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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진로는 좀 정했니?

by 김정완

방과후 수업으로 디자인과 영상제작을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가끔 진로상담도 겸한다. 학생들이 선택해서 듣고있는 내 수업도 진로탐색 중 하나일터, 어찌보면 수업내용보다 진로상담이 더 중요할수도 있다. 도무지 무엇을 선택해야 좋을지 난처한 상황이라 더욱 그럴것이다. 상담하자고 먼저 제안하는 것도, 대화를 먼저 시작하는것도 나다. 여러명이 있을때는 눈치를 보며 솔직하지 못하게 될까봐 나는 반드시 1:1로 상담을 진행한다.


그래서 진로는 좀 정했어?


이렇게 운을 띄우며 상담은 시작되는데 가끔 학생들의 대답을 듣고 좀 갸우뚱해질 때가 있다.


"의상학과로 정했어요"

"멀티미디어과요"


나의 물음에 학생들은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대학의 <학과>로 대답한다. 사실 그 학과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졸업후에 무슨일을 하게될지 나로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잘 모르는건 정작 본인들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는거니까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자기의 진로를 대학의 '학과'로 좁혀 생각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진로는 '장차 하고싶은 일' 중심으로 가능성의 잔가지가 뻗쳐나가야하는데, 일단 현재 성적에 맞추고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들리는 그럴싸한 '학과'를 선택하고 학교의 레벨만 높다면 어떻게든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도 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기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담 막바지에는 '원하는 학교의 원하는 학과의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커리큘럼이 어떤지, 교수는 누구인지, 그곳에 쓰여있는 단어들을 보고 가슴이 뛰는지를 살펴보라'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의 삶은 너무 바쁘고 고단해서 이 세상에서 장차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나는 어떤 활동을 좋아하는지 자기탐구를 제대로 수행해나가는건 결코 쉽지않다. 그래서 코앞으로 다가온 대학입시를 대비해 쫒기듯 진로를 선택당할 수 밖에 없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상담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려고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감히 하지 못할 말을 해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진로고민은 18살에만 하는게 아니더라?
20대중반에도, 30대 중반에도,
심지어 40대 이후에도 계속돼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하지말고
일단 무엇으로 커리어를 시작할것인지
천천히 생각해봐.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말고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편안해져


대학을 꼭 가야지 원하는 일을 하고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내와 평소에 종종 대화를 나누곤 한다. 나는 대학은 굳이 필요없다는 강경파, 아내는 그래도 대학의 경험은 인생의 밑거름이 된다는 온건파이다. 우리는 열띤 설전을 벌이다가도,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인가에 따라 다르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대화는 마무리된다.



2015년 방영된 <동해 묵호항 얼음공장 72시간> KBS 다큐3일


위 사진은 다큐3일의 명언이라 불리는 한 장면이다. 바다와 어업이라는 삶의 현장 한가운데서 아름다운 시의 한 구절과,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야기하는 선장의 한숨이 시청자들에게 안타까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해준다. 그리고 나는 이 선장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배 위에서 시를 쓰길 바란다. 시는 국문학과를 가야만 쓸수있는건 아니다. 디자인도, 경영도, 요리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하고싶은 일을 하기위한 수많은 과정 중 하나일 뿐, 대학입학이 인생의 목표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꿈은 대학이 아니라 '시를 쓰는 것'이 되어야 한다.


물론 어린이도 시를 쓸 수 있지만, 저 선장이 말하고자 하는것은 그냥 시를 쓰는게 아니라 제대로 배워서 좋은 시를 쓰는 것일듯 하다. 하지만 제대로 배운다는 것은 뭘까? 대학은 항상 제대로 가르치는 곳일까? (이 문제는 나중에 따로 한번 써봐야지) 이 선장에게는 시에 대한 사랑과 어부의 삶, 그리고 수많은 인생경험이라는 자산이 있다. 그 자산을 가지고 시를 쓴다면 다소 투박하더라도 충분히 멋지다. 중요한 것은 시에 대한 사랑과 자기 인생을 투영시키는 감각과 고유의 경험이다. 세련미와 완성도는 시를 쓰다보면 저절로 갖춰질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선장이 지금이라도 시를 쓰길 바란다. 어른들이 먼저 그렇게 살아야 어린 학생들이 그러한 도전정신을 이어받는다. 중년의 가슴뛰는 삶을 위해서, 또는 다음 세대의 멋진 선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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