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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훈느 Nov 15. 2021

찬바람이 불면 털게를 쪄야지

달큰하고 아련한 상하이 털게철 풍경 

 제철음식에 대한 사랑이 한국보다 뛰어난 곳이 있다면, 그곳은 단연 중국일것이다. 무슨 절기엔 뭘 먹어야 하고 무슨 계절엔 무슨 과일이 나고, 무슨 날엔 뭘 먹어야 하는지 줄줄 읊는 친구들을 보면 대단할 지경이다. 그러나 제철 음식을 챙기는건 불리함보단 이로움이 훨씬 많은 법이다. 일단 식재료 공수가 쉽고, 바가지 쓸 확률도 적으며, 어쨌든 가장 맛이 잘 드는 때이니 먹었을 때 실패할 확률이 적다. 그때 그때 먹고 싶은걸 골고루 먹자는 주의이지만 나도 상하이에서 요란하게 챙기는 제철 음식이 딱 두개 있었는데, 하나는 5-6월쯤 반짝 나타나는 양메이(杨梅), 그리고 또 하나는 10월 중순~11월까지가 제철이라는 상하이 털게 따자시에(大闸蟹) 다. 

 털게철이 되면 곳곳에서 먹음직스러운 게 그림, 게 요리 사진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털게 요리가 시작됨을 알리는 포스터는 주로 이런 구도

우선 유명한 음식점이나 호텔에 저마다 털게 메뉴를 시작한다는 포스터가 붙는다. 주로 찜기에 다소곳하게 놓여있는 게 사진이나 게의 누끼컷이 들어간 게 요리 사진이다. 계절감과 먹음직스러운을 살려 사진은 따뜻한 색감으로 보정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붉은빛이나 황금빛 글씨로 홍보 문구가 써 있다. 마트나 시장에서도 끈으로 다소곳하게 묶인 털게를 잔뜩 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살아 움직이는 게를 가게 주인이 알록달록한 끈으로 묶는 장면을 볼 수 도 있다. 한 손에 게를 쥐고 이로 끈 한쪽을 문 뒤 이리 저리 돌리며 게를 묶는데 속도도 대단하고 매듭도 어찌나 단단한지. 봐도 봐도 신기하다. 기차역은 또 어떤가. 매주 항저우로 일박 이일이나 당일 출장을 가느라 상하이 홍차오 기차역을 밥먹듯 오갔는데, 기차역 매장에서도 털게가 그려진 선물세트가 잔뜩 쌓인다. 탄탄한 저 종이 박스 안에 설마 살아있는 게가 6마리, 9마리씩 들어있다는건가? 주문하면 급랭 털게를 배달해준다는건가 궁금했지만 굳이 사서 확인해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다. 


 사실 처음 털게를 먹으러 유명하다는 음식점에 간 날 실망감을 숨길 수 없었다. 털게라는 말에 일본에서 먹어본 것 같은 - 저렵하지 않은 값의- 커다란 바다 게를 상상했었는데 실제로 본 털게는 너무나 아담한 사이즈라서 이게뭐야~ 싶었다. 이게 바다 게가 아니라 쑤저우 근처 무슨 호수에서 잡히는 민물 게라는 소리를 듣고나니 자그마한 사이즈가 조금 이해됐지만 그래도 손바닥만한 게를 뭔 이가격에 먹나, 하는 생각에 돈 아깝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간사한 법. 한번 입에 넣자마자 단단하고 차진 단맛이 입을 탁 치고 들어오는데 대체 내가 시킨 다른 요리는 언제 나오나 목을 빼고 기다릴 지경이었다.  

