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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Nov 13. 2023

늙음이 삶의 자산이 되는 이유

-최영철, <늙음>

        늙음

                    -최영철     


    늘 그럼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늘 그럼그럼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늘 그렁 눈에 밟히는 것

    늘 그렁그렁 눈가에 맺힌 이슬 같은 것

    늘 그걸 넘지 않으려 조심하는 것

    늘 그걸 넘지 않아도 마음이 흡족한 것

    늘 거기 지워진 금을 다시 그려 넣는 것

    늘 거기 가버린 것들 손꼽아 기다리는 것

    늘 그만큼 가득한 것

    늘 그만큼 궁금하여 멀리 내다보는 것

    늘 그럼그럼

    늘 그렁그렁     

     

  ‘늙다’는 동사이고, ‘젊다’는 형용사입니다. 동사는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고, 형용사는 사물의 상태나 성질을 나타냅니다. ‘젊다’는 형용사이니 한창때의 상태를 나타내고, ‘늙다’는 동사이니 나이가 많아지는 과정, 한창때를 지나 쇠퇴하는 과정, 삶의 연륜이 쌓이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시인은 ‘늙음’을 ‘늙’의 ‘늘’과 ‘그럼, 그렁, 그걸, 거기, 그만큼’의 ‘그’를 연결하여 늙음을 ‘늘 그러한 상태’의 형용사로 보았습니다. 쇠퇴하는 과정으로 본 것이 아니라 삶의 깊은 연륜이 쌓여있는 상태로 보았습니다. 

  그런 연륜이 쌓여있으니,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개를 가로젓던 젊음들이 켜켜이 쌓인 삶의 연륜이 ‘그럼’, ‘그럴 수 있지’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여기 실의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젊음은 그 사람의 어깨를 마구 흔들면서 ‘정신차리라’고 윽박지른다면, 늙음은 그 사람의 어깨를 토닥여 위로해 줍니다. 위로의 눈물을 흘리며 남의 아픔에 공감해 줍니다. 젊음은 어떤 한계를 넘기 위해 발버둥 치고, 한계를 넘어도 또다른 한계를 설정하여 또 넘으려 합니다. 그러나 늙음은 한계를 넘지 않으려 조심하고, 넘지 않아도 흡족하게 생각합니다. ‘만족함을 알면 항상 즐겁다’는 지족상락(知足常樂)의 경지는 늙음의 특권입니다. 지족상락의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그 금을 다시 그려 넣을 수 있는 것 또한 늙음의 특권입니다.

  젊음이 다가올 미래의 희망을 기다린다면, 늙음은 지나간 것들을 기다립니다. 다시 오지 않을 어린 시절, 젊은 시절에 대한 추억을 반추하며 그날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늙음의 행복입니다. 남은 삶을 추억으로 채워가기에 늙음의 가슴은 지나온 추억을 보는 만큼이나 멀리 내다볼 수 있습니다.


  ‘늘 그럼그럼’, ‘늘 그렁그렁’처럼 늘 긍정적으로 상대를 인정해주고, 상대의 아픔에 공감과 위로를 주는 늙음이야말로 삶이 쇠퇴하는 작용이 아니라 삶의 소중한 자산임을 이 시를 통해 다시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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