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고등학생들과 수업시간에 수평어실험을 해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두려움반, 설렘반 기대감을 가지고 수평어는 과연 가능할까? 를 썼습니다.
수업 첫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자마자 바로 이 영상부터 보여줬습니다. 2010년에 미국 오바마대통령이 한국에 방문했을때 일어난 일입니다. 오바마가 한국기자들에게 질문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질문하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고 결국 어떤 중국기자에게 그 기회는 돌아갔다는 내용의 영상입니다.
KBS에서 이정동 교수와 최재천 교수와 함께 <최초의 질문> 3부작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여기에 이 에피소드가 소개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우리는 왜 질문하지 않는가"입니다. 최재천 교수는 "우리는 학교와 일터에서 질문하는 기회, 방법, 분위기를 가져본적이 없다"라고 합니다. 맞는말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그저 주기만 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요? 그럼 매우 좋겠지만 막상 질문할 기회를 줘도 학생들은 질문하지 않는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시간들이 오랜기간 쌓여서 우리는 담백하게 질문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평등한 관계'에서 찾습니다. 질문하는 행위에는 '무엇을 질문하는가'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질문해도 되는 상황, 분위기인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렇습니다. 적어도 사회적 약자(나이가 어리거나, 직위가 낮거나, 배우는 학생이거나)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정도 되는 어린이들에게 질문은 무척 쉽습니다. 비록 사회적 약자이지만, 어린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기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등학생정도 되는 나이가되면 분위기를 파악하고, 지금 내앞에 있는 사람(상대적 강자)의 기분을 살피고 눈치를 보게됩니다. 자연스러운 사회화과정이긴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상당부분 부자연스러운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틀기위해선 여러실험과 도전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 영상을 보여주면서 '질문하지 않는 사회'의 문제점을 짚으며 수평어실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학생들에게 '수평어'는 다소 낯선말이지만 대체로 바로 알아듣고 이해하는 반응을 볼수있었습니다. 그리고 수평어를 해야하는 당위성에 대해 설명한 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택한 방법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다만, 반말에는 '평어'와 '일방하대어'가 있는데 '일방하대어'를 쓰지말자고 일러두었습니다. 야자타임이라는 게임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능에서 가끔 소개되는 야자타임은 시작하자마자 아수라장이 되는데, 그 이유는 '일방하대어' 잔치가 되기때문입니다.
방법이 복잡하면 까다로우면 쉽게 실천하기 어렵고 과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서로 편안한 상태가 돼서 수업내용에 더 집중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데 있는데 어려운 규칙을 지키기위해 태도가 경직된다면 그 실험은 실패할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운 최소한의 규칙은 '일방하대어를 쓰지않는 반말'입니다. 여기서 약간 문제가 되는것은 '호칭'과 '2인칭대명사'를 어떻게 할것인가 입니다. 이 두가지때문에 우리는 일상에서 수평어를 쓰지 못한다고 봐도 무방할정도로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이 두개만 해결하면 누구나 쉽게 수평어를 사용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어떻게하는것이 규칙을 최소화하면서 무례하지 않을수있을지.
호칭은 이름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문화에서는 이름을 부르는것을 매우 무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름과 성, OO씨, OO님, 직위와 직책 등을 모두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다음에 기회가있으면 이 부분을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여기서는 고등학생들이 저를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규칙을 최대한 없애는것이 관건이라면 동갑내기 친구처럼 생각하면 됩니다. 친구를 부를때 호칭의 규칙을 생각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친구를 어떻게 부를까요?