게살을 연두부와 볶아내오는 게살두부(蟹粉豆腐)

요리에 '씨에펀(蟹粉)' 이란 단어가 붙으면 게 알, 내장, 발라낸 게 살이 들어간건데 달큰한 게살맛에 이미 눈이 돌아간(?) 나는 게살두부(蟹粉豆腐 씨에펀도우푸) 와 게살 소룡포 (蟹粉小笼包 씨에펀 샤오롱바오), 게살비빔면 (蟹粉拌面 씨에펀반미엔)을 차례로 격파한 뒤 '상하이 털게 만세!!' 를 외치며 이내 털게 팬이 되어버렸다. 특히 게살과 게 알을 연두부와 함께 볶아 나오는 게살두부(蟹粉豆腐) 는 이 없이도 먹을 수 있을만큼 부드러운데다 감칠맛이 그득한데도 짜지 않아 그냥 먹어도, 밥에 비벼 먹어도 어울리고, 향신료를 즐기지 않는 나의 한국에서 온 손님들(?) 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맛이라 식당에 갈 때 마다 즐겨 먹었다.  게 알과 내장, 잘게 바른 게 살을 면과 비벼먹는 비빔면(蟹粉拌面) 은 꼭 게 요리 전문점이 아니어도 평범한 국수집에서 철이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메뉴인데 가격은 다른 비빔면이나 간단한 고명의 국물 국수보다 좀 나가지만 녹진하고 진한 맛이 마치 짜장면을 먹는 것 같다. 두툼한 중면에 걸쭉한 고명을 비벼 한그릇 먹다 보면 몹시 배가 불러오지만 혀끝의 감칠맛을 좀 더 즐기고 싶어 자꾸만 입에 면을 밀어넣게 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따자시에를 즐기는 가장 가성비 있고 좋은 방법은 게를 사와 집에서 직접 쪄 먹는 것이다. 원래 비린 냄새가 강하지 않라 마트에서 사서 쪄내도 근사한 식당에서 시켜 먹는 것 같은 맛이 제법 난다. 가격은 식당에서의 절반 정도면 충분하다. 털게는 시장에 가서 사와도 되고, 마트 배달 앱인 허마선생에서도 간단하게 주문이 가능하다.  

주물 냄비에 찜기를 올리고 배가 위를 보게 쌓아 쪄낸다. 

 주문한 게는 우선 칫솔로 이물질이 없도록 깔끔히 씻은 뒤 끈이 묶인 상태로, 배가 위를 향하게 놓고 쪄낸다. 나는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큰 사이즈인 26cm 지름의 주물 냄비를 이용했는데, 찜기를 얹을 수 있는 아무 냄비면 상관 없다. 물 대신 맥주와 생강 편을 썰어넣고 씻은 게를 차곡차곡 찜기에 얹은 뒤 8~10분 정도 쪄내면 거무튀튀하던 몸통에 발갛게 색이 올라온다. 너무 쪄내면 내장이 흘러나오고 살이 단단해져 맛이 없어진다. 게를 찔 때 넣은 생강 편이 남았다면 생강채를 썰어 중국식 흑식초와 함께 곁들여 먹는다. 술향, 생강향을 머금은 게살에 식초가 닿으며 감칠맛이 좀 더 극대화된다. 그닥 비싸지 않은 값으로도 살 수 있는 황주를 곁들이면 더욱 향이 좋아 한량이 된 느낌으로 식사를 즐길 수 있는데, 황주가 몸을 따뜻하게 해 음식 궁합으로도 잘 맞는 조합이라고 한다.    

게찜만으로는 아쉬워 짜글이와 해물파전, 애호박 새우젓 볶음으로 손님상을 간단히 해결해보았다.

아무래도 좋은 제철 음식을 혼자 먹기는 아쉬워 간단한 한식을 해 집밥이 그리운 한국 친구들을 불러모은다. 이럴때 보면 난 꽤나 부산한 사람이다. 식탁에 둘러 앉아 찬 바람이 코끝을 스쳐 매캐하게 시려오는 창 밖 날씨를 구경하며 집밥 비슷한 음식들에 속을 덥히는 털게와 황주 한잔이면 남부러울게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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