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쉬운 한그릇 보양식 탐방기
장어 덮밥. 단짠단짠한 양념과 이 없이도 먹을 수 있을만큼 부드럽게 익은 장어 살을 기름지게 지어진 밥과 함께 먹는 그 요리를 나는 참으로 좋아한다. 처음 갔던 도쿄 출장에서도, 오랜 취미인 수영대회의 정점을 찍기 위해 출전한, 나고야에서 열린 수영대회에서도 나의 식단엔 단짠단짠한 장어덮밥이 꼭 포함되어 있었다. 나고야가 '히츠마부시' 라 불리는 장어덮밥의 본고장이라는 말에 나고야 수영대회를 나가겠다고 결심했을 정도이니 주객전도도 이런 주객전도가 없다.
단순히 맛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장어덮밥은 닭백숙, 갈비찜과 함께 기운이 떨어질 때 즐겨 찾는 나만의 보양식이기도 하다. 장어 자체가 기력과 정력에 좋다고들 하니 장어와 밥을 함께 먹는 한그릇 요리가 보양식이 된다는 것은 크게 이상하지도 않은 일이다. 중국에서 일을 시작한 뒤 닭백숙은 중국식 닭탕으로, 갈비찜은 펀정로우(粉蒸肉) 라는 중국식 찜 갈비 요리로 대체되었지만 장어덮밥은 의외로 파는 식당이 많아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자주 찾게 되었다. 날것을 잘 먹지 않는 중국 사람들의 식습관과 무관하게 일본인 거주자가 많은 탓인지 초밥집도, 장어덮밥집도 어렵지 않게 여기 저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처음 장어덮밥집을 찾은 건 우연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였다. 그전까지 열의가 넘치게 회사 일과 집안 일을 하던 나였지만 집밥을 하기 싫었고, 집에서 대중교통으로도 1시간은 걸리는 웨스트 번드 미술관에 - 퐁피두 미술관 특별 전시를 보겠다고 - 자전거를 타고 다녀와 허벅지는 묵지근하고 등과 목에선 삐질거리며 진땀이 나기 시작했으며, 마스크 안으로 습기와 뒤섞인 콧물을 훌쩍이던 참이었다.
기진맥진한 내 컨디션과 관계 없이 평화로운 우루무치루(乌鲁木齐路)의 끄트머리에서 일본식 미닫이문과 가게 입구에 드리워진 보라색 차양을 보고 어라? 이 길에 저런 집이 있었네 싶었다. 좁은 골목과 우거진 가로수, SNS에서 핫한 자그마한 카페들과 오래된 식당, 식자재상이 혼재하는 아름다운 길이었고, 작은 카페를 찾아 자주 다니던 길인데 그 전에는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장어덮밥을 먹어야 하는 날은 무엇도 하기 싫고 지친, 바로 이런 날이었기에 주저 없이 공유 자전거를 길가에 세우고 가게에 들어갔다. 카운터 석에 앉아 메뉴판을 보니 마침 나고야식 장어 덮밥이 있다. 나무 통에 담긴 장어덮밥을 딸려 나온 주걱으로 4분할 한 뒤 처음엔 그냥, 두번째엔 김가루와 잘게 썬 쪽파를 섞어서 와사비와 함께, 그 다음은 찻물 (또는 육수)를 부어서 말아 먹어본 뒤 마지막 남은 한 덩이는 그 중 제일 맛있다고 느끼는 방법으로 먹는 히츠마부시.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굉장히 고가였는데 생각보다 가격도 합리적이다. 땅덩이가 넓어 모든 농수산물이 풍성한 중국에선 장어 양식도 잘 되는 모양이다. 이 물가 높은 상하이에서 일본이나 한국에서 먹던 것의 거의 절반 수준 가격으로 장어 덮밥을 먹을 수 있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설사 맛이 없다 해도 시도해볼만 했다.
정갈하게 볼에 담긴 양배추 샐러드를 비울때 쯤 장어덮밥이 나온다. 나무 통에 자그마한 주걱과 함께, 잘게 썬 김가루와 쪽파, 포트에 담긴 찻물과 밥을 덜어먹을 그릇까지. 히츠마부시의 본고장이라며 본토부심을 부리던 나고야에서 먹던 것 과 꼭 같다. 몇장의 인증샷을 찍고 양념이 반들반들한 장어와 깔려있는 밥을 주저없이 사등분으로 가른다. 단짠 단짠한 양념에 절여진 부드러운 장어 살과 윤기 나는 쌀알이 입 안에서 으깨지며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간다. 뱃속이 든든해지기 전 얼른 2/4번째 덩어리를 김가루와 파에 비빈다. 밥 한술을 크게 떠 빠르게 입 안에 넣어도 목이 막히기는 커녕 다음 술에 더 빠르게 손이 간다. 그렇게 3/4덩이, 마지막 밥덩이까지 찻물에 말아 훌훌 털어넣고 나니 그제서야 뱃속이 가득 차오른다. 목 뒤에 차오르던 진땀이 훈훈한 열기로 콧등에 배어나는 땀으로 바뀌는 느낌이다. 훌쩍이던 콧물도 뻑적지근하던 허벅지도 더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자전거를 2시간은 더 탈 수 있을 것 같은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 그만큼 열량 높은 음식을 먹어서겠지만 어쨌거나 나에겐 보양식처럼 힘이 나는 장어 덮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