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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Feb 13. 2022

경제적 자유의 의미

    인류는 언제나 더 적은 노동을 꿈꿔왔지만, 경제적 자유가 이처럼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경제적 자유와 조기 은퇴) 운동을 주축으로 수동 소득(Passive Income), 주식과 암호화폐,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콘텐츠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반대로 평범한 직장인의 삶은 도전에 대한 기피와 안주, 지루하고 의미 없는 인생, 성취나 성공을 기대할 수 없는 미래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덧칠되었다.  


    물론 자신의 직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그러나 다른 사람 밑에서 30여 년을 일하는 것은 멍청하고 끔찍한 일이라는 견해도 마찬가지로 널리 퍼졌다. 이를 바탕으로 많은 이들이 최소 몇 년간 하기 싫은 일을 하여 종잣돈을 모으고, 전략적으로 자산을 증식하며 40세 전후에 완전히 일에서 손을 뗀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러한 은퇴 계획이 다수에게 실현 가능한지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저녁 시간, 휴가, 심지어 수면 시간의 희생도 감수하고 몇 년 또는 십수 년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계획은 어째서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들리는가? 그 답은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나면, 즉 10억이나 50억, 또는 100억을 모으고 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취미 생활과 운동, 건강한 식사 챙겨 먹기, 가게 또는 회사 차리기, 책 읽고 쓰기, 여행, 유학,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삶이 9시부터 6시까지 직장에 앉아있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고 굳게 믿는다.


    즉, 경제적 자유에 대한 선망은 시간과 돈의 여유만 있으면 이 괴로움 많고 희망 없는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직장은 변변찮은 물질적 보상에 비해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는 절대 악으로, 반대로 경제적 자유는 돈과 시간의 여유를 상징하는 절대 선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런 견해는 '내가 지금 불행한 것은 돈과 시간이 없는 직장인이기 때문이다'라는 명제를 무의식 속에 각인시킨다. 원하는 일을 원하는 때에 할 수 없다는 현실은 노동자의 처지를 역경이나 고난으로 둔갑시키기에 충분하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불만이 한없이 어린아이의 투정에 가깝다는 점은 둘째 치더라도, 자세히 따져보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란 관념적으로만 존재한다. 당신에게 조기 은퇴 후 뚜렷한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완전히 새로운 전공을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면, 이를 은퇴 후로 미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학비와 생활비를 모은 후 시작하겠다면 모를까, 말 그대로 평생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자산을 축적하지 않으면 그 공부를 시작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 그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지 않은가?


    문제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없고가 아니라, 현재를 단순히 여유로운 미래를 위한 자원으로 전락시키는 마음가짐이다. 지금 조금만 참고 노력하면 미래에 언젠가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는 휴가 같은 완벽한 삶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 현재가 끔찍할 수밖에 없다. 언젠간 모든 세속적 문제로부터 벗어나 안전하고, 풍요롭고, 만족스럽기를 바라는 욕심은 사실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채워질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좇는 자유가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세상과 자기 자신을 직시할 용기이다. 내가 무엇이고 세상이 무엇인지 계속 탐구하면 그토록 갈구한 것들의 무상함을 알게 된다. 고작 이게 전부일 리 없다고 외면하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행복한 삶이 있을 거라 믿으면 열심히 살 수는 있을지언정 만족을 얻지는 못한다.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더 인정받기를, 더 재미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상 만족은 없다. 인생은 준비 기간과 결실을 누리는 기간으로 나눌 수 없다. 인생은 지금이고, 과정이고, 찰나이다.


    경제적 자유에 대한 추구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고 오늘을 살아가는지를 돌이켜볼 필요는 있다. 지금 당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앞으로 당신이 삶을 대할 태도이다.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 막연하게 행복한 미래에 대한 기대를 덜어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풍요로움과 자유도 평안을 찾기에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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