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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담 Aug 04. 2021

#04 딸 사진은 예뻐지면 보여줄게

"예뻐지면 보여줄게".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사진을 원했다. 정말 궁금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반 이상은 "식사는 하셨어요?"와 다를 바 없는 질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대개 생각보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바지 지퍼가 열려있어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데 하물며 머리가 바뀌었는지, 신발이 바뀌었는지, 심지어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까지 관심을 가질리가 있나. 그러니 남의 아기 사진을 보는 일은 "좋겠네요", "귀엽네요"라는 말로 마무리하기까지의 딱 1분간의 킬링타임용일 뿐이다. 여기에 오바하여 사진 서너개와 동영상까지 보여주는 순간 영혼 실린 반응에 대한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식사했냐는 가벼운 질문에 식당 위치와 인테리어, 맛의 구체적인 평가까지 구구절절 설명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예뻐지면 보여준다"는 대답은 짜여진 각본과 같은 대화에 소금과 같은 것이었다. 뻔한 반응으로 끝날 1분짜리 대화를 30초짜리 웃음으로 비틀어 낸다. 하지만 그 말에 진심이 1도 담겨있지 않았다면 웃음이 아닌 어색한 침묵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나는 솔직히 내 딸이지만 예쁜 아기는 아니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안고 있으면 더 할 수 없이 좋았다. 하지만 사진을 본다고 막 즐겁고, 행복하고 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 아기구나, 참 작구나, 그런정도의 기분. 물론 마누라가 틈틈이 보내오는 아기 사진에는 최선을 다해 반응하는 정도의 눈치는 있다. 다만 마누라도 정말 사진만 봐도 예쁘고 좋아서 나한테도 보내는걸까? 그런 소소한 의문은 들었다.


내가 이상한걸까. 아님 아직까지 육아에 거의 동참하지 않고 있어서 그런걸까. 일이 너무 바빠 정신이 없어서? 그것도 아님 외모에 대한 과한 기대가 있었던걸까.


반전은 태어난지 6개월째에 일어났다. 집에 와보니 갑자기 우리 아기도 예뻐진 것이 아닌가. 내가 드디어 변한걸까? 아니었다. 마누라가 근처 미용실에 가서 아기의 머리를 자른 것이었다.



놀랍게도 아기도 머리빨이 중요했다. 앞머리를 가지런히 자른 것만으로 이렇게 달라지다니. 내 자식이라도 예쁜 자식이 더 좋나 보다. 미안했다,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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