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27년 차 소영이가 1년 차 소연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2
대체 하루 종일 뭐 하는지 모르겠어.
퇴근하면서 k계장님은 허공에 한 마디 날리고 가셨어.
‘저게 무슨 소리래? 누구한테 하는 소리지?’
눈치 없는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어. 그러나,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그 말은 나를 향한 말이었지.
내가 계장이 되어 보니 알겠더라. 굉장히 답답하다는 것을.
지시를 내렸을 때, 진행 상황이 어떤지 어떻게 처리했는지 무척 궁금하고, 그걸 잘 이야기해주는 직원이 고맙고 이쁘다는 것을.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 내성적이어서 사람들과 전화하는 것도 굉장히 힘이 들었어. 잘 모르는 사람들과는 더더욱. 조용한 사무실에서 내가 말하는 내용을 사람들이 다 듣게 되는 것이 신경 쓰였지. 계장님이 각 부서에서 보고서를 취합하라든지, 무언가 파악해보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나는 통화 대신 사내 메신저를 주로 이용하곤 했어. 통화할 일이 있어도 되도록 계장님이 안 계실 때를 이용하곤 했었지.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러 계장이나 과장님이 계실 때 업무에 관한 통화를 하는 것도 필요하더라구. 내가 이만큼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걸 알려줄 수 있는 거고, 상사는 그만큼 안심할 수 있는 거지. 특히 긴급한 사안일 경우에는 바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
그 당시 나는 시정 계획이나 시정 성과관리, 공약 이행 보고 등의 업무를 맡고 있었어. 관과소 각 부서 담당자와 수시로 통화하면서 업무가 이루어져야 했는데, 계장님이 볼 때는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하니 얼마나 답답하셨겠어? 순하고 성격 좋은 분이신데 참고 참다가 한마디 하고 가신 거였지.
처음 기획계 삼 석 자리에 앉아서 <1분기 시정성과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방향을 못 잡겠는 거야. 전임자가 했던 방식 그대로 해야 하는지, 계장님이 말씀하신 게 도대체 무언지 갈피를 못 잡고 이것저것 자료만 찾느라 시간을 엄청 많이 소비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쉬워.
바로 옆에 경험 많고 일 잘하는 직원이 있었는데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았고, 전임자에게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물어볼 수도 있었는데, 혼자 끙끙 앓다가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던 거야. 제일 좋은 것은 계장님과 계속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것이지만, 그땐 처음이라 계장님이 너무 어려웠었지.
내가 그 자리에 와보니까, 이런 걸 물어보고 이야기해 주는 직원이 좋더라구.
상사가 어려우면, 바로 옆 직원들하고 소통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이제 나는, 예전의 나를 생각하면서 내가 먼저 직원들에게 다가서고 업무를 챙기려고 노력하지만, 계장은 여러 직원의 업무를 다 총괄해야 하기 때문에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아. 잊고 있다가 집에서 자려고 누울 때 문득 떠오르지. ‘아 참! 그거 어떻게 됐지?’
직원이 아무리 머리 좋고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오랜 경험을 가진 상사의 눈높이에서는 또 다른 것이 보이는 법이야.
‘저런 사람이 어떻게 승진을 했지? 저런 사람이 어떻게 저 자리에 있지?’
이런 생각이 드는 상사가 있어. 그러나, 네가 볼 때 능력 없어 보이는 상사도 그 자리에 오를 만한 뭔가가 틀림없이 있는 거야. 업무능력이 좀 부족하면 인간관계 처세술이라도.
그러니, 네가 모시고 있는 상사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꼭 필요해. 특히 우리 조직에서는. 물론 너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일도 중요하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시민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먼저 시행할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 있는 일도 없을 것 같아.
우리 공직사회에서는 직위, 직급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일을 하고 있어. 서로 수시로 의견을 이야기하고 정보나 상황을 공유하면서 서로 잘 소통하면 일을 재밌게 하고, 또 잘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우리 몸이 혈액순환이 잘 되어야 건강하듯이, 우리 조직도 소통이 잘 되면 만사형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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