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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Mar 10. 2024

거리간판은 디자인문제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간판디자인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주변의 맥락과 전혀 상관없거나 어울리지 않게 너무 크고 색이 세고 건물을 가리고 서로 비슷비슷하게 만들어진 간판들은 길과 풍경을 단조롭게 만듭니다. 그래서 지자체에서 개입해서 간판정비사업이라는것을 벌여 이러한 문제점을 없애보려고 노력합니다. 


대학 3학년때 편집디자인 수업과제로 부산 광복동의 간판정비사업에 대해 취재하고 정비 후 개선효과에 대해 결과물을 책으로 만든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간판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이런 사업을 진행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사람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겁니다.


거리의 간판문제는 곧 디자인문제다.
디자인을 좀 더 이쁘게(?) 바꾸는 노력을 통해 이런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어서 디자인전문가 모셔오고 공공디자인 TF팀 만들어봐!)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궁금해졌습니다. 외국의 상인들은 모두 수준높은 디자인감각을 가진걸까요?

한국의 상인들만 유독 디자인교육을 받지못했고, 생업에 바빠서 디자인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고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걸까요? 그렇다면 모든 상인들이 교육을 받고 컨설팅을 받아서 디자인감각을 끌어올린 다음, 자본을 투입해서 간판디자인을 이쁘게(?) 개선하면 우리도 외국거리같은 모습을 갖출 수 있을까요?


출처 : 슬로우뉴스, 간판의 힘: 경주 vs. 교토(?) 사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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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otels.com, 파리의 인기 거리 베스트 10
출처 : 브런치, 파리의 예쁜 거리 12곳


한국의 사진은 경주, 두번째 사진은 일본 나라이(교토부근), 마지막 2장은 파리거리의 모습입니다. 간판으로 인한 차이가 확연히 느껴질겁니다. 경주사진을 보고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것이 사실입니다. 현재는 간판정비사업을 해서 저런모습은 아니라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는 저런 모습을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사진은 전문가가 찍은듯한 작품같은 사진인데 고풍스럽게 멋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파리사진은 비교적 평범한 거리의 모습들처럼 보입니다. 


이 사진들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간판이 아닌 다른 차이점이 보이나요? 


디자인은 현상의 '결과'일 뿐입니다. 문제의 원인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단지 상태의 결과로 드러나는것이 디자인이라서 사람들은 디자인에 손가락질을 하기 마련입니다. 


사진을 다시한번 살펴보세요. 내가 저기를 지나가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어떤 상태로 지나가고 있나요? 걷고있나요? 차를 타고있나요? 밥먹을 곳을 찾고있나요?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거리


경주사진에는 차가 있지만 나머지 사진들에서는 차가 없다는 점이 제가 발견한 차이점입니다. 그리고 경주거리의 간판이 자극적이게 될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는 사람보다 빠르죠. 빠르게 이동하는 차에게 가게가 어필하기 위해서는 색은 채도가 높아야하고 글자는 커야하며 식당 이름보다는 어디어디 출연했고 가격은 얼마라는 원색적인 내용이 드러나야 합니다.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거리는 어떨까요? 굳이 간판이 자극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시속 4km로 천천히 걷고 그 사람들은 밥먹으러 어디갈지 천천히 결정할 수 있습니다. 걷는 사람에게 가게입구 천장에 달린 간판은 그저 부속품에 불과합니다. 걷는 사람에게는 더 좋은 판단지표가 있습니다. 가게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점, 다른 손님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고있는 모습들, 바깥에서 바라본 가게 내부 인테리어와 분위기는 이 곳을 방문할지 말지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가게에 사람들이 걸어온다는 것은 대부분 멀지 않은곳에서 온다는 뜻입니다. 즉 주민들이 찾는, 로컬가게라는 것이죠. 가게주인이 주로 상대하는 손님은 가게앞을 시속 4km로 어슬렁거리며 배회하는 사람이며 그 사람은 동네주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된 가게와 손님은 그 지역을 떠나지 않는한 꾸준하게 방문하게 될것이고 그렇게 단골들이 많아지면 간판은 막말로 '없어도되는' 수준까지 이르게됩니다. 저는 예전에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한달을 지낸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달동안 매일다녔던 식당이 있었습니다. 그 식당 역시 간판은 거의 있으나마나 하는 수준이었지만 동네사람들은 모두 여기가 어떤식당이라는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게 이름조차 몰랐던 곳이지만 식당 주인인 아주머니와 저는 늘 친근하게 인사를 했고 싸고 맛있는 음식을 기분좋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단골들이 찾는 가게의 간판은 원색적일 필요가 없다는 말은, 원색적인 간판을 만드는 가게는 단골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자동차에 잠식당한 거리에서 걸어가는 것은 불편하고 위태롭습니다. 때로는 무미건조함을 너머서 불행지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차 덕분에 목적지에 빠르게 갈수있지만 그만큼 잃어버린것들도 많습니다. 거리의 디자인도 그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만으로는 이 거리의 모습을 더 낫게 바꿀수 없습니다. 거리를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이동하는 속도를 낮추면 디자인 디테일은 살아날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단어인 '휴먼스케일'도 바로 같은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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