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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담 Aug 01. 2021

#01 딸을 처음 만난 날, "바뀐 것 아냐?"

"진짜 우리 딸이 맞는거지?"


감격에 겨운 확인이 아니었다. 진심어린 의심이었다. 정말 내 딸이 맞는걸까. 혹시 바뀐 건 아닐까. 확신할 수 없었다. 


못생겨서도 아니고(울어서 눈이 많이 부어있긴 했지만), 의심할만한 정황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너무 덤덤해서였다. 남들처럼 감격해야 한다는 강박(?)은 원래부터 없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덤덤했다. 아빠로서의 책임감 같은 건 1초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작고 약한 생명체구나, 참 가볍구나, 하는 느낌이 지배적인 감정이었다.


차라리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한 날이 감동이었다. 얼떨떨하고, 아이가 생긴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 날짜가 찍혀 있는 신문 위에 올려놓고 기념 사진도 찍었다. 아이의 첫 기록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출산을 지켜보지 못해서 그런가? 낮에 진통이 시작돼 병원에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예정된 재판만 마치고 바로 넘어가려 했으나 재판 시작 3분 전에 갑자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긴급 제왕절개 수술을 시작한다고 동의를 구하는 전화였다. 


"어차피 지금 오셔도 소용없으니 바로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머릿 속이 하얘지던 찰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저 말에 조금은 안심하며 일을 마치고 가기로 결심했다. 1시간 뒤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이미 상황종료. 유리벽 너머로 아이를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앙다문 입술, 꼭 감은 눈. 신생아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머리숱, 그 위로 매직으로 큼직하게 쓰여진 엄마의 이름. 그리고 그 아래 조그맣게 쓰여진 내 이름.


실감이 날듯 말듯 아리송한 기분이다. 유리벽 안에 저렇게 아이들이 많은데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처럼 혹시 바뀌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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