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 하고 먹게 되는 따끈한 국물. 설렁탕에 밥을 말아먹거나 칼국수를 먹을 때 찾게 되는 시원한 김치. 그 매콤하고 신 맛이 진한 국물과 조합을 잘 이루죠.
너무도 다른 네덜란드 음식 중 우리 음식과 코드가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김치를 얹어 먹으면 더 맛있는 네덜란드 요리는 바로 얼튼수프(Erwtensoep), 혹은 스너트(Snert)라고 하는 완두콩죽입니다.
이들 말로 수프는 우리의 죽에 가깝고 부이용(Bouillon)은 국물에 가까운데요. 특히 이 콩죽은 내용물이 꾸덕해서 숟가락이 국 안에 설 정도면 좋습니다. 쌀 대신 콩과 고기가 들어간 죽입니다.
얼튼수프 혹은 스너트라고 섞어 말해도 마니아 사이에서는 사실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내요. 수프를 끓여서 하룻밤이 지나면 더 꾸덕해지는데요. 그래야만 스너트라네요. 꾸덕하지 않으면 감자를 넣어 농도를 맞추라니 꾸덕이 진리인 이런 수프도 드뭅니다.
당근, 양파, 샐러리 뿌리 같은 채소와 자투리 돼지고기를 넣어 푹 고은 후, 건더기는 걸러내고 만들어진 국물을 불린 완두콩을 함께 삶은 후 갈아 냅니다.
거의 쓰이지 않는 자투리 고기를 고아내서 우리 국물 맛처럼 깊은 맛이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로부터 녹두죽 맛이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한국에 돌아가니 그리운 네덜란드 음식이라고도 들었어요.
덴마크의 완두콩 수프는 밝고 환한 초록색에 차갑게 해서 여름에 먹는다면 네덜란드의 완두콩 수프는 색깔도 누리끼리하고 뜨겁게 만들어 겨울에 먹습니다.
16세기에 적힌 레시피가 있다니 이 정도면 전통 음식이지요.
당시 서민들은 한 집에 요리용 냄비가 하나밖에 없어서 냄비하나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가 바깥일을 도와야 했기에 아침에 재료를 다 넣어두고 저녁에 돌아와 바로 먹을 수 있는 이런 수프가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네덜란드가 가난하던 시절, 겨울에 없는 식재료를 싹싹 긁어모아 만들어 물을 부어 부피를 늘린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건져먹는
재미도 있게 훈제 소시지도 같이 넣어 먹습니다.
김치랑 같이 먹으면 아주 궁합이 최고고요.
그리고 시간을 들여 집에서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게 요새는 캔이나 통으로 이 수프를 팝니다. 바로 데워 먹으면 인스턴트 죽이 따로 없게 간편해졌지요.
주로 겨울, 혹은 알파벳 r이 들어가는 달 (september, oktober, november, december, januari, februari, maart, april)에 먹는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여름에 먹기에는 너무 진하고 뜨끈하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하지만 r이 들어가는 달을 적고 보니 1년의 절반이상이네요.
날이 더 풀리기 전에 얼튼수프 한 번이라도 더 먹어야겠어요.
네덜란드 사람들은 사소하지만 전통 있고 기술이 필요하고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것에 누가누가 잘하나 챔피언십을 가리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때 먹는 빵 챔피언쉽, 새해맞이 도넛 올리볼른 챔피언쉽, 벽에 석회미장하는 챔피언쉽들입니다. 그리고 얼튼수프 챔피언쉽도 있다고 하네요. 만약 네덜란드에서 전통 음식이 먹고 싶다면 식당에서 스탐폿 (Stamppot, 감자와 채소를 으깬 매쉬)을 먹기보다 슈퍼나 정육점에서 오가닉 얼튼수프 혹은 스너트를 사 데워 먹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