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주의력을 요하는 정보다. 읽거나 듣고 판단해야 하는 정보, 나로 하여금 추가로 시간을 쓰게 만드는 정보 말이다. 정보 홍수 시대에 주의력은 중요한 자원이다.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양이야말로 그 사람의 창조적 생산성과 직결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주의력을 빼앗는 것은 그 자체로 큰 피해를 끼치는 일이다.
인간은 소통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백영옥 작가가 말했듯이 제대로 소통하는 것은 기적이다. 솔직히 우리는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더구나 소통은 너무 적어도 안 되고 너무 많아도 안 된다. 불필요하게 상대의 주의를 빼앗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고통이다. 정보화 시대이자 소통과 연결의 시대, 오히려 우리는 더욱 외로움에 허우적거리며 소통이 얼마나 미묘한 것인지 배워 가고 있다. 55쪽, 뉴턴의 아틀리에, 김상욱 ×유지원-
4 미술은 물리다. 미술 작품은 시각으로 인지된다. 시각은 그 속성상 분석적이고, 인간이 가진 감각 가운데 가장 정확하다.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물리는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았을 때 시작되었고, 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의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생각했을 때 탄생했다. 물리는 언제나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5 미술은 물질의 예술이다.... 미술은 공간의 예술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이 차지하지 않은 빈 공간도 작품의 일부다. 미술 작품은 물질이 채운 공간과 빈 공간의 경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리는 물질의 과학이다.... 물리는 공간의 과학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질은 공간이고 공간은 물질이다. 본다는 것은 물질의 표면에서 반사된 빛을 감각한다는 뜻이다.
5~6 달리는 나를 초현실주의로 인도했다. 유럽에서 초현실주의의 비현실적 꿈이 그려지던 시기, 물리에서는 양자역학이 탄생했다. 양자역학은 원자의 세계가 상식과 직관을 넘어 비현실적인 꿈같다고 말해준다. 양자역학과 초현실주의가 1920년대 중반에 유럽이라는 동일한 시공간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7 물리와 미술 모두 질문이 중요하지만, 물리는 답이 있는 질문을 다룬다면 미술은 답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리는 상상의 올바른 답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미술의 상상은 질문 그 자체를 위한 것이다.
9 과학은 어렵다. 인간의 제한 많은 신체 감각과 좁은 직관이 두루 다 미치지 못하는 우주와 자연을 헤아리기에, 과학이 직관적이지 않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11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열어둔다.
13 그래도 여전히 내게 수학은 재미있는 조립식 도구와 같았다. 기하뿐 아니라 대수 문제도 공간으로 환원해서 풀곤 했다..... 어디서부터 수리의 영역이고 어디서부터 공간의 영역일까?... 내게는 이 둘이 크게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14글자에서는 여느 조형 예술과 다름없이 모양 못지않게 공간이 중요하다. 유수한 글자들의 발생 초창기에는, 문화권마다 공간을 규정하는 단위 및 배열 등 인식의 틀이 달랐다. 이렇게 보면 글자체 변천사는 글자의 출현 시점을 지나 각 문화권이 바라본 하늘의 공간인 천문과 땅의 공간인 기하까지 거슬러 간다.
천문과 기하는 수의 체계인 수학을 필요로 한다. 또 글자를 비롯한 조형을 다루는 모든 미술 분야는 물리 세계 속에 구체화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인간의 움직임과 결합해야 한다. 수학, 물리, 생물은 글자의 역사가 시작되는 조건을 형성한다.... 수학과 과학의 엄정한 방법론이 질서를 찾아가고 검증을 거치는 과정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내게는 과학과 기술이 효율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언제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