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낮으니 마음도 착해
동생 내외가 네덜란드에 와서 살 던 때입니다.
"여기는 레스토랑들이 다 별점이 다 높네요?"
"응 맞아... 네덜란드 사람들은 별점에 후한 가봐."
온라인으로 쇼핑을 하고 검색을 하는 한 다른 사람들의 별점과 후기를 안 들여다볼 수가 없죠. 오늘도 아기 용품을 사는 데, 최종결정은 별점이 더 많은데 높은 제품 (4.3 대 4.6)으로 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지도 검색을 해서 레스토랑 리뷰들을 보면 네덜란드 어딜 가든 미슐랭이나 노포 경험을 할 것 같지요. 하지만 막상 가보면 정말 돈이 아까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별점이 5점 만점에 4.3 이상이면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그냥 괜찮은 정도요. 그리고 4.5 이상이면 정말 괜찮은 정도입니다. 레스토랑뿐 아니라, 약국, 상점, 짐 (Gym) 등 모든 분야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별점이 4점 이하면 최대한 피합니다. 얼마나 최악이면 3점일까... 이러면서요!
그 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지도 검색을 해 어딜 가려고 하면 갈 곳이 없을 것 같죠. 모든 곳이 별점이 3.5 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네덜란드와는 반대로 별점 낮은 곳에서 뜻밖의 엄청난 (?) 경험을 하기도 했어요. 이곳이 왜 3.5~?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별점에 후하고 짠 두 나라를 경험해보니, 어쩐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우선 네덜란드에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음식이나 새로운 콘셉트도 느리게 들어옵니다. 대신 그네들한테 익숙한 것이 스테디셀러처럼 꾸준히 팔립니다. 예를 들어 카페나 치킨집처럼 바로 옆집이 동종업 가게인 게 흔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서비스업의 경쟁이 덜 하고요. 사람들이 찾는 것을 마련해 제공하면 됩니다. 항상 똑같은 것에 익숙하니 그 정도를 제공해 주면 만족하는 거죠. 네덜란드에서만 산 네덜란드 사람들은 '왜 다른 나라에서 살겠느냐, 난 내 나라가 최고다'하는 데요. 이런 자세도 익숙한 것 외에는 보거나 경험한 적이 없어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성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경험을 하더라도, 이미 익숙해진 것을 더 선호하는 고지식(?)한 부분도 있고요. 네덜란드 사람들의 아침과 점심은 빵 한쪽에 치즈 한 장이죠. 점심때 네덜란드에서 샌드위치 아닌 음식을 파는 곳을 찾기가 힘듭니다. 하다 못해 페루 레스토랑에 페루 스타일 점심을 먹으러 가도 샌드위치만 팔기도 하고요. 이렇게 원하는 것을 맞추어 주면 이곳 사람들은 만족하는지, 좋은 별점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서비스나 외식 기준은 우리나라보다 낮습니다. 앞서 말한 경쟁이 덜해서이기도 하고, 익숙한 것이 잘 나가니 뭔가 더 새로운 시도를 할 이유가 없어서이기도 하고요. 기준이 낮은 것 외에 제일 큰 이유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남 혹은 서비스를 평가할 때 대체적으로 긍정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비판을 못해서도 아니고 잘못을 못 찾아서도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좋은 평가를 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같습니다. 일상을 살 때에 내가 깎이거나 치이지 않고, 내가 닿을 수 없는 높은 기준 아래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지 않으니 내가 아닌 것을 평가할 기회가 올 때에 무의식적인 보복심리나, 기준치를 아주 높게 잡는다거나 하지 않는 거죠. 얼마 전 팀원들에게 연말평가를 하던 일이 생각나네요. 한 때 저는 고칠 점을 알려주고 잘 안 된 점을 말해주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더랍니다. 하지만 요새는 좋은 점을 알려주고 잘 한 점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비판일까요, 칭찬일까요? 어떤 식의 비판이 건설적일까요?
관광객이 많이 가는 레스토랑의 영어 리뷰를 보면 문화차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 이름의 리뷰는 대부분 별점이 덜 후합니다. 한국에서는 기준에 부응하면 3점 그 이상으로 정말 정말 멋졌으면 5점이라면 네덜란드에서는 기준에 부응하면 5점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도 우리나라가 훨씬 높은 것 같고요.
이미 부자이고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닿지 않을 기준을 잡고 더 열심히, 더 빨리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아도 되서일까요? 돈에 있어서는 남에게 한 푼도 안 쓰려는 네덜란드 사람들이지만, 별점에 있어서만큼은 후합니다. 그렇게 아끼는 돈을 쓰고 나서는 자기 합리화처럼 '너무 좋았다'라고 해야지만 마음이 편한 건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