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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Mar 12. 2023

겉은 스포츠, 속은 비즈니스─프로야구를 다시 바라보다

열광적인 경기장, 그 너머를 보게 하는『프로야구를 경영하다』

  아버지를 따라 야구를 처음 야구를 보기 시작한 것은, 지금도 여전히 한국야구 영광의 순간으로 회자되곤 하는 2008 베이징 올림픽 타이밍이었다. 일본 투수를 상대로 이승엽이 기록한 극적인 홈런 그리고 병살타 유도로 대표팀의 우승을 결정지은 정대현의 마지막 1구는,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었던 초등학생의 가슴마저 끓어오르게 했다. 로열티 높은 야구팬이 추가된 순간이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계속 늦어졌음에도 야구 경기결과와 하이라이트만큼은 꼭 챙겨보곤 했다. 다른 선수에 비해 관심이 가는 선수가 활약한 날이면 업된 기분이 다음 날 오전까지 이어졌다. 무엇이든 더 알고 싶었고, 더 보고 싶은 호기심이 끊임없이 동하게 하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스트레스의 배출구가 되어줬다. 그런 관심과 호기심이 흘러넘쳐 어느 순간부터 KBO뿐만 아니라 MLB(미국), NPB(일본)의 영상과 기록지에도 눈길을 주고 있었다.


  야구를 본 지 10년이 훌쩍 넘어가는 지금은, 이전만큼 새로운 궁금증이 마구 솟아나질 않는다. 거의 모든 것이 한 번쯤은 보고 들어본 것이기에 오랫동안 생각만 해보고 풀리지 않은 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물음들만이 드문드문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서점에서, 해묵은 물음들을 재점화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준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일본 프로야구와 국내 프로야구는 거의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프로야구에 단일 대기업이 참여했고, 그들이 계열사를 만들어서 모기업의 지원 체제로 운영했어요. 그러다 보니, 모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적자를 보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 프로야구 구단을 그룹사의 광고탑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돈을 지원한 거죠. 바꿔 말하면, 광고비 관점으로 구단을 지원한 것입니다.
(김인호 著 『프로야구를 경영하다』, 매일경제신문사, p.128~129)


  국내 구단 중 흑자 경영을 하는 구단이 없다는 이야기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이따금 들은 바가 있었다. 적자가 나는 팀을 왜 계속 경영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돈도 부족하다면서 고액 FA 계약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덜컥 맺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종종 들곤 했다. 모기업이 광고 효율을 믿고 적자가 나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감당하려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사실을 접했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야구를 접하는 팬들은 선수들이 보여주는 플레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응원팀이 어떻게 수입을 올려 로스터에 있는 선수들에게 연봉을 지급하는지는 대개 깊이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후자에 관심을 가지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프로팀이 그렇게 거액의 운영비를 쓸 수 있는 것은, 관중이 내는 경기 티켓 값이나 치킨-맥주값뿐 아니라 스폰서를 통한 광고 노출 계약과 방송 중계권이 있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에 권리가 부여돼 있고, 구단이 그와 관련된 계약을 맺어 다양한 수익 창출로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구단 경영진의 그러한 노력과 설계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선수들과 스태프의 연봉을 지급하고 구장에 대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며, 클럽하우스를 정비하는 등 지출의 폭도 굉장히 넓기 때문이다. 구단 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방송 중계권 계약이 메이저리그처럼 규모가 크지 않고, 팬층의 다양화와 마케팅 전략 발전으로 발생하는 수익의 증가보다 선수의 몸값 상승으로 인한 지출 증가가 크기 때문에 국내 구단들은 광고 효과를 바라는 모기업의 지원 없이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MLB에서는 구단의 소유권이 한 개인이나 기업에 있지 않습니다. 주식 시장에 상장된 기업처럼 구단을 상품화시킵니다. … 구단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자산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 또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혁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놓은 거예요.
(위의 책, p.128)


