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테스트를 받으러 온 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책으로 둘러 쌓인 학원 교실 안,, 내 눈 앞엔 하얀 바탕에 빼곡히 적힌 까만 글씨들만 가득하다. 노트북 모니터엔 한글로 적힌 글이 한 가득인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읽히지 않는다. 식은 땀이 나고 계속 시계만 쳐다 보지만 이놈의 테스트는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진다.
어제 저녁, 엄마의 경고 3번에 다 찼다. 저녁 먹고 숙제 한 후 게임하기로 한 룰을 어겼던 것이다. 경고 3번이 다 차면 독서논술학원 다니겠다고 약속한 터라,, 오늘 저항없이 아니 한 마디 저항도 못하고 끌려왔다. 바로 이 곳으로,,
등 뒤로 들리는 심각한 목소리 둘. 쑥덕이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등이 따갑다. 레벨 테스트 보는 나에 대해 학원 원장님과 대화를 나누는 엄마의 목소리에 깊은 한숨이 베어 나온다. 에혀~ 나도 한숨만 나온다.
내 손을 마우스에 맡긴 채,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 버튼이나 딸깍 거리다 보니 [진단이 완료 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팝업창이 뜬다. 앗싸! 드디어 끝난건가?
"다 했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친절한 원장님이 노트북을 낙아채 간다. 그러곤 결과지를 뽑아 엄마와 내가 앉은 자리로 돌아왔다. 엄마 얼굴에는 '생각 한것 보다 더 심각하잖아?'라고 씌여있고, 옆에 앉은 친절한 원장님이 안친절한 목소리로 오늘 바로 시작해야 겠다고 단호히 말씀 하신다. 난 한 마디 방어도 못한 채 그렇게 오늘부터 1일이 되었다. 으악! 독서논술학원이라니!!!
독서논술 수업은 학생의 정확한 레벨을 알아야 시작을 할 수 있다. 너무 어려우면 도망가고, 너무 쉬워도 도망간다. 그래서 학생이 '어라? 책이 읽히네? 책도 재미라는게 있네 한 번 읽어볼까?'라고 느낄 수 있는 책으로 시작해야 하기에 반드시 레벨테스트는 필요하다.
하지만 레벨 테스트가 만만치 않다. 긴 글을 읽고 어휘, 사실, 추론, 비판 등 다양한 분야를 확인하는 문제들을 풀어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기에 어색하고, 어렵다. 게다가 등 뒤에서 엄마와 원장님이 노려보고 있으니 얼마나 괴로울고.
이렇게 '난 누구, 여긴 어디?'로 시작하지만 독서학원 원장님이 '매의 눈'으로 학생을 분석하여 오늘 읽을 책을 픽 해주면 어느새 손에 휴대폰이 아닌 책을 들고 있게 되는 매직이 시작 된다! 그렇게 독서의 맛을 알게 된다.
친절한 읽어라쌤은 어떻게 '매의 눈'이 될 수 있을까?
바로 사랑과 관심이다.
엄마 손에 붙들려 레테를 받기 위해 학원 문을 여는 순간부터 나의 관심이 쏟아 진다. 처음 들어올 때의 발소리, 목소리, 표정,,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기록해둔다. 그리고 테스트를 보는 머리 끝 부터 발 끝, 마우스 클릭하는 손가락 힘까지 기억한다. 어느 구간에서 한숨을 많이 쉬는지까지,, 그렇게 첫 수업의 시작 책을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 골라주면! 책에 꿀 발랐냐며 맛있게 한 권 읽고 간다. 역시 소문대로 독서 맛집이라며!
점점 책에 빠져드는 이 아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다보면 저절로 사랑하게 된다. 아이들도 점점 경계를 풀고 책을 만만하게 대한다. 그 과정을 애정어린 눈으로 다독이다보면 어느새 한 레벨 성장하고, 점점 몰입 독서를 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시나브로 독서가가 된다.
이 과정을 지켜 보는 과정이 정말이지 너무나 행복하다. 감사하다. 성장하는 아이들을 지켜 볼 수 있는 이 일이 오늘도 좋다. 점점 더 좋아지니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