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NaCl + AgNO₃ = AgCl + NaNO₃
영국 출신의 학자 탈보트(탤벗, William Henry Fox Talbot)는 1839년 2월 21일 영국 한림원에서 위 공식을 골자로 하는 논문을 한 편 발표하였다. 이는 사진 촬영에 쓰이는 감광지의 기초이론이었다.
“양질의 종이를 묽은 일반염 용액(NaCl)에 담갔다 꺼내 닦아서 말린 후 질산은 용액(AgNO₃)을 종이 한쪽 면에 바른 후 말리면 감광지가 완성된다.”
하지만 이것은 진행 중이던 실험에 대해 상당히 급하게 정리하여 발표한 논문이었다. 그보다 앞선 1월 7일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프랑스 학자 니엡스(Nicéphore Niépce)와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가 사진의 발명을 공표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 학계의 미묘한 신경전을 나타내 주는 일화일지도 모른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사진의 발명이 언론에 보도됨과 동시에 많은 나라의 학자들이 사진술의 발명에 관해서 자신들의 우선권을 주장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탈보트의 프로세스에 근거를 둔 또 다른 사진기법이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났고, 이에 뒤질세라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에서도 비슷한 류의 연구들이 속속 발표가 되었다. 이후에도 사진술은 수많은 특허와 사용권에 관한 분쟁과 학자들의 연구를 거듭하여 완성도를 높여왔다. 그리고 요즘 우리가 쓰는 디지털카메라는 1975년 미국 코닥사의 연구원이었던 스티브 새슨의 개발로 처음 등장한 후 많은 세대를 거치며 보완되고 발전되어 와 현재에 이르렀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카메라를 들고 찰칵 찍기만 하면 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의 사진술의 발명은 수많은 학자들의 협력과 연구와 경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오랜 기간 완성되어온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계적, 공학적, 법적 분쟁과 함께 예술적 분쟁 또한 만만치 않았다. 처음 사진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자들은 ‘회화의 죽음’이란 극단적인 표현을 하면서 통감해 마지않았다. 화가들 중에서는 그림을 포기하거나 사진으로 전향한 사람들도 다수 생겼다.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는 ‘이제 회화는 죽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시인 보들레르는 '프랑스 정신에 살아남아 있는 신성한 것을 황폐하게 만드는 데'일조했다며 노골적으로 사진기술을 비판하기도 했으며, 사진술은 기계의 힘을 빌려 그저 셔터만 누르면 완성되는 쉬운 예술로 비웃음과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저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진은 예술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신고전주의, 사실주의와 경합을 벌이며 인상주의의 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등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자리 잡았다. 이제는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사진예술과 여타 예술과의 경계조차 모호해지는 복합예술의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장르가 되었다.
구시대적 유물 같은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싶어서이다. 이미 유명한데 뭘 더 말하고 생각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거북선을 발명하고, 전구를 발명한 역사에 대해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진기술을 발명한 사람들 또한 거대한 역사의 한편에 두 발 디디고 서있다는 것을 짧게나마 언급하고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매 순간 셔터를 누를 때마다 위대한 사진가들의 시선을 생각함과 동시에 훌륭한 과학자들의 숨결 또한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느낀다.
2.
ㅡ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발현되는 존재의 증거에 대한 열망과 동경의 표출이라고나 할까, 운명이 과학으로 도치될 수밖에 없는 공간적 배치랄까, 우리가 타인이기 이전에 하나의 구성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에 대한 우울한 반격이랄까, 극심한 갈증의 원인을 타자의 고갈에서 찾길 바라는 소박한 어리석음이랄까. 그러니까 내게 사진이 주는 의미란…….
사진을 찍을 때면 이 장면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와 함께, 시야를 거쳐 뇌리에 번뜩 떠오른 이미지가 얼마나 잘 구현이 되었나를 살피게 된다. 물론 둘 사이의 간극으로 괴리를 느낄 때도 있고 희열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것을 향해, 사진이 내게 보여주는 본연의 의지가 일침이 되어 다가오는 자숙의 시간. 나의 장면들은, 찰나의 시선에 잡히는 모든 장면을 담은 후 사진이 보여주는 객관적 감상과 나의 주관적 감상을 적절히 배합하고 제거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 끝에서 내가 바라보던 찰나를 만나고,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기억된다는 것. 복잡하면서도 어쩌면 간결한, 그 여행의 끝에서 나는 나의 정체성과 마주한다. 심연에 있던 ‘이재’라는 타인과 마주한다. 그리고 악수를 청한다.
3.
카메라가 가져다주는 오묘한 느낌과 복합적인 감정들이 있다. 갈망이나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어떤 조건에 의해 성사되는 일들이 있다. 그때 내가 붓을 들었다면, 내가 피아노를 쳤다면, 내가 펜을 들었다면, 내가 38번 버스를 타지 않았다면, 내가 그녀를 잡았다면, 내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었다면 지금 이런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까. 시간과 공간, 사람들, 동식물들, 꿀벌과 달과 기차, 이런 것들이 모이고 마침 내 손엔 카메라가 있었다는 이유로 셔터를 누르는 것. 그것이 사진이 가진 운명론이다.
4.
작가들이 사진 예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젠 모든 사람들이 사진 생활을 한다. 누구에게나 사진은 생활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시인이고 화가이고 음악가이자 사진가인 세계. 불멸의 세계에서 혁명을 이룩하는 것. 이젠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한다. 구도를 생각하지 않아도, 주제를 생각하지 않아도, 비평을 생각하지 않아도 셔터를 마음껏 누르는 세계. 이것이 바로 혁명인 것. 그런 사진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19세기 초 니엡스와 다게르를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의 발명이 가져다준 전지구적 혁명이 우리 삶을 조금 더 흥미롭고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시처럼, 그림처럼, 음악처럼 우리의 정신세계를 더 높고 깊고 넓은 세계로 이끈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무엇보다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폭넓은 실천예술로 자리매김하여 우리 삶 옆에 항상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 그 속에 나 또한 함께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