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꿈꾸던 프랑스 시골생활. 분명 도시와 다른 시골 생활을 생각하며 감수해야 할 불편한 것들을 예상했다. 걸핏하면 연결 안 되는 와이파이, 3g가 있어도 대부분 ‘서비스 없음’이 뜨는 건 기본이고, 뭐 하나 사려면 아저씨와 함께 차를 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야 하고, 필 받으면 울어대는 닭 때문에 지금 낮인지, 아침인지 구분이 안되기도 하고, 잉어 12마리가 유유히 돌아다니는 연못인지 수영장인지 구분이 안 되는 수영장에 들어가기 두려워 수영을 좋아하지만 수영장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그중 예상치 못했던 하나는 바로 따뜻한 물 샤워. 이 프랑스 시골 산속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려면 제일 먼저 벽난로부터 떼야한다. 벽난로를 떼고 물이 달궈지길 한 시간 정도 지나야만 따뜻해지기 시작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다가오는 이 여름에 샤워를 하기 위해 매일 벽난로를 떼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선택한 나의 방법. 조깅이다. 온몸을 조깅을 하며 달군 채로 열을 내야만 아찔하게 차가운 남프랑스의 지하수로 겨우 샤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첼은 여름을 준비하기 위해 조깅을 한다지만, 나는 샤워하기 위해 조깅을 하는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맥주 마신 후 운전하러 나가는 크리스티앙 아저씨에게 말했다.
"음주운전은 위험해요. 그렇게 운전을 하다가는 경찰에 잡힐 텐데..."
"웃긴 얘기 해줄까? 내가 맥주를 마시고 운전한 날 프랑스 경찰을 만난 적이 있거든? 근데, 그 경찰이 음주측정기를 안 가져왔다는 거야. 그러더니 나보고 내일 다시 경찰서로 오라고 하는 거야. 난 '지금' 술을 마신 상태였는데, '내일' 음주를 측정한다니. 프랑스 경찰 너무 웃기지 않니?"
너스레 떨며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그의 하루는 늘 맥주로 시작해서 맥주로 끝난다. 보통 술에 취하진 않지만, 딱 한번 아저씨의 취한 모습을 본 날이 있었다. 그날 그는 레이첼과 내가 산책 갔다 온 사이 엄청 술을 마시고 낮잠을 5시간 넘게 거하게 자다가 일어나서는 정원에서 해야 할 일이 생각났는지 정원일을 조금 도와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그는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몸도 가누지 못한 채로 비틀거리며 정원으로 향하였고, 우리는 그의 뒤를 따랐다. 이내 땅을 파기 위한 삽질을 시작하였다. 마치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삽질을 하는 크리스티앙 아저씨를 보며 생각했다.
'이것이 진정한 삽질이구나 '
그날 저녁, 레이첼과 나는 크리스티앙 아저씨에 대한 얘기를 시작으로 서로의 삶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가 얼마나 재밌던지 분명 밝을 때 시작했던 얘기는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이어졌다.
“사실 나는 여기가 가끔은 좋지만, 가끔은 힘들어.”
“레이첼 힘들었어?”
늘 웃고있는 레이첼이었기에 힘들었다는 레이첼의 이야기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크리스티앙 아저씨가 우리를 너무 가족처럼 생각해서 하루 종일 함께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아. 그래서 사실 하루 종일 일하는 기분이 들어. 때로는 그가 요리도 해주고, 불어도 알려주고, 가족처럼 대해서 좋지만, 때로는 내 시간이 없으니 피곤해”
“맞아.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한데, 하루 종일 아저씨가 모든 걸 함께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아. 그래도 난 우리가 이곳에서 즐겁게 사는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
“응. 맞아 나도 약간 피곤할 뿐. 나쁘진 않아”
어둠이 깔린 숲에서 작은 랜턴 불빛에 의지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사뭇 진지한 표정인 레이첼이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용기 있다고 말하고, 이런 여행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늘 말해. 하지만, 난 내가 가장 용기 없다고 생각해”
“왜?”
“난 내 친구들처럼 일을 열심히 할 용기도 없고, 결혼할 용기도 없고, 심지어 난 아이를 키울 용기도 없어. 그들이 더 대단하지 않니?"
레이첼에 말해 너무나도 공감되었다. 떠나기 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용기 있다는 말이었는데 늘 그 얘기를 들을때면 나는 내가 용기 있어서라기보다 오히려 용기가 없어서, 오히려 가진게 없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결정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레이첼,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어. 난 가진 게 없어서 그나마 더 쉽게 이곳에 온 게 아닐까 생각해. 나는 좋은 직장도, 남편도, 아이도 없어. 어쩌면 난 가진 게 없어서 포기가 더 쉬워서 여기 있는 거같아. 만약 내가 책임질것들이 많고 아쉬운것들이 많았다면, 난 결코 여기 없었을거야 ”
“맞아. 우리는 자신만 책임지면 되니까. 어쩌면 그들보다 더 쉬운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몰라”
어쩌면 나는 용기가 있어서 시작한것이 아닌, 포기가 쉬워서 시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택한 이 삶에서 포기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걸 찾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20대의 나는 무엇에 이끌렸는지 그렇게 나의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20대의 나는 참 단순했다. <와인>이 좋았고, <치즈>가 좋았고, <올리브>가 좋았고, <라벤더>가 좋았고, <자연>이 좋았다. 좋아하는 것들을 직접 만들고, 먹고, 보고, 느껴보며 살아보는 삶은 어떨까 싶었다. 프랑스가 좋아서 프랑스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 모든 것들이 프랑스에 있었기에 프랑스를 선택하게 된것이다. 지금 나는 좋아하는것들이 가득한 남프랑스에 있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는 '행복한 나' 였다. 그렇게 나의 여행 주제는 '행복 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