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이 거기 있어 너무 좋아요.
내 벗이 몇인고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떠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더하여 무엇하리.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를 좋아한다. 특히 ‘더하여 무엇하리.’ 이 문장을 사모한다.
미니멀 라이프를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군더더기 없는 삶을 추구하고 동경하는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우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달’이 있기 때문이다.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추니
밤중의 광명이 너만 한 이 또 있으랴.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나는 달을 좋아한다. 달이 동그래지면 괜스레 혼자 가슴 벅차 흥분하고는 한다.
‘달이 이렇게나 밝은데,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도 이 달을 보고 있을까?
내 생각하고 있을까? 나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잘 살고 있는 건가?’ 등등 온갖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예전엔 달을 보고 주로 소원을 빌곤 했다.
“달님! 그 사람이 날 좀 바라보게 해주세요. 내 마음 좀 헤아리게 해주세요.
나도 예쁜 아기 낳게 해주세요! ”
감사와 자랑의 말들을 전하는 날들도 있었다.
“달님! 내가 해냈어요! 달님! 나 아기 가졌어요! 감사해요! 달님! 그 사람이 나를 알아줘요!”
좋을 때보다 슬프고 힘들 때, 달님은 나와 함께였다.
언젠가 조류 인플루엔자가 유행할 때 온통 방역복으로 무장하고 초소에서 밤샘 근무하던 날, 학원에서 공부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는 딸을 기다리던 나날들. 그럴 때 바라본 달님은 훌륭한 동반자이자 심심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힘든 날도 쓸쓸한 날도 달을 만나면 그저 가슴이 벅찼다.
“달님! 달님이 거기 있어 너무 좋아요. 덕분에 이런 힘든 일들도 할 만하네요.”
“우리, 달 보러 갈래요?”
호숫가에 비친 달을 같이 바라볼 때, 내 마음은 한없이 충만했다.
하늘에 뜬 달, 호수에 비친 달. 내 눈동자에 달, 그 사람 눈 속에 나.
젊은 시절, 나의 연애는 온통 짝사랑이거나 엇갈림 투성이었다.
나는 내내 멀찌감치 누군가의 등 뒤에서 서성거렸으며, 또 누군가의 마음은 모른 척하곤 했다. 짠하고 찐했던, 내 짝사랑의 애틋한 스토리를 달님은 알고 있다.
결혼하고 수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자, 독신주의였던 나였지만 아이를 기다렸다.
가끔 달이 동그래지는 보름이면 일부러 달맞이를 나가기도 했다. 두 팔을 벌리고 숨을 크게 내쉬면서 달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복식호흡을 남몰래 하기도 했다.
가장 낭만적인 달구경은 오대산에서 본 것이다. 우리는 다음날 등산을 편하게 하려고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민박집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때마침 산등성이 뒤로 둥근 달이 떠올랐다. 운 좋게 보름이었다.
유난이 크고 밝은 달, 제대로 둥근 달. 술 한잔 걸치면 달마저 더 예쁘고 멋지게 보인다. 환상이었다.
내가 내 침실을 좋아하는 이유는 누우면 바로 달이 보인다는 점이다. 달은 왼쪽 창문 커튼 위에서 떠올라 오른쪽으로 조금씩 이동한다. 내 방의 오른쪽 창문 끝으로 달이 이동하면 날이 밝아온다. 때로 환한 달빛에 잠을 깰 때가 있다. 그런 날은 마치 오래 그리워했던 임이 나를 불러준 것처럼 반갑다. 하루쯤 잠 못 자면 어떠하리. 좋은 임이 오셨는데.
요즘엔 초승달도 그믐달도 참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초승달은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같고, 아직 자라지 않은 키 작은 소녀 같다.
그믐달은 욕심을 다 비워낸, 다 비워서 가벼워진 정갈한 초로의 스님 같다.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하였지만, 나는
아무 말 않고도 보고 있으면 그저 좋으니 내 벗인가 한다. 사모하는 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