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알코올중독으로부터 살아남기
1. 이상기후였다. 유난히 첫눈이 빨리 온 12월 초였다.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2. 유난히 이별이 많던 한 해였다. 유별난 일은 없었다. 3년을 함께한 연인과 이별했고 함께 가던 단골 식당이 문을 닫았고 친구가 미국으로 갑자기 떠났고 직장 선배가 이직했다. 딱히 절망할 일은 없었지만 난 무너졌다. 단단히 버틴만큼 빠르고 신속하게 와르르 조각났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아채곤, 동네 정신과 의원을 찾아갔다.
3. 언제부터 우울했는가를 되짚어보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확실한 건 대학생 시절부터 심각한 우울 삽화가 1년에 두어 번쯤 찾아왔다는 것이다. 기억나는 첫 삽화는 대학교 3학년이다. 애써서 원하던 대학에 편입학을 성공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그해 첫 자취를 시작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서울 모 처에 덩그러니 떨어졌다. 모든 만남이 작은 모니터 안에서만 이뤄졌다. 꿈꿨던 캠퍼스 생활은 4평짜리 원룸 현관을 나서지 못했다. 초여름이었을까, 갑자기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창에 번개탄 파는 곳 따위를 검색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마룻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울었다. 온 몸 세포 하나하나가 바닥에 진득하게 눌러 붙어 웅덩이를 이뤘다.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숨 쉬기가 힘들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지 몰랐다. 애초에 도움을 청할 생각도 없었다. 살면서 해 본 적 없는 짓이니까. 연인에게 작은 구조요청을 보냈으나 당시 멀리서 일하고 있던 그는 날 도와줄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버티다가 집 근처 절을 찾아갔다. 작은 무신론자는 이름도 모를 신에게 제발 살려달라 빌었다. 죽고 싶지 않았고, 살고 싶지도 않았다. 이때부터 완벽한 패러독스가 날 삼키기 시작했다.
4. 첫 진단은 만성적인 우울증이었다. 우울감이 오래 지속되어 스스로가 우울하다고 자각조차 못 하는 상태라는 설명을 들었다. 납득이 갔다. 어렴풋이 나 자신이 우울한 사람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병’이라고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라고 죽어도 인정하기 싫었다.
5. 올해 여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맥주에서 와인, 와인에서 소주, 소주에서 양주, 양과 빈도수가 늘어났다. 회사를 관뒀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셨다. 8월 무렵부터는 이틀에 한 번 꼴로 필름이 끊기게 마셨다. 사람들과 먹는 횟수보다 혼자 먹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렇게 싫던 술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빈 위장에 들어차는 소름 돋게 차가운 감각과 첫 잔을 넘긴 후 느릿하게 혈액에 퍼지는 알코올의 느낌을 배웠다. 이미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나는 쉽게 중독에 빠졌다.
6. 나르시시즘과 자기혐오는 양립할 수 있는 건가. 나는 늘 당당했고 스스로를 사랑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딱히 흠잡을 곳 없는 보통 보다는 약간 이상적인, 그리고 이성적인 인간이라 자신했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혐오했다. 입만 열면 거짓말에 모순 투성이, 남을 깔보는 태도, 게으름, 집중력 부족, 몸매, 얼굴,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혐오했다. 우울이 깊어지며 혐오가 나르시시즘을 집어먹었다. 미움만 남았다. 술을 마시면 혐오가 더 심해졌다. 매일 아침 숙취에 찌든 채 일어나 스스로에게 욕을 지껄였다. 거울을 보며 한숨 내쉬었다. 한심한 년. 제 인생 하나 감당 못해 비틀대는 부지깽이 같으니라고. 그리고 저녁이 되면 죄책감을 안주 삼아 또 술잔을 넘긴다. 술이 달다는 건 개소리다 중독자에게도 술은 쓰다. 그 쓴맛을 사랑했다. 검게 삭은 내 속을 소독해주는 느낌이었다. 취기가 돌고 눈 앞이 뿌얘지면 그곳 만이 내 세상. 자기혐오의 늪은 따뜻하다. 앙상하게 말라 비틀어진 나만 남아 내 시체를 끌어안는다. 그곳엔 아무도 없다. 외로울 자격조차 없다. 누군가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없다. 완전한 고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