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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린 Feb 17. 2024

국제개발 NGO 채용공고에서 금융투자전문가를 찾는다?

혼종, 커리어의 경계를 넘어 (1)

대학을 졸업하고 나의 첫 번째 직장은 외국계 투자은행사였다. 서로 다른 부서를 거치긴 했으나 가장 오래 일한 부서는 재무회계팀이었다. 그곳에서 한 5년 정도 근무했을 때쯤 나는 국제개발이라는 금융과는 전혀 무관한 새로운 분야에 눈을 떴다.


국제개발분야는 개발도상국의 빈곤 감소와 발전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거나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일을 주로 하는 분야로서 주로 정부 기관, UN와 같은 국제기구, 세이브더칠드런, 월드비전과 같은 국제 NGO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금융 분야에서의 5년 경력을 뒤로하고 새로운 커리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국제개발분야로 넘어와서 제일 먼저 일하게 된 곳에서는 120만 원의 인턴 월급을 받으며 일을 했다.

첫 직장에서 제일 먼저 받았던 월급보다도 훨씬 적은 금액이었다. 나는 그때 5년 간의 금융 경력은 사회생활 경험이라는 것 외에는 이제 나에게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같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국제개발분야로 커리어를 완전히 바꾸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주변에는 몇 명의 유사한 경로를 거친 그룹의 사람들이 있었다. 첫 번째 그룹은 나와 비슷한 또래로 30대 초중반의 개발도상국이 가진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서로 섹터는 달랐지만 기업에서 일하다가 온 친구들이 많았다.

두 번째 그룹은 한 영역에서 소위 성공할 만큼의 경력을 쌓고 은퇴할 시점에 '좋은 일'을 하시기 위해 NGO 분야로 넘어오시는 50대 이상의 사람들이었다. 두 그룹 모두 국제개발 분야에서 하게 될 일은 과거 자신이 하던 일과는 전혀 새로운 일이었다.


그렇게 인턴부터 시작한 국제개발분야에 몸 담은 지가 어느덧 10년이 더 훌쩍 넘었다.

그리고 그 10년 동안 국제개발분야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 중 주목할만한 것 중 하나가 '금융'이라는 영역이 국제개발분야에서 점차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임팩트투자, ESG 투자, 혼합금융 등 10년 전만 해도 국제개발분야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논의들이 자연스레 중심에 놓여있다. 물론 이 변화를 일찍이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 변화의 끝판왕이라고 느껴질 만한 현상들을 최근에 체감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는 며칠 전 온라인으로 북유럽 임팩트투자기관들과 미팅을 하던 중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참석자 중 한 명의 직함이 투자책임자(Head of Investment)였는데 기관이 어디이지? 하고 살펴보니 Plan International이었다. Plan International은 국제개발 NGO 중 대표적인 곳 중에 한 곳이다.


'이제는 NGO에서까지 투자를 한다고?'  


Plan International은 최근 임팩트투자부서를 설립하고 기존 투자 분야에서 2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사람이 투자책임자로 채용된 것이었다. 앞으로 개발도상국의 사회적 기업에 투자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금융분야의 경력자가 자신의 경력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경력을 레버리지 삼아 국제개발 분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https://plan-international.org/how-we-work/gender-lens-investing/?fbclid=IwAR286WWjZLXdPcWrOu6oZx3YJnMmqQkRER46SiusHUJCkq1pgw6aLN9egS4


사례는 또 있었다.

그보다 더 며칠 전에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설립한 Save the Children Global Ventures라는 임팩트투자를 수행하는 자회사에서 시니어 레벨의 기후금융담당자를 채용하는 공고를 보았다. 채용공고 내용을 보면 탄소시장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후금융(글로벌 및 원격) 담당 전무이사는 높은 무결성 크레딧을 창출하고 탄소 시장 참여의 혜택을 토착민 및 지역 공동체(IPLC)와 공정하게 공유하는 확장 가능한 지역사회 주도 자연 기반 솔루션(NbS) 프로젝트를 입증하기 위해 설립 중인 SCGV의 NbS4Children Hub를 이끌게 됩니다. 이상적인 후보자는 혁신적인 프로젝트의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기업가적 추진력을 갖춘 민첩한 셀프 스타터입니다. 뛰어난 프로젝트 관리자로서 자연 기반 솔루션 및 기후 금융 분야에서 관련 네트워크와 부문 경험을 보유한 사람이면 더욱 좋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글로벌벤처스의 기후금융이사 채용공고


국제개발 NGO마저도 이제 임팩트투자 분야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금융투자 분야의 경력자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NGO까지 자연스레 넘어오고 있다. 소위 '개발의 금융화'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과 국제개발, 비즈니스와 NGO 간의 접점이 만들어지는 영역이 커지고 더 이상 금융과 국제개발분야에서 쌓은 커리어는 서로 다른 섹터의 커리어가 아닐 수 있다. 오래전 금융회사를 그만두고 국제개발분야로 넘어올 때는 전혀 다른 세계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오히려 두 가지가 결합된 커리어 경력을 통해 차별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금융 분야에서의 경력과 국제개발분야에서 경력을 혼합하여 어떻게 나만의 차별성 있는 역량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가 다음 고민의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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