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좀좀이 May 25. 2021

그곳의 나, 여기의 나 - 1부 1화

2006년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1화 속 나와 만나기


2006년 경상북도 풍기, 충청북도 단양 여행기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1화 - 청량리역에서 기차 타고 경북 풍기 가기

https://zomzom.tistory.com/37


"이 글 대체 얼마만에 보는 거지?"


이 글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2006년 경상북도 풍기, 충청북도 단양 여행기인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는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바로 작성한 여행기다. 이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여행 다녀올 때마다 거의 항상 여행기를 쓰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다. 그 이전에 이 당시에는 블로그에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블로그는 순전히 재미를 위해서 하는 것이었다. 블로그로 돈을 버는 방법이라면 블로그 그 자체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블로그로 유명해져서 취직 및 창업하던 시절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우후죽순 블로그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는 내게 매우 독특한 존재다. 이 글은 원래 다른 블로그에 올려놨던 글이었다. 당시 여기저기에서 블로그 서비스를 개시했고, 그 중에는 한때 밈으로 유행했던 아햏햏닷컴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서비스도 있었다. 당시 나는 아햏햏닷컴 블로그를 운영중이었다. 이 여행기는 아햏햏닷컴 블로그에 올렸던 여행기다. 이후 아햏햏닷컴 사이트 자체가 불안정해졌고, 2011월 11월부터 본격적으로 티스토리에 좀좀이의 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아햏햏닷컴 블로그에 있던 여행기를 옮겨왔다. 이후 아햏햏닷컴 사이트는 완전히 사라졌다. 만약 계속 머뭇거렸다면 영원히 잃어버렸을 수도 있었던 여행기다.


"이건 지금 퇴고하라고 하면 완전히 처음부터 싹 다 엎고 다시 써야겠는데?"


글을 보는 순간 이게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었다. 너무 어색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문체 자체도 상당히 오랜만에 쓰는 문체인데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는 문체가 달라도 너무 많이 달랐다. 문체만 다른 정도가 아니었다. 구성 자체가 극단적으로 달랐다. 지금도 2006년 당시의 내 모습은 까마득히 먼 과거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어제의 내 모습 같기도 하다. 눈으로 벽을 가만히 보고 있다 보면 벽 앞에 조그만 창문이 생기고 바로 옆에 두 번 구르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게 생긴 좁은 침대가 그려진다. 두 팔을 쫙 펴면 양쪽 벽이 닿을락 말락 하던 매우 좁았던 고시원. 그나마 창문 2개 있는 구석 방이라 햇볕은 많이 들어와 폐인화는 덜 진행되던 곳. 그 속의 내가 지금의 나 자신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정신 차리세요. 2006년이면 무려 15년 전이라구요!


2006년 당시의 내 모습이 가끔 어제의 나처럼 느껴지는 건 완전히 내 착각에 불과했다. 글을 보자마자 '너 누구야!'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글 속의 나도 나를 보며 너는 누구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나 자신이지만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너무 어색해서 서로 존댓말 써가며 대화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할 지경이었다.


"이거 잘못하고 있는 거 아냐? 정주행이 아니라 역주행해야 하는 거 아냐?"


마침표 후 스페이스바를 두 번 쳐넣은 것까지 눈에 들어왔다. 군대에서 문서 작업할 때 하던 방식이었다. 2006년에 전역하자마자 복학했고, 기말고사 시험 전날에 간 여행이었다. 아직 군대 물이 덜 빠져 있던 시절에 쓴 여행기였다. 군대 물이 덜 빠져서 '했습니다'라는 말투를 구사하던 때였다. 군대 가기 전에는 복학한 선배들이 교수들에게 이야기할 때 왜 저렇게 어색하게 '했습니다'로 말을 끝낼까 의아했는데 전역하고 복학해서는 내가 그러고 있었다. 문체가 지금 여행기 쓸 때 문체와 완전히 다른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예비군은 물론이고 민방위 4년차 소집 교육조차 끝나서 온라인으로 민방위를 이수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이런 군대 물 덜 빠진 내 모습은 과거의 나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인간이었다.


