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슈퍼는 40년 전 대전시 선화동 골목에 있었다. 사실 슈퍼마켓이라기보다 동네 점빵이었다. 제대로 된 진열대는 벽 한편에 앵글로 설치한 3단 선반이 전부였고, 라면이나 과자 등을 상자만 뜯어 맨바닥에 쭉 늘어놓고 파는 작은 점빵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슈퍼집 아들은 쪼르르 달려와 점빵에 딸린 작은 다락방에 배를 깔고 누워 과자 한 봉지 풀어놓고 숙제했다. 엄마 몰래 알사탕 한 봉지 숨겨 학교에 가면 그날 하루는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대장이 되었다. 동네 아이들 모두 다람쥐처럼 두 볼 가득 알사탕을 물고 설탕물 반질반질한 입술로 슈퍼집 아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저녁이 되어 점빵 다락방에 노란 백열등이 켜지면, 아버지가 돈통을 들고 와 지폐를 세며 하루를 마감했다. 백열등 때문에 가게에서 다락방을 올려다보면 아버지 등만 보였지만 희미한 뒷모습에도 흥겨움이 또렷하게 돋아났다. 그 사이, 아들은 아버지 몰래 초코파이 상자에 손을 넣었다 뺐다. 호주머니 속에서 도톰하게 느껴지는 초코파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과자였다. 호주머니에 숨길 때마다 심장이 두근대서 그랬는지 훔쳐먹는 초코파이가 훨씬 더 맛있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던가. 어느 날 엄마가 초코파이가 자꾸 사라진다고 말씀하시며 노려보았을 때 아들은 안 먹었다고 딱 잡아뗐다. 동백슈퍼집 아들은 빗자루 들고 쫓아오는 엄마를 피해 알사탕 부대 부하네 집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남편이 어렸을 때 이야기이다. 사실, 아버님께서는 아들이 초코파이를 가져간다는 사실을 아셨다. 하지만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돈을 세는 그 시간이 너무 흥겨워서 짐짓 모르는 척했으리라. 남편은 아버님께서 왜 슈퍼를 여셨는지, 몇 년 동안 운영하셨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슈퍼집 아들로 살았던 이야기를 꺼낼 때면 남편 눈빛 너머로 다양한 감정이 아련하게 스쳐 간다. 그리고 나는 알사탕 부대 개구쟁이 대장 소년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