  MLB 구단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중계권 계약, 그리고 구단 및 구장 네이밍권을 앞세워 자체적으로 흑자 경영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프로 스포츠 팀이라면 우승을 최우선 목표로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MLB의 구단주들은 구단을 하나의 투자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자신이 구단주로 있는 팀이 잘 나가면 더욱 좋겠지만, 설령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더라도 나름대로의 전략으로 팀을 통해 충분한 수익이 창출된다면 자신의 지분을 다음 구단주에게 넘기고 차익을 실현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모기업이 길게 구단주 역할을 하는 모델과 미국처럼 구단주가 때가 되면 교체되는 모델에는 각각의 강점이 있다. 전자의 경우 팀에 애정을 가진 구단주가 나타나면 지속성이 있는 경영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며, 후자의 경우 구단주가 어떻게든 이익을 불릴 방법을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경영 전략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영 구조의 차이는 오늘날 한일 야구와 미국 야구의 풍토의 차이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왜 메이저리그가 계속 세계 최고의 야구 리그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인가?

  야구 팬들이라면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야구의 수준 차이 문제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대체로 선수들의 트레이닝 방식 차이, 혹은 근본적인 선수들의 체격과 운동 능력 차이가 거론되고는 한다. 가장 큰돈이 오가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로 모이게 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저 물음의 근저에는 MLB가 NPB와 KBO에 비해 발전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월드 시리즈 우승 횟수를 보면, 결국은 투자를 많이 하는 팀들이 우승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치세를 내고서도 우승을 일구면 이렇게 기록에 남고, 구단의 가치가 올라가므로 투자가 불가피하죠. 앞서 프로스포츠는 1승의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이런 관점에서는 1승의 가격도 다를 수밖에 없죠. 투자를 많이 하는 구단의 1승은 당연히 비싼 값일 것입니다.
(위의 책, p.173)


  MLB 구단들은 NPB, KBO 구단들에 비해 구단주들이 수익을 내야 한다는 강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런 열의가 가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타나, 비싼 주축 선수들과 스태프들을 대거 내보내서 인건비를 감축하는 방식으로 차익을 창출해 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가능한 경영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구단주들은 차별적인 경영 전략으로 팬심과 수익성을 잡을 방법을 강구한다.


  한국과 일본의 구단주들과는 다른 이러한 사고방식이 두 가지 방향으로 리그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흑자 경영을 하기 때문에 미래를 보고 선수 육성에 돈을 쓸 만한 여유가 더 있다. 미국은 구단들의 선도적인 투자를 앞세워 가장 과학적이고 세밀한 분석 기법을 마련해 두었다. 투수가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날카로운 공을 던질 수 있는지, 그리고 타자가 어떻게 해야 더 생산적인 타격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가장 높은 수준으로 해답을 줄 수 있는 곳이 메이저리그다.


  한편으로 팀의 성적을 끌어올려야 자신의 수익 목표를 빨리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자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자연스럽게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그리하여 응용 통계를 스포츠에 심도 있게 접목한 경영도 미국에서 가장 먼저 태동할 수 있었다. 수많은 게임 로그를 데이터화하여, 평균적으로 더 많은 득점을 올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1점을 더 내기 위한, 1승을 더 올리기 위한 스태프들의 연구. 그리고 그것들을 쌓아 더 많은 차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구단주의 고심이 리그의 발전을 가속화한 것이다.


  목표에 대한 그들의 야망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는 미국 야구계에서 활약하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예일대학교 출신의 테오 엡스타인이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해 고민이었던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를 월드 챔피언 자리에 앉혀 놓자, 업계에서는 야구단의 실질적 경영을 책임지는 단장 자리에 명문대학교 출신 경제·경영학도를 쓰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예를 들어,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단장 샘 펄드는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출신이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단장 파르한 자이디는 UC버클리 경제학과를 나왔다. 

