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의 의원면직 기록 (1)
"너는 20살 때로 돌아가고 싶어?"
친구들끼리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대답한다. 내내 교실과 독서실만 오가며 네모난 수능특강이 전부인 세상을 살다가, 상경하여 마주한 복잡한 환경에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내 고향은 작은 지방도시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직 도시화의 바람이 불어오지 않아서 2010년대 초반까지도 티머니 버스 카드 없이 여전히 회수권을 사용하는 곳이었다. 하루는 아빠한테 회수권을 다 썼다고 하니까 아빠가 퇴근길에 회수권을 100장이나 사 오신 적이 있었다. 그날 밤, 점선을 따라 회수권을 북북 찢으면서 부자가 된 기분을 한껏 만끽했다.
게다가 내가 살던 곳의 유일한 프랜차이즈 햄버거집은 롯데리아였다. 그러니 19살까지 나의 햄버거 세계는 꽤 한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맥도날드의 맥스파이시 상하이 버거를 처음으로 맛봤던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먼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도시의 삶을 한껏 누리고 있던 언니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나를 맥도날드로 이끌고는 상하이 버거를 시켜주었다.
살짝 매콤한 치킨 패티에 양상추, 토마토, 달콤한 소스까지. 갓 상경한 스무 살에게 그 맛이 어찌나 충격이던지. 내 세상이 한층 넓어진 기분이었다. 한동안은 점심으로 내내 상하이 버거만 먹었다. 그 당시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는 나를 찾으려면 맥도날드에 가있으면 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러나 스무 살의 나에게 상하이 버거보다 더 큰 혼란과 충격을 준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동기들이 나 빼고 모두 꿈이 있다는 것.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동기들은 각자가 원하는 것이 뚜렷했다. 대학원에서 곤충을 연구하고 싶어 하던 동기, 새를 좋아해서 조류탐사를 성실히 하던 동기, 입학 때부터 의약대 편입을 준비하던 동기. 다들 추진기가 달린 로켓처럼 각자의 방향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반면 나는 미지근한 사람이었다. 내 전공을 좋아해서 이 과에 진학한 것은 맞지만, 박사까지 할 용기와 열정은 없었다. 장래희망 칸에 적을 만큼 적당히 관심 있는 직업은 있었지만 자신 있게 추진해 나갈 만한 꿈은 없었다. 장래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일 뿐. 그 직업을 위해 진지하게 내 시간과 에너지를 바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다들 자신의 방향에 맞게 동력을 가해가는 것을 보며 적지 않은 불안함을 느꼈다. 이십 대 초반을 보내며 공모전, 학부 연구생, 동아리 활동 등 남들이 하는 것은 나도 조금씩 따라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마음이 가는 곳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광장에서 행정고시 기술직 고시반 설명회를 한다는 현수막을 보았다. '내가 그래도 시험은 잘 보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관심이 갔다. 큰 기대 없이 참석한 설명회였는데, 자신의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부심을 드러내는 선배들의 강연을 듣다 보니 자꾸만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사무관이 되면 전문성을 기반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멋져 보였다. 상하이 버거를 처음 먹었던 그날처럼, 사무관이라는 직업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전공도 살릴 수 있고 내가 가진 가치관에도 부합하는 직업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고 더 이상의 진로탐색은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드디어 나에게도 장래희망이 아닌 꿈이 생긴 것이다. 순풍에 돛을 단 듯이 자연스럽게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주 서식지는 이제 맥도날드가 아니라 학교 건물 다락에 자리 잡은 고시반이 되었다.
조금 이른 나이인 22살에 고시생이 되기를 선택했다. 수험생의 본분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꾸준히 활자들을 읽어나가는 것. 그러나 그 뻔한 것보다 더 중요한 의무가 있다. 바로 합격 이후의 삶이 정말 자신에게 맞는 삶일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이끌리는 일이라서 고시 생활을 시작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공직 생활이 정말 나에게 맞을지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후회되는 일이다.
'제발 붙기만 해라'
이 생각에 매몰되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공직은 어떤 곳인지, 행정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백하기 부끄러운 말이지만, 합격하기만 하면 내가 어떻게든 조직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만 해도 공무원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의원면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남들 하는 것처럼 나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저 나를 뽑기만 해 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그 건 정말 큰 오산이었다. 나, 그리고 직업에 대해 좀 더 깊이 탐구했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