야
지선아
태호야
이렇게 3가지가 보통입니다. 첫번째 '야'부터 어렵습니다. '야'가 비속어는 아니지만 선생님한테 '야'는 좀 아닌것같고.. 규칙은 될수있으면 최소화하고 싶고..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두번째 '지선아'는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경희대에서 수평어실험을 하고있는 선생님의 경우 '진해' 이렇거 부르게하는데 이름을 부르게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미'를 빼고 '이름만' 부르는것은 저에게 다소 어색하게 들립니다.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이 대화하는 느낌이랄까요? 22학번이랑 '반말 모드'하는 50대 교수의 정체
자연스러운 것은 '아/야' 어미를 붙인 호칭입니다. 선생님의 이름을 'OO아/OO야' 이렇게 부르는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선생님에게 '태호야' 하는것은 되는데 '야'는 안된다? 이름만 빠졌을 뿐 '야'는 같은데 왜지? 저는 이것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야'는 '일방하대어'이므로 여기서 우리끼리는 쓰지말자고요. 규칙은 적을수록 좋고 단순할수록 실천하기 쉽습니다. '일방하대어'만 피한다면 모든 반말은 가능한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수평어는 다른말로 '예의있는 반말'이라고 합니다.
야 (X)
지선아 (O)
태호야 (O)
한국어는 상대방과 나의 관계에따라 수많은 2인칭대명사가 존재합니다. 자주쓰는 표현으로 '니/너'가 있고 드물게 쓰는 표현으로는 '당신, 그대, 자네, 자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선생님이~, 엄마가~, 과장님께서~, ' 라고 하는것은 2인칭대명사가 아니라 '호칭'을 '2인칭대명사'대신 사용하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현실적으로 2인칭대명사를 편하게 사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은 전적으로 나이가 적은사람, 또는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은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나이가 상대보다 많거나 지위가 높은사람은 상대방(2인칭)에게 '너'라고 하든, '당신'이라고 하든 크게 상관없습니다. 누구에게는 쓸수없는 말이지만 누구에게는 자유로움이 허용되는, 불평등이 심한 용어중의 하나가 바로 2인칭대명사입니다.
수평어실험을 할때도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것인지 결정을 내려야합니다. 저는 규칙의 최소화를 추구하기때문에 '예의있는 반말'모드로 한다면 '니, 너, 당신, 그대, 자네' 마음껏 쓸수있어야합니다. 이 말들은 비속어나 일방하대어는 아니니까요. ('니'는 조금 애매하네요)
그럼 대표적인 2인칭대명사인 '너'를 사용해본다고 가정해봅시다.
학생 : 여기 숙제해왔어
선생님 : 응, 근데 여긴 왜 이렇게 했어?
학생 : 지난시간에 '너'가 이렇게 해도 된다고했잖아
'너'는 분명히 '일방하대어'가 아니니까 이렇게 말할수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규칙으로 수평어실험을 할수있습니다. 제가 이렇게해도 된다고 학생들에게 설명하니 학생들의 반응은 당황스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 되지않는 일들이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잘 내키지 않은일을 억지로 하게만드는 것도 폭력이 될수있습니다. 저렇게 말하는것도 허용되지만 학생들이 어색해서 못하겠다면 적절한 수준에서 할수있는 방법을 제시해줬습니다. 바로 '호칭'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A. 지난시간에 '샘'이 이렇게 해도 된다고했잖아
B. 지난시간에 '태호'가 이렇게 해도 된다고했잖아
2인칭대명사 자리에 호칭으로 이름을 넣는 B안은 문맥상 상당히 어색합니다. 바로 앞에있는 사람과 대화하고있는데(1,2인칭) 다른 누군가(3인칭)를 말하는것 같은 느낌이 들기때문입니다. 현실적인 정서를 감안했을때 A방식이 그나마 가장 적합해보입니다. 하지만 엄밀히말해서 진짜 2인칭대명사는 아니기때문에 '너'를 사용해도 괜찮다는 사인을 미리 보내면 좋습니다. 그런 소통속에 우리말속에 이런 구조적 문제점이 있구나, 깨닫게되고 바로잡으려면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고민해보는 기회를 만들수있습니다. 괜한짓을 벌려 사서 고생이라는 시각도 있을수있지만, 저는 이런 경험들이 진짜로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렇게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시치미를 뚝떼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어짜피 수업시간에 말을 거의하지 않는경우가 대부분이라 크게 달라진점은 없었지만 기분은 매우 달랐을것입니다. 두번째 수업시간에 이런 실험을 하는것에 대한 소감을 쓰게했습니다.