저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과연 소통할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었다. 2006년의 나와 현재의 나는 매우 많이 달라졌다. 만약 이 여행기를 진작에 다시 읽었다면 내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어느 정도 느꼈을 거다. 지금 이 여행기를 읽으며 완전히 다른 사람과 만나는 기분은 느끼지 않았겠지. 종종 다시 읽었다면 나 자신에 대해 보다 연속적인 모습으로 변해왔다고 느꼈을 거다. 하지만 이 여행기는 올린 후 아예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제서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완전히 다른 인간이 뜬금없이 나라고 박박 우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전래동화 중 쥐가 손톱을 먹고 손톱 주인으로 변신해서 진짜 인간을 내쫓아버리는 내용이 있었다. 딱 그 꼴이었다. 저 마침표마다 해괴한 스페이스 바 두 번 쳐넣은 것은 대체 누가 한 짓이고, 글을 이렇게 토막글 수준으로 써서 던져놓은 건 대체 누구 짓인가. 분명히 내가 한 짓이었다. 그러나 지금 저 문체와 특히 마침표에 스페이스 바 두 번 쳐넣고 내가 쓴 글 아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대번에 내 글이 아니라고 대답할 거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마침표 뒤에 스페이스 바 두 번 쳐넣은 것만 어떻게 손 대면 안 될까요?"

"안 되요! 마침표 뒤에는 스페이스 바 두 번 쳐넣어야 해요!"

"왜 두 번 쳐넣어야 하죠? 그거 원래 한 번 쳐넣는 거 아닌가요?"

"이게 내 스타일이에요. 군대에서 이렇게 하라고 배웠어요."


이 여행기, 정말 손대고 싶어. 아주 처음부터 싹 다 뜯어고치고 싶어. 특히 저 망할 마침표 뒤의 스페이스 바 두 번! 저거 눈에 거슬려 죽겠네.


그러나 손 댈 수 없었다. 아니, 손 대어서는 안 되었다. 저 글을 쓴 것도 바로 나. 마침표마다 스페이스 바 두 번씩 꼭 쳐넣은 것은 저 여행을 같이 갔던 H군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었다. 잊고 있었던 군대의 흔적. 내가 한때 글 쓸 때마다 군대에서 배운 대로 마침표 다음에 스페이스 바 두 번 쳐넣었던 것을 다시 떠올렸다. 마침표 뒤에 스페이스 바 두 번 치던 과거의 나와 마침표 뒤에 스페이스 바 한 번 치고 있는 현재의 내가 겹쳤다. 우리는 절충안으로 마침표 뒤에 스페이스 바를 1.5번씩 쳐야 할까? 한 번은 마침표 뒤에 스페이스 바를 1번 치고, 한 번은 마침표 뒤에 스페이스 바를 2번 치면 2006년의 나와 2021년 지금의 내가 겹쳐질까?


눈에 엄청나게 거슬리는 마침표 뒤에 스페이스 바 두 번 쳐넣은 것을 고친다고 글 전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과거의 나'의 일부분은 이제 지워진다. 여행기가 의미있는 이유는 훗날 여행기를 읽으며 여행 당시의 추억을 회상하는 수단이 됨과 동시에 여행기를 쓰던 당시의 자신을 마주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미 작성한 여행기를 현재의 내가 고치는 순간, 여행 당시의 추억까지도 크게 왜곡되어버릴 수 있다. 여행기를 시간이 흘러 탈색되고 변색되고 왜곡된 기억에 맞춰서 고치는 순간 어떤 것이 진짜인지 스스로 알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정말 보기 싫지만 저것조차도 건드릴 수 없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아햏햏닷컴 블로그에 있는 힘껏 키보드를 두들기며 마침표 뒤에 반드시 스페이스 바 두 번 탕탕 치던 2006년의 나를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2006년의 내가 열심히 글을 쓰면서 고개를 내쪽으로 돌리지 않고 그대로 화면을 보며 지금의 내게 물어본다.


"저도 외국 여행 갈 수 있을까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정말 많이 가게 될 거에요."


하지만 2006년의 나 자신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당신은 당신이 지금 정말 관심없어하는 나라들을 열심히 가게 될 거에요. 그것도 스스로 너무나 가고 싶어서요.


이 말을 쓰고 웃었다.

작가의 이전글 그곳의 나, 여기의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