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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Dec 31. 2022

참 소중했던 한 해와 이별하며

1년 간의 공무원 휴직이 선물한 것들


  올해 신정을 맞이했을 시점에 참으로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공무원으로서 재직 중이었고, 대통령 선거 준비를 앞두고 야근이 자주 있었던 시기였다. 저녁 7시쯤에 허기를 달래기 위해 라면을 먹고 있을 때 밖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잠깐 감상에 젖기도 했지만, 10시가 넘어 집에 돌아갈 때는 마음 한 구석을 자극했던 그 눈이 서둘러 집에 돌아가려는 이의 발목을 잡으려고 한다는 점에 성을 내곤 했다.


  복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일상이 힘들거나 짜증이 난다고까지 생각하진 않았다. 선거 준비도 매달 하는 것이 아니기에 잠깐만 참자, 하는 식으로 넘겨버리곤 했다. 1~2월에 초과근무시간이 정말 많기는 했지만 오히려 같이 일하는 젊은 직원 분들은 이쪽에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 간의 시간 동안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휴직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지 못했다.


  2월 하순에 휴직자 복무상황 신고서라는 문서의 양식을 보고, 그것을 몇 장 인쇄하고 나서야 정말 휴직에 돌입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 문서를 인쇄하고 나서 1주일도 안 되어 1학기 분이 등록금이 계좌에서 빠져나갔고, 면사무소에 있던 개인 물품도 모두 회수되었다. 이제 아침에 발걸음을 옮기는 곳은 행정복지센터가 아니라 캠퍼스가 될 터였다.




  연초에 친한 후배와 연락을 하면서, 새해의 목표를 서로에게 밝힌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군대를 막 제대하게 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모르겠고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말부터 꺼내서 수화기 너머의 상대를 웃음 짓게 했다. 그럼 형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해줬다.


2022년이 끝났을 때 스스로 올해에 대한 점수를
90점 이상으로 매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

  듣는 입장에서는 이 말이 어떤 단일한 목표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에, 들은 직후에 조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어서 설명을 덧붙이긴 했지만,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을 한마디로 함축할 방법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저 말밖에 없었다. 막연하게나마 현재의 자신이라는 껍질을 깨고 더 좋은 사람,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형태가 어떤 것이든, 2022년 12월 31일의 자신이 2022년 1월 1일의 자신보다 유의미하게 나은 사람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싶었다.


  돌이켜 보면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면접 후에 합격 통보를 받았던 뒤부터, 그전까지 항상 존재했던 삶의 추진력이나 이유가 상실되었던 감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2학년이 끝나기도 전에 합격을 하는 바람에, 학점을 잘 받을 필요성도 없고 대외 활동이나 인턴 같은 일체의 경험을 누적할 필요도 없는 채로 무려 3학기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또래 친구들이 진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무언가를 위해 잠을 줄여가며 노력을 하고 있을 때, 마치 그들이 사는 곳과는 유리된 다른 세상에서 표류하는 듯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돌아간다는 것은 그러한 삶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임을 의미했다. 예전보다 나이 차이가 더 커진 후배들이 낮에는 수업을 듣고, 저녁엔 과외(혹은 인턴)를 하며, 주말엔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말을 듣고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혹하리만치 빠듯해 보이는 스케줄은, 그들이 만 19~21세라는 나이에 비해선 놀라울 만큼 대단한 경험과 단단한 멘탈을 갖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든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졸업 후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그들을 위해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었다.




  올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한 시간이었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업무를 확실하게, 효율적으로 해내는 방식을 강구하려는 열망이 부족했다.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전공과목에서 모르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스킵을 하거나 수학적인 설명을 외우려는 습관의 관성을 느꼈다. 그리고 폭넓은 식견과 경험을 가진 저자들의 고견을 접하면서, 글을 읽고 쓸 때마다 자신과 전문가들 사이의 역량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통감하기도 했다.


  반대로 내면에 숨겨져 있는 가능성을 재확인한 시간이기도 했다. 공부하는 시간만큼이나 공부 방법을 생각하는 데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한자는 제법 알고 있지만 그동안 손대지 않았던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환기했다. 동생이 디자인학과 출신이라는 것 외에 삶과 전혀 접점이 없던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호기심에 배우기 시작하면서, 삶의 지평이 확장되는 감각을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기도 했다.


  이번 1년간 삶을 관통했던 단 하나의 키워드를 꼽자면 단연 배움을 꼽고 싶다. '이런 것을 배워서 어디에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바꾸면, 대학 수업이 나름대로 흥미를 갖고 들을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아는 것이 부족하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사실이 배움을 포기할 일종의 면책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캐치하고, 메모하고, 누적한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그들의 강점을 하나씩이라도 배워보자는 생각도 학문적인 것만큼이나 큰 의미가 있었다. 마라톤 구간을 단거리 전력질주 방식으로 주파하려 노력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목적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었으며, 이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회에 자리를 잡은 선배들로부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20살을 넘어선 이후로, 줄곧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지금은 한창 청춘이라고 불리는 나이이지만, 언젠가 이 몸과 정신도 늙어가며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정말로 대학교 2학년쯤에 원하던 대로 시간이 멈춰버렸다면 올해 같은 좋은 해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무한정 주어졌다면 변화를 굳이 추구하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성장과 성숙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을 소모해야만 성숙해질 수 있다.




  지난 1년은 실로 압축적인 시간이었다. 다방면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에 적합한 양의 노력이 수반되었는지는 의문이 들지만, 결과적으로 364일 전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해보면 충분한 폭의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더 채울 수 있었던 부분이 있기는 하나, 내실이 있는 한 해를 보낸 자신에게 모자란 점에 대한 질책보다는 내년도 올해만큼만 성장하자는 식의 독려를 보내고자 한다.


2022년은 85점

  휴직 중인 공무원이자 대학생, 방학 중인 대학생이자 글을 계속 투고하는 작가 지망생이라는 다중적인 정체성은 다시는 삶에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내년은 외적 자극 없이도 발전에 대한 동기부여를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시험받는 첫 해가 될 것이다. 2022년 말일에 이르러, 2023년의 말일에도 내년에 대해 올해 혹은 그 이상의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자신이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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