  

  가장 많은 돈이 오가고,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전장에서 가장 탁월한 혁신이 나오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도 이미 숱하게 입증된 바가 있다. 야구계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미국이다. 비록 리그 차이의 격차를 줄이는 데에서는 애를 먹고 있지만, 일본과 한국의 야구인들도 시간 차이를 두고 선진 야구를 본받아 리그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고 있다. 그로 인해 현대 야구는, 그라운드 안에서 최고의 선수들이 승부를 겨루고 그라운드 밖에서 막강한 자금 지원을 받는 수재들이 두뇌 싸움을 하는 거대한 전장이 되고 있다.



만원 관중 전략에는 다양한 이벤트가 전개되었어요. '커뮤니티 볼파크'를 콘셉트로 '1년 100만 엔 VIP 티켓'을 발매해서 연인, 동료, 가족과 동반하는 연간 고객을 증대시켰고, 가나가와 현의 72만 명 어린이에게 야구 모자를 선물해서 가족이 함께 관람하는 기회를 늘렸죠.
(위의 책, p.203)


  프로 스포츠는 어떤 종목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이 맞부딪힌다는 점에서, 경기의 수준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를 즐기면서 그것에 부여하는 가치의 크기이다. 특히 MLB는 리그의 레벨과 흥행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0년 전보다 투수들은 더 좋은 공을 던지고 있고, 타자들도 그것을 받아치고 있으니 리그 수준은 분명히 올랐다. 그러나 MLB는 역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젊은 관중을 NBA에 빼앗기며, 야구 시청자들이 갈수록 고령화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야구계에서 영향력이 큰 이들은, 투수와 타자들의 수준을 향상시킬 방법을 연구하는 데에 들이는 노력만큼이나 사람들을 야구장으로 불러모을 방법을 짜내는 데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선수들이 기술적으로 발전하는 것도 중요하나, 팬들에게 외면받는 프로 스포츠는 비즈니스적인 의미로 존재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MLB는 국제대회에 스타플레이어들의 출전을 장려하고, 트렌드에 맞는 미디어로 선수들의 플레이를 송출하는 등 자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알 수 없다. 보통 1경기에 3시간이 넘어가는 야구의 특성상 팬층을 넓히는 데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또한, 거의 끊임없이 선수들이 움직이는 농구나 축구와 달리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지지도 않고 타자가 타격하지도 않는 볼데드 시간이 많다. 물론 경기 후반에 주자가 쌓여 있을 때 투수와 타자의 심리전이 유발하는 긴장감처럼 타 종목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종류의 스릴이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 광범위한 대중에게 어필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 때문에 야구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야구를 보는가?

  야구 팬들이라면 당연히 대답할 수 있을 만한 질문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답변이 곤란한 질문이다. e스포츠와 축구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눈을 돌리려면, 그것들이 제공할 수 없는 무언가를 야구가 제공해야 한다. 경기장을 오고가는 시간과 야구 1경기를 보는 시간을 합하면 4시간 이상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구단들은 대형매장이나 아쿠아리움 같은 시설을 야구장과 결합해 복합문화센터로 만듦으로써, 오랜 시간을 한 곳에서 쓰려고 나온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벤트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구상을 하고 있다.


  야구는 어렵다. 타 종목에 비해 룰도 복잡한 편이며, 작전도 세밀해 처음 접하는 이들이 하나 하나 알아가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18.44m 앞에 있는 좁은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공을 던지는 것도 어려우며, 그 공을 너비 10cm도 안 되는 무거운 나무 배트로 제대로 맞히는 것은 더욱 어렵다. 겉으로는 스포츠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돈의 논리가 투영된 비즈니스여서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을 갖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하나씩 터득할 때의 재미가 있는 종목이며, 변수가 워낙 많아 약팀이 강팀을 꺾는 이변이 자주 연출되는 매력도 있다. 전력상 열위로 평가받는 한국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미국과 일본을 여러 차례 이긴 것처럼, 드라마틱함과 의외성을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기억에 남을 만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사람들의 바람과 흥행을 자극하려는 야구인들의 발상이 맞닿아, 프로야구가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가장 인기 있는 종목(한국)', '국기(일본)', 'american pastime(미국)'이라고 불릴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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