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를 벗어나서 공무원으로 맞이하게 된 새 일상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자취를 하는 동안, 자신의 생활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자각한 것만큼 아픈 구석이 있었다. 약속을 빼곡하게 잡고 매일같이 어디든 밖을 나설 정도로 활발한 타입은 아니지만, 가까운 이들과의 만남의 빈도가 줄어들면 생각보다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라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대학에서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12월에는, 대학생으로서의 일상을 놓아주고 싶지 않다는 감정만큼이나 본가로 내려가서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졸업할 시점의 모습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상경했지만, 결국 10개월 동안 인생의 궤도에 변화가 생기진 않았다. 미래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했으나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 길만 걸어야겠다는 확신이 들게 하는 목표가 보이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이 없거나 되고 싶은 모습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4학년 때 이것저것에 손을 대면서 여러 방면에 흥미가 생겼기 때문에, 한 곳에 포커스를 두지 못한 것이었다.
졸업 요건을 채우고 방 계약을 마무리한 다음 본가로 다시 내려왔다. 졸업 요건을 확인하면서 잠시 머릿속에 드는 많은 생각을 정리하려던 와중에, 시청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복직예정일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정기인사 타이밍에 복직해 달라는 부탁 차원의 전화였다. 졸업에 필요한 조건들을 갖췄기 때문에 남은 기간 동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제안을 수락해 1월에 복직을 하게 되었다.
새로 발령받은 곳은 처음 입직했을 때처럼 한적한 시골에 있는 행정복지센터였다. 본가로부터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읍면 환경은 이미 한 번 겪어본 적이 있다는 점이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본청이 아니라면 일이 끝난 뒤 밤에 나름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묵은 고민을 잠시 내려두기로 했다.
인복이 있는 것인지 같이 일하게 된 직원들은 대체로 좋은 분들이었다. 다들 바쁜 와중에 이것저것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질문을 드리려 하는 것이 죄송스럽게 여겨졌지만, 여러 모로 부족한 사실상의 신출내기는 염치 불고하고 경험이 더 많은 분들께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최대한 초반에 해야 할 일에 관한 사항들을 파악해서 팀의 발목을 잡진 않아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첫 3일을 보냈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이 막 하달되는 연초 타이밍에 복직을 한 것이 예상 범위를 벗어나는 난처함을 안겨줬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이 많아 인수인계를 받아도 단기간에 내용을 다 머리에 집어넣기 어려웠고, 쏟아지는 일감으로 인해 매일같이 야근을 해야 했다. 눈이 오면서 비상근무가 추가되어 주말에도 매일 출근을 했고, 그렇게 일을 해도 마감 기한까지 서류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자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했다.
복직하자마자 매일 정신없이 보내는 동안 많은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낸 만큼, 업무 체계를 그럭저럭 이해하게 되었고 하루에 많으면 두 끼를 함께 먹는 직원 분들과 대화를 틀 수 있었다. 거의 매번 사무실을 가장 늦게 나서는 이를 걱정하는 뉘앙스의 말을 들을 때면, 그래도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처음엔 뇌리에 강렬히 박혀오는 위기감으로 인해 느끼지 못했던 것이지만, 평일엔 심야에 귀가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것이 반복되자 어느새 초과근무 시간이 한 달도 안 되어 50시간을 넘어 있었다. 연속으로 출근하는 날 수가 길어질수록 아침에 몸을 일으키기 어려워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투리 시간이 없다는 것이 마음을 더 씁쓸하게 했다.
연초에 집중적으로 내려오는 다양한 사업들로 인해 주민들과의 마찰이 발생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이 사람을 가장 힘들게 했다. 이쪽에서 무언가를 잘못 전달해 문제가 생겼을 경우엔 당연히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으나, 타당하지 않은 요구를 거세게 밀어붙이는 이들을 상대할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옆 창구에서 욕설과 난동이 난무하는 모습을 볼 때면,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실질적으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에 분기가 차오르기도 했다.
결코 긴 시간은 아니지만, 복직 후 한 달은 여러 가지 의미로 가슴 깊이 새겨진 것이 많았다. 주어진 일이 많으면 주위를 돌아보지 못해 팀원을 배려하는 언행을 좀처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감정이 고조되면 그것을 잘 숨기지 못한다는 것을 몇 번의 격정적인 순간에 걸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터가 사회 경험이라는 것을 통해 스스로의 내면이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기회를 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딜 가든 익숙해지려면 100일은 걸린대.
공무원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옆 자리 분이 이쪽을 보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던 구절이다. 역시 해야 할 일에 치이고 업무를 아직 마스터하지 못해 강행군을 소화하고 계시던 와중에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를 위로하기 위해 저런 말을 건네셨던 것이다.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하나라도 배우겠다는 마인드의 올해 첫 번째 타깃은, 민간 기업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그 성숙함이었다.
복직일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은 저 100일이라는 기간의 3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지난 한 달만으로도 적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제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에 맞닥뜨리게 될지 알 길이 없으나 누적되는 경험과 자극이 어떤 방식으로든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의식해야 할 시기임을 직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