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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Nov 07. 2021

노력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

    참 오랫동안 성실하게 살았다. 재미도 보람도 찾을 수 없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결과가 어떻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소소한 과제들조차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본래는 자기 자신을 위한 일임이 분명한 자기 계발도, 점점 이자가 붙는 큰 빚을 갚는 일인 것 마냥 꾸역꾸역 수행했다. 유명한 사람들은 그런 꾸준함이 쌓여 당장은 느낄 수 없어도 미래에는 반드시 그 열매를 맛볼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런 말들의 이면에는 게으름 부리는 사람들은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엄포가 있는 것만 같아 몸서리쳐지기도 했다.


    그 모든 고역을 참아낸 것, 사회의 기대치에 맞춰서 억지로 성실하게 산 것은 내 존재에 대한 변명이나 다름이 없다. 나는 이만큼 노력하고 있으니 제발 좋게 봐주십사 하고 둘러댈 만한 그럴싸한 증거들을 만들기 위해서 그토록 노력한 것이다. '나중에 더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는 표면적인 목표는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두려움을 감추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고, 실패자라고 낙인찍히면서 그 모든 일이 오로지 네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손가락질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만큼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도 없다. 부지런함의 척도는 언제나 외부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루에 4시간 공부하는 것은 게으른 것인가, 부지런한 것인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노력에는 충분함이라는 요소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언제나 더 많은 노력을 할 수 있고, 더 멀리까지 뛰어볼 여지가 있고, 또 내가 힘들어서 도저히 해내지 못 하는 일을 해치우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노력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노력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결론으로 흘러간다. 그러면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된다. 불안과 초조는 최소한의 시간을 최대한의 효율로 사용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게끔 사람을 조종한다. 비단 공부나 업무가 아니라 쉬는 시간을 누릴 때에조차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여가 시간의 가성비를 따지고, 단시간에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것들에 중독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자신을 짓누르는 상상의 압박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절박한 몸짓이다. 




    자연 속에 사는 동물들은 노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먹을 것을 구하거나 적을 경계하는 등 몇몇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소위 말해 한가하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얼룩말에게 다음에 사자를 만날 때를 대비해 몇 가지 회피나 방어 기술을 익히라고 조언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자에게 앞으로 다가올 기근을 대비해 더 많은 톰슨가젤 고기를 저장해놓으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우리가 그렇게 조언한들, 얼룩말이나 사자가 노력하며 살아갈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일이 닥칠 때는 행동하겠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마음껏 비생산적인 자유를 만끽하며 그저 존재를 누릴 것이다.


    이건 비단 동물뿐만 아니라 수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살아가던 방식이기도 하다. 미래를 대비하고,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훌륭한 자질이지만 그것만이 삶을 사는 유일한 방식도, 우월한 방식도 아니다. 우리가 조상들보다 더 삶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내가 보기에 별로 없다. 필요한 일들을 하는 것, 마땅히 해야만 할 일이 없을 때는 마음껏 존재를 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자신을 단련하지 않는 얼룩말이나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 않는 사자가, 할 일을 미룬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단위 시간당 최대한의 자극을 쫓아다니는 우리보다 꼭 못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노력, 부지런함, 꾸준함을 숭상하기를 그만두고 대신에 지금, 이 순간에 살아있기를 선택하면, 차츰 어떤 사실들이 명확해진다. 첫째로, 나에게 해야 할 일들이 이만큼 쌓여있더라도 불안할 이유는 없다. 결국 못 해낼 일은 별로 없고, 만약에 내가 놓친다면 다른 누군가가 할 수도 있으며, 설령 정말로 기한을 넘겨버린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둘째로,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되면 모순적이게도 이전보다도 더 "생산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도망치거나 피하는 데 힘을 쓰지 않고, 내킬 때 필요한 만큼만 하면 그보다 더 효율적인 일 처리 방식이 어디 있겠는가. 그냥 하면 대부분의 일은 해결된다. 그 단순한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얼룩말 정도의 지능만 있으면 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때와 시간이 있다. 남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든, 다른 사람들이 내게 어떤 기대를 하든 그것들은 나의 존재와는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언제 시작하더라도 늦지 않고, 하다가 관두더라도 불성실한 게 아니며, 내게 걸린 기대는 과감하게 실망시켜도 좋다.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의지에 달린 일이다. 그러니 노력에 대한 강박과 죄책감을 내려놓고,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충분히 숙고하여 자유롭게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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