수를 줄인답시고 최대한 같은 상점에서 시켰는데, 중국의 물류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도 쿠팡 로켓배송처럼… 한 주문에 출고를 두세 번씩 과대포장해서 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과도하게… 넓고 깨끗하고 냉방 빵빵하고 호화로운 시설을 갖춘 호텔 방에 인간 크기의 검은 봉지와 같이 입장하게 되었다. 월드 클래스 코리안 진상…. 월드 빅창피…… 지구야 미안해….
그래서 택배 20여개를 받게한 무지막지한 한국인 푸덕이는 호텔의 전직원이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영어가 유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어떤 사람은 택시를 불러줘야 했고, 어떤 사람은 택배를 받아주고, 어떤 사람은 푸바오 못보는 슬픈 푸덕이를 위해 티켓을 끊어주고… 뭐 이런 상태였던 것 같다. 아무튼 7시 공연을 위해 6시 반에 내려오라고 해서 6시 반에 로비로 내려갔더니 약간의 의사소통 오류를 거쳐 호텔 직원이 본인 핸드폰을 열더니 본인 아이디로… 디디 앱을 열어 택시를 불러준다?(콜택시 같은 게 아니었구나….) 그리고 자기가 티켓을 끊어줬으니 같은 아이디로 택시비 20위안을 보내주면 된단다. 내가 잘 알아들은 게 맞는 건가? 아무튼 우리는 호텔 로비에서 6시 45분에 출발했고, 극장 매표소에는 아슬아슬하게 6시 55분에 도착했다.
나는 이제 자연스럽게 5번째쯤인 것 같은 팅부동을 외치며 핸드폰에 있는 이미지를 들이밀었다.
어? 그런데 직원 여러분이 뭔가 인식이 안되어 당황하는 것 같다? 뭔가 다른 사람을 불러가며 열심히 찾아보는 것 같더니 뭔가 우회로 같은 것으로… 종이 티켓을 발권해 주었다. 그래서 진짜 아슬아슬하게 입장할 수 있었다.
芙蓉国粹川剧秀(四川省川剧院)
이 극장의 공연은 1시간 10분이었다. 이 공연을 추천해준 호텔 직원에게 중국말도 못하는 외국인이 공연을…? 볼 수 있는게 맞아요…? 라고 되물었지만 볼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좌석은 세 가지의 등급이 있는데 200위안인 두 번째 등급(을표)를 샀다. 사실은 나는 얼굴 가면을 바꾸는 변검 공연이라고 번역기로 보냈던 건데, 상대편에서는 Sichuan Opera라고 소통해서 가면 바꾸는 장면이 나오긴 나오는 건가 좀 헷갈리는 상태였다.
알고보니 변검은 이 공연의 일부였고, 서커스처럼 기예를 자랑하는 웅장한 쇼라서 언어를 몰라도 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영어 자막은 비네이티브가 쓴 거라서 좀 이해하기 어렵긴 했지만,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니까….
역시 기예는 중국인이고, 장사도 중국인이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삼았던 유비 관우 장비가 화려하게 등장한 뒤 사람이 누워서 밥상을 돌리고 인형사는 인형을 사람처럼 다루고 민머리 위에 기름 램프를 올리고 림보를 하고 그러다가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얼굴 가면이 계속 바뀌고 객석 앞에 와서도 바꾸고 아무튼 변검 기술을 원없이 볼 수 있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입장시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공연에 감동받고 나오면 굿즈를 쫙 깔고 팔고 있다. 굿즈 퀄리티는 별볼일 없는 거라서 미리 봤으면 절대 사고싶지 않았을테지만, 다 보고 짠 하고 나오니 오 이게 이래서 나오는 거구나 눈 한번 더 크게 뜨고 보게 된다.
공연을 신나게 보고 호텔에서 추천해준 훠궈집에 갔다. 나는 매운 걸 먹으면 배탈이 나는 사람인데(반반탕에 1단계 마라를 시킨 뒤 백탕 다섯번에 홍탕 한번 찍어먹어야 하는 타입) 지도를 찍어보니 이동네는 무려 훠궈를 달라면 마라탕만 주는 데들 천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또 불쌍한 푸덕이에게 배탈 안날만한 훠궈집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알아낸 곳이다. 이름은 小龙翻大江文化火锅(太古里店). 찾아보니 다른 지점을 한국 방송에서도 간 적이 있다. 원나잇푸드트립에 나온데면 한국인이 가도 괜찮겠지?