정OO (고3)
높임말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예우를 갖춘다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지만 이러한 그룹 커뮤니케이션 작업을 할 때는 비효율적인 의사소통과 수직적인 그룹 커뮤니케이션의 반증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수평 어를 사용하니 그룹 내의 사람들과 동등하고 공정한 위치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쌤에게 더욱 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수업에서도 수평어로 더욱 편한 참여형 수업을 하게 되는 것이 기대된다. 이 수평어 사용을 나의 동아리에서도 제안해봐야겠다.
심OO (고3)
갑자기 수평어 쓰기로 해서 놀랐고, 어색했는데 계속 하다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근데 익숙해질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김OO (고1)
수업 첫 오티 때 수평어를 사용해보자는 쌤의 의견이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놀라운 이야기여서 그 말을 들은 후에는 조금 뇌정지가 온 것 같았다. 그렇지만 수평어를 쓸 때의 이점들을 생각해보면 이 수평어를 썼을 때 수업의 진행과 여러 아이디어 창출에 막힘없이 진행될 수 있어 수업 방향과 결과물 산출에 굉장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평어를 쓰며 좀 더 친밀하고 완만한 인간관계를 또 하나 만들어나갈 수 있어 기쁘다
정OO (고1)
처음엔 수평어가 뭔지 의아했었는데 나중에 점차 알아가보니 사람 사이의 불필요한 거리를 없애 토의하거나 의견을 재시 할 때 거리낌 없이 인간관계가 수평을 유지하여 대화를 원활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도전을 해 수업에 흥미를 북돋아 주신 선생님이 참신하다고 느꼈고 앞으로도 학생들과 교사가 수평어를 사용함에 따라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남OO (고1)
처음에는 반말이랑 좀 헷갈렸는데 지금도 좀 헷갈리긴 하지만....그래도 어른에게도 반말을 쓴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어색하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첫번째 학생의 소감중에 "내 동아리에서도 해보자고 제안해봐야겠다" 이 문장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말의 장벽과 불균형은 어른과 학생들의 관계에도 물론 존재하지만, 1,2살 터울의 같은학교 학생들간에도 똑같아서 옆에서 지켜보면 소통이 원활해보이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뭐라고 말해야할지 몰라서 아예 모른척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10살 내외로는 막역한 친구사이가 될수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그런 모습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비록 저 학생은 동아리에 수평어실험을 도입하는데 실패했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실험의 시작은 패기로웠지만 마무리는 흐지부지했습니다. 역시 이렇게 쉽게 될일이었으면 이미 뭐라도 됐었겠죠. 결코 쉽지않을거라고 생각하고 시도했고 실패했습니다. 실험의 결과는 학기말에 학생들에게 보냈던 제 소감으로 대신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실험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런 경험을 한번이라도 해봤고, 멀리서나마 지켜봤고, 실험의 공간에 나도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 싹을 틔우게될지 모르는일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수평어를 제대로 사용했던 학생이 1/3도 안됐으니까요. 실패할줄 알았고 이렇게 결과가 나왔어도 상관없어요. 애초에 말했던대로 손해볼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인사이트 또한 얻어갈수 있었으니까 괜찮은 시도였습니다. 여러분도 신기하면서도 조금 어색했던 경험을 했고 이것은 어떤 '메세지'이니까 자기 나름대로 축적됐고 나중에 어떻게 발현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 언어의 '장벽'이 이만큼 두텁다는걸 다시 깨닫게됩니다. 하지만 이 '장벽'은 완전히 해체하지않더라도 이런식으로 잽을 날리면서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내야합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에요. 한국사회의 소통의 단절은 이 언어장벽에 있고 이녀석은 존경과 예절이라는 가림막 뒤에 숨어서 우리를 서로 어색하고 낯선 사이로 만드는 못된 존재입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간 그렇게 느끼는 순간을 만나게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