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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Jan 04. 2024

그래도 생각이 없는 것보단 많은 게 낫지 않아?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프롤로그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봐, 그럼 마음이 편해져." 어릴 적 내가 잠을 못 이룰 때면 엄마가 해주던 말씀이다. 나는 가만히 누워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머리를 비우자, 머리를 비우자, 생각하고 있으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비우자는 건 생각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람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조금씩 전원이 꺼져 가던 머릿속이 다시 활성화되며 온갖 잡념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나는 생각을 없애고 머리를 비우는 데 성공한 적이 없다.


'과연 사람에게 머리를 비우는 게 가능한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떠나서, 그냥 그 자체로 내 머릿속은 시끄럽다. 처음 정신과 문을 두드렸을 때 의사는 물었다. "어떤 점이 불편하세요?" 그때 내가 처음으로 꺼낸 답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시끄러워요..."였다.


글을 쓰면서 다양한 표현을 활용하는 게 좋다는 데 동의하지만, '시끄럽다'는 말 외에는 내 머릿속의 상태를 설명할 쉬운 방법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삶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와, 의심과 의문과 고민과 걱정이 자리잡고 있다. 그 의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내 집중력을 좀먹는다. 마치 오류가 났을 때, 프로그램 하나가 무한로딩을 반복하면서 멀쩡하던 컴퓨터를 다운시키는 것과 같다. 질문의 무한로딩 속에서 나는 그저 무력하게, 윈도우 체제에서 시스템 관리자를 켜듯이,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쓸 뿐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누군가는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생각이 많으면 이런저런 경우를 다 대비할 수 있으니 좋은 게 아닌가? 생각이 없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나도 생각 없이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미래에 대한 대비라는 측면에서 '생각 많음'에 장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걸 전복시키는 단점이 있다.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의 50% 정도가 이미 생각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지점이다. 그러다 보니 일상이 늘 피곤하다.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해도 피곤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며칠 전의 하루를 예로 들어보자. 그날도 평범하게, 7시 30분쯤 출근길에 나서고 6시쯤 퇴근해 집에 돌아오는 일과였다. 아주 이른 시간에 찬 바람을 맞으며 외출하니 갑자기 1년 전 이맘때 생각이 났다. 나는 그때 대학원 시험기간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 준비는 첩첩산중이었고 시험 답안지에 뭘 써야 할지 암담하기만 했다. 시험이 9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1시까지 이어지는 일정이었기에 다 죽어가는 얼굴로 아침부터 학교로 향하고 있었는데, 나와 함께 학교에 향하는 동기들은 그래도 제법 최선을 다 했다는 표정으로 재잘거리고 있어 나와 너무나도 비교가 되었다. 그때 나는 공부도 제대로 안 되어 있었지만 인간관계도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마음 붙일 데가 없는 대학원 생활이 그때만큼 절절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며 나는 출근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에 사람이 참으로 많았다.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눈에 띌 때마다 내 머릿속에 또 잡념의 물결이 퍼졌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브랜드의 목걸이를 착용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한없이 부러워졌다. 나는 3년 전부터 비비안 웨스트우드 브랜드의 목걸이가 갖고 싶었지만 그걸 사기에 돈이 없었고, 이번 회사에 취직하면서 무사히 수습 기간을 넘기면 그 목걸이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차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둘 처지였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출근을 했다.


출근해서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온갖 생각을 했다. 우리 회사(이제는 전 회사가 되었지만)의 사무실은 아주 커다란 사무실 안에 온갖 팀의 직원들이 모여 있는 형태였는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때마다 별에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점심을 혼자 먹는 날이었지만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했다. 그 생각들에 대해 다 적었다가는 그저 지루하기만 할 테니 이쯤에서 줄이겠다.


사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다들 아주 작은 것만 봐도 백만 가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에 이어지는 생각들을 따라 가면서 온갖 추억을 되새기고 그때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지, 내 주변 사람들은 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 또 반추해 보는 게 일상인 줄 알았다. '나는 정말 사람이 많구나'라는 걸 깨달은 건 정신과에 다니고 심리상담을 받으면서부터였다.


- 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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