택시에서 내려보니 골목에 마라냄새가… 마라냄새가 그렇게 진동을 했다. 종로 아무데나 내리면 그렇게 김치찌개나 청국장 냄새가 진동을 할까? 외국인 입장에서는 그럴 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곳은 진짜 마라탕의 본거지이며 격전지였다. 한 건물에도 마라를 다루는 음식점이 서너개씩 있는 것 같았다.(너무 힘들어서 초행길에 사진은 못찍었다.)
일단 한국인 입장에서는 지도에서는 “용”이 간체자로 표시되어있는데 3층에 붙어있는 식당의 간판에는 정체자로 표시되어 있어서 그게 좀 어려웠고… 심지어 타이구리(파주프리미엄 아울렛처럼 생긴 쇼핑몰 이름)하고도 좀 멀었고…. 그래도 한국 방송에 나온 데면 외국인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야생의 팅부동러가 나타나자 직원 여러분은 너무 놀랐다… 그리고 기다리라고 하다가 혹시 private room에 100위안의 차지를 내고 들어가겠냐고 물어봤다. 배가 고팠고 안이 너무 시끌벅적했기에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엄청나게 많은 가짓수의 현지 재료가 적힌 종이 메뉴판과 연필이 놓여졌다. 중국은 QR메뉴로 다 해서 중국어보다 IT서비스를 잘 이용하는 게 최고라는 얘기까지 듣고 왔는데… 우째서…. 우리는 종이메뉴의 QR도 인식해보고(매장 홍보 계정이었다) 직원에게 앱으로 주문해볼 수 있는 시스템이 있냐고 파파고까지 동원해서 물어봤지만 그런 거 없었다.
종이 메뉴에 가득한 한자를 보고 우리가 울기 직전이 되었을쯤, 어마무시한 탕이 나왔다. 분명 마라 1단계로 제일 안맵게 해달라고 체크했지만 그런거 없고, 한국 마라 3단계 정도였다. 역시 마라의 본고장은 다르다.(눈물 줄줄)
심지어 이 매장도 에어컨이 판다 체질 인간이 시원할 정도로는 빵빵하지 않은데, 훠궈의 낯선 메뉴들과 정말로 나올 줄 몰랐던 리얼 종이 메뉴판에 당황한 사이 먼저 주문한 탕이 계속 끓으며 더운 열기를 사방에 퍼뜨리고 있었다. 그래서 반려인은 정말 쓰러지기 직전이었고, 종이 메뉴판에 써있는 영어 이름은 쉬림프나 비프 말고는 한국인에게 크게 도움이 안 될 정도로 매칭이 잘 안 되었다. 그래서 내가 알고있는 한자를 총동원하여 옆사람이 울지 않을 것 같은 재료를 최대한 시키고, 소스도 한번 실패한 뒤 직원에게 부탁해서 다시 만들고, 나중에는 얼음도 따로 시켰다. 이 동네는 맥주든 콜라든 전부 상온의 제품이 나오는데, 얼음을 따로 요청해야 준다. 나중에는 급해서 삥 매니 매니!!!! 를 외쳐야 했다.
그래도 음식은 맛있었다. 기본적으로 재료 상태가 엄청 좋고 맛도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더운 상태에서 미지근한 맥주, 콜라와 함께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매운 훠궈를 먹어서 헤롱댔고, 프라이빗 룸 차지를 포함해도… 값이 거의 하이디라오 레벨이었는데(여기서도 600위안 정도를 냈다.) 한국에서 먹는 하이디라오보다 차별점이 있거나 더 좋다고 느끼기 어려웠다. 이연복 셰프 부자처럼 특이부위를 먹어봤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걸 먹기에는 옆사람 컨디션이 너무 나빴다.
청두 사람들은 어떻게 이 더위를 감당하는 걸까, 이열치열인 걸까, 이상기후인 걸까. 밤에도 불타오르는 열기가 가득한 도시에서는 마라 냄새가 자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