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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렌디피티 Jul 07. 2023

베란다 창고까지 정리하면 벌어지는 일

미니멀리스트, 마침내 창고에 손을 대다.

미니멀라이프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일상생활에 적용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정리고수들의 조언을 따르자면, 집 안의 모든 물건을 꺼내서 종류별로 분류하여 정리를 시작하라고 하는데 그 방법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반년의 기간 동안 집 안의 부분 부분을 나누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베란다 창고 하나가 남았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그런 공간... 마지막으로 언제 사용했는지도 가물가물한 물건들의 집합소이자, 갈 곳 없고 집 안에 두기에 애매한 물건들의 보금자리인 이곳은 마지막으로 나의 손길이 필요한 종착지였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창고 문을 열고 그 안의 물건들을 심판자의 눈으로 째려보다가 어느 날, 드디어 팔을 걷어붙였다. 창고에서 더 이상 쓰지 않을 것 같은 물건의 리스트를 작성해 보았다. 그 결과, 가장 먼저 비울 것은 '교자상'이었다. 손님이 자주 오지 않는 집이라 교자상은 일 년에 한 번 사용할까 말까 했는데 이참에 중고마켓에 내놨다. 나눔으로 글을 올리니 필요한 사람과 금방 연락이 닿았다. 커다란 과자 한 봉지와 맞바꾼 교자상은 그렇게 정들었던 우리 집을 떠나 좀 더 자주 그 물건을 써줄 사람의 보금자리로 떠났다. 오래되어 이제 더 이상 사이즈가 맞지 않는 아이들의 물놀이 튜브, 영원히  가지 않을 것 같은 캠핑에 필요한  캠핑 매트와 텐트, 사이즈가 애매하여 사용하지 않는 화분 등도 처분 리스트에 올랐다.

'나눔'과 '판매'로 창고는 점차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사오자마자 쓰지 않는 물건들로  가득 찼던 창고 본연의 모습을 난생처음 마주한 순간, 우리 둘은 마치 식당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합석해서 밥을 먹는 자리에 앉아 있는 순간만큼이나  서로를 낯설어했다.  '우리 집 창고가 이렇게 넓었나?'싶은 생각도 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에게 창고를 열어보라고 하자 "우와, 엄마 이 안에 들어가서 놀아도 되겠어요."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만큼 창고는 넓어졌고 날것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제 창고 문을 열면 그 안의 물건들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리고 그 안의 물건들은 이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창고 문을 열고 그 시원한 해방감에 덩달아 홀가분함을 즐긴다.


정리가 필요한 공간을 바라보며 우리는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 상황을 외면한다. 외면하는 동안 또 다른 스트레스가 나도 모르게 뇌에 쌓여간다.

해결책은 '실행'이다. 집 안 작은 공간부터 하물며 서랍 한 칸부터 나의 손길로 단정한 모습을 찾게 되면, 서랍의 면적에 비해 훨씬 큰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작은 성취감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해냈다'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그 에너지를 동력 삼아 집안의 다른 공간도 차근차근 단아함을 되찾게 된다.

미니멀라이프는 나에게 많은 것을 선물해 주었다.

필요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남기고 그 밖의 물건을 정리하는 모든 과정을  겪어가며 이것을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적용하게 되었다. 일단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예전 같으면 허둥지둥 당황스러워하며 머릿속에서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이젠 단순하게 생각하게 된다. 문제가 생기면 군더더기 같은 잡념들을 배제하고 해결점으로 직행한다. 나도 모르게 사고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선별하고 정리하는 과정은 ''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된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알게 된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물건만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또 다른 온전한 '내'가 된다.

이제 더 이상 쓰지도 않는 물건들에 둘러싸여 그것들을 어쩔 수 없이 볼 때마다 언젠간 치워야지라는 마음가짐으로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고 살고 싶지 않다. '단순함의 힘'을 믿는다.

처음에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고 한창 집 안에 안 쓰는 물건들을 처분할 때 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물건이 자꾸 없어지니 우리 집에 가난해지는 거 같아서 싫어요."

아이의 입장에선 물건으로 가득 찬 공간이 변화하는 과정이 낯설고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이 그저 없어지고, 사라지고 있다는 현상에 상실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물건을 비우고 수납을 여유로운 공간에 배치하니 마치 미술관에 비치된 예술작품같이 집 안의 물건들은 각각의 개성을 너른 공간에서 마음껏 뽐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져다주겠냐는 심부름을 시키면 더 이상의 추가 질문 없이 쉽게 쉽게 물건을 찾아오니 물건을 비워나간다는 것이 가난해지는 것이 아닌 것임은 분명하다.


눈에 잘 보이는 곳을 깨끗이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건 더욱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곳까지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된다면  결국 그 사람이 인생은 어떤 방식으로든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오늘도 미니멀라이프를 기반으로 한 단순하고 명료한 일상에 뚜벅뚜벅 한걸음 씩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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