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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되면 균열이라도

by 김정완

어제 아내와 함께 지인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지인이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기존질서에 반항적이냐고' 나의 이런 성향을 못마땅해서 묻는건 아닌듯했다. 그 친구의 성향 또한 나와 비스무리한데 내가 이런 태도를 갖게된 개인적인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세상이 제대로라면 출산률과 자살률이 이렇지 않을거다.
기존의 방식 전부를 부정하는게 아니라 그 중에서 별로인게 있다면
'진짜 구리다'고 할수 있어야 한다.


미대입시를 위해 미술학원에 가려고 고등학교 2학년때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겠다며 교무실로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맞서싸운게 내 기억 속 첫번째 반항이자 균열이었다. 초저녁부터 늦은밤까지 모두 교실에 남아 조용히 공부를 해야만 하는 분위기에서 반대의견을 논의하는 것은 교사에게도 낯설고 곤란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집단최면이 걸려야 그렇게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는지 나는 여전히 의아하다. 모든 학생이 수능을 잘봐야 했던 그 시절, 수능시험에 나오는 문제는 삶의 어떤 부분을 해결하기위한 공부인지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을까?


나와 가까운 사람중에 의대를 가기위해 현재 7수를 하고있는 수험생이 있다. 7수생이 3수생일 무렵 나와 진지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순수한 열망이 있었다. 이번에 안되면 진짜로 포기하겠다는 말만 올해까지 4번째 들었는데 12월초인 지금, 아직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홍대 미대를 오기위해 4수를 했던 후배지만 나보다 한살이 많았던 형이 있었다. 그 형은 그토록 오고싶어했던 디자인과에 왔지만 현재는 입시미술을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계획대로 되지않는게 인생인가 싶다. A를 위해서 B를 열심히 했는데, B를 너무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새 B전문가가 된 것이다. 일곱번째 수능을 봤던 그 친구도 의사가 되어 환자를 돌볼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의사가 목표였던 그 친구는 이제 수능전문가가 되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좋은일일수도 있다.


지방에 있는 일반고등학교에서 수능 만점자를 배출했다며, 학교 교육방식을 칭찬하는 뉴스를 봤다. 아직도 이러고 있는걸 보면서 우리는 갈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수능이라는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미션같은게 아니다. 그저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것이 수능 문제라는 것이다. 어떻게하면 변별력을 만들어낼까 고민하면서 억지로 어렵게 만든게 수학문제고 과학문제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도 잘 풀지 못할 정도로 영어 문제는 자연스럽지 않다. 이 세상과 약간 동떨어져있는 것이 이 시험이라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을 전부 맞춰야하는 상황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그걸 다 맞추는 사람이 나타다다니? 직업이기 때문에 시험문제를 쥐어짜낸 출제위원들조차 정작 다 맞추지 못할것이라는게 아이러니다. 시험을 잘봐서 좋은점이라면 딱 하나 있다. 공부하는걸 공부할줄 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내가 알지못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 주식투자라던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라던가 유머러스하게 말하는 방법같은건 시험에 나오지 않지만 살아가면서 매우 중요한 것들이다. 살아가다가 낯선 뭔가가 툭 튀어나왔을 때, 공부를 공부했던 사람은 이런 것들을 요령있게 습득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연습할 수 있다. 100% 들어맞지는 않지만 그럴 확률이 조금 높을 뿐이다. 수능시험에 나오는 문제와 세상의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기때문에 시험문제에 그렇게까지 공을 들일 필요도 없고 대학입시에 그렇게까지 목을 멜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세상에 대한 관심과 내적인 자신감과 사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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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별력을 내기위해 억지스럽게 쥐어짜낸 그저그런 지식들을 잘 안다고 우쭐댈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그런 지식들을 모른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 10대후반에 그런 취급을 받았더라도 20대에 만회하면 괜찮다. 자유로운 성인이고 다 큰 어른이니까. 하지만 10대처럼 2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주변사람들과 늘 비교하고 정해진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것 같다고 불안해하고 자책한다.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존에 만들어진 길 따위는 없다. 우리가 알고있는 대부분은 기껏해야 50년, 100년 밖에 되지않는 근본없는 짧은 역사속에서 식민지시대와 급속한 산업화시대에 떠밀려서 디테일없이 허둥지둥 만들어졌을 뿐이다. 만약 자기가 정해진 길을 잘 못가고 있는거라면 나는 잘하고 있는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모두가 같은 시험을 보고 같은 길을 간다는것 자체가 어딘가 매우 잘못된거니까. 잘 안풀리면 모든걸 그만두고 훌쩍 떠나보기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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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1인이 사회를 들여다보면 되게 세상이 거대하단 말이에요. 내가 여기서 뭔가 새로운걸 한다거나 과감한걸 해서 균열이라도 낼수있을까 생각하기 쉬워요. 근데 사실 저는 일을 해오면서 크게 느낀게 세상이 생각보다 연약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내 주관을 가지고 강하게 던지면, 들이받으면 세상이 깨지더라. 그러니까 도전을 하는 입장에서 너무 겁내지말고 진짜 그냥 들이받으면 좋겠다. 특히나 젊은 친구들한테 도전하는 입장에서 (그런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 음... 생각보다 (머리를 긁적이며) 세상이 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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