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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린 Feb 24. 2024

북유럽임팩트투자자들의 컨퍼런스에 토론자로 초대받았다

작년 12월 링크드인으로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기반의 임팩트 투자사였는데 2024년 2월 코펜하겐에서 북유럽 임팩트 투자자들을 초청하여 컨퍼런스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임팩트 투자업계 종사자와 임팩트 투자를 연구하는 학계 사람들을 패널 토론자로 구성하고 있는데, 내가 링크드인에서 임팩트 투자를 연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연락을 해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컨퍼런스인지, 그리고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조금 더 들어보고자 온라인으로 미팅을 했고, 그 이후 참석하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토론의 형식은 한 명의 모더레이터와 세 명의 토론자가 50분 정도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모더레이터가 질문을 하면 세 명의 토론자가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모더레이터는 덴마크 국책은행에서 기후변화 관련된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는 사람이었고, 나 외의 두 명의 토론자는 스코틀랜드와 덴마크에서 임팩트 투자업계의 종사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전체 컨퍼런스 참석자는 약 30명의 소규모 컨퍼런스였는데, 이 중 학계를 대표하여 온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덴마크는 나라 규모가 크지 않아 학교수도 많지 않은데, 그중에서 임팩트 투자라는 특정 분야의 연구를 하는 사람은 더욱 찾기 어려웠지 않나 싶다.


더하여 이건 내 추측인데, 내가 아시아 여성이어서 더욱 초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DEI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다양성, 공평성, 포용성) 이 조직의 가치로서 중요시되는 사회에서, 특히 임팩트 투자 분야라는 특성상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하튼 학계를 대표해서 초대했다는 말의 무게가 무거워 코펜하겐에 돌아오자마자 며칠 동안 밖에도 안 나가고 임팩트 투자를 연구한 최신 논문들을 다시 읽어가며 꼼꼼히 스크립트를 준비했다. 발표할 때는 내가 준비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자리이라 긴장감이 덜한 반면, 티키타카가 돼야 하는 (영어) 토론은 꽤 긴장되는 자리였다.  

컨퍼런스는 덴마크 건축센터에서 열렸는데, 전시회 구경만 와봤지 안에서 컨퍼런스와 같은 행사도 하는지 몰랐다. 긴장한 척은 숨기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래저래 여차저차 잘 마쳤다.

토론을 마치고 사람들과 남아서 또 한참을 이야기했다. 주제가 없이 시작해야 하는 스몰토크에는 한없이 약하지만, 궁금한 것이 생기면 토크에 적극적이 된다.


토론 중에도, 토론 밖의 인포멀한 대화에서도 흥미로운 얘기들을 들으며 연구해 보고 싶은 주제들이 떠올랐다. 혹시라도 잊어버릴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부지런히 메모장에 정리하였다. 실무자로 일할 때는 업계의 최신 동향을 접하기가 보다 수월했는데, 박사 과정을 시작하고 나니 급변하게 진화하는 임팩트 투자 분야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학자로서 연구해야 하는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들이 생긴다면 적극적으로 가야지.


그리고, 이런 자리에 참여하고 나오는 길에는 항상 많은 생각들이 쌓인다.


임팩트 투자자들의 스펙트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 주로 국제 개발의 영역에서의 임팩트 투자들을 봐 왔는데, 상장 주식에 투자하는 투자자부터 개발도상국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국제 개발 NGO까지. 내가 연구를 하면서 임팩트 투자자를 일반화해서 접근하고 있던 건 아닌가 하여 아차 싶다. 내 눈으로 보이는 세상이 전체라고 생각하는 것의 오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분야에서 보다 많은 것들을 두루 경험하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지 싶다. 마음이 열려있지 않으면 새로운 것들을 보아도 내가 하는 정도로만 해석할 위험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경계에 서 있는 혹은 경계가 없이 뒤섞인 포지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 컨퍼런스에는 학자로서 참여했지만, 나는 약 15년 이상을 실무자로 일해왔고 지금도 컨설턴트로 일하는 실무자이다. 금융회사에 5년 정도를 근무했기 때문에 금융의 언어와 구조를 알지만, 투자 경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그래서 벤처캐피털리스트 양성과정도 수료하고, Coursera에서 관련 수업도 들어서 그들의 언어와 세계를 조금 더 가까이서 이해하고자 노력은 하고 있다. 국제 개발 영역에서 금융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국제 개발 분야는 소위 농업, 보건, 교육, 에너지와  같은 분야를 주요 섹터 전문가로 인지하고 있기에 나와 같은 영역에서 커리어를 쌓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어제 세미나에 다녀오면서 뒤섞인 내 경험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트고 닦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덴마크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 이유와 비슷하게, 이 자리에서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에 서서 외로이 있는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하던 중 한 사람이 우리는 'First mover'가 될 것이라는 말이 힘을 주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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