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약을 늘리기로 했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 째다. 약을 먹으면 잠을 잘 자고 가끔은 무모할 정도로 용기가 불끈 솟는다. 하지만, 우울감은 별로 호전되지 않았다.
오늘 아침만 해도 깨어나 여러 뒷정리할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는 결정이 아닌지 근심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얼마 전에 가족 일원 중인 누나에게 우울증 치료 중이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누나는 이틀이나 아무런 말이 없더니 주말에 내게 문자를 보냈다.
언제부터 그랬던 거야?
잠깐 고민했다. 글쎄, 언제부터일까?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고 나서? 연애의 쓴 맛을 여러 번 겪고 나서? 한국으로 유학 오고 나서? 아니면, 더 먼 과거였던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딱 한 가지를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서른 넘게 살아오면서 다양한 인생 경험을 했으니 그 속에서 참고 견디고 묵힌 서러움이 너무 많았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난 항상 혼자였다. 개인 문제는 혼자 해결하고 의지할 곳이 없어 서러웠던 적이 많았다. 몸이 아파도 혼자 진료받고 처방약을 먹는 게 전부였다.
명절이나 생일에는 가족이 곁에 없을 때가 부지기수였다. 사춘기를 외로움으로 채웠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 성적 정체성에 대해 방황기를 겪다 끝내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인 걸로 확신했다. 그때도 역시 혼자다.
한창 성장기에 있던 소년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지만,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생일을 혼자 보낼 때 ‘외롭다’고 말하지 않았고 성적 정체성으로 방황하고 힘들 때 ‘슬프다’고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독감이라도 걸려 열이 나고 콜록거리면 ‘괜찮아, 곧 나을 거야’가 아닌 ‘아프다’, ‘보고 싶다’를 말하고 싶었다.
아마 그때부터 애어른 성격이 자리 잡혔나 보다. 그 뒤로는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는데 능했고 그래야만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가끔 혼자만의 힘으로 쉽게 넘지 못하는 벽에 부딪힐 때면 도움을 요청할 줄 몰라 끙끙 앓았다.
오늘부터 애드피온서방정을 추가로 처방받았다. 감정의 기복이 여전히 큰 편이라 이 약을 먹으면 안정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그랬다. 우울증상이 다소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또 극도로 우울하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속 대사를 인용하자면,
우울증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같다.
어느 날은 한없이 우울하고 또 어느 날은 한없이 맑다.
어쩔 수 없다. 지금은 그냥 이런 나를 받아들이고 안아주고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부정적인 것들은 밖으로 내뱉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일단 감기나 몸에 난 상처가 아닌, 마음의 생채기를 치료해야 했다. 아픈데 안 아픈 척 견딘다고 해결되지 않는 게 몸이다. 이번 계기로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적어도 마음속에 담긴 말을 뱉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photographer: 박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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