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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Apr 27. 2023

나의 바다로

이자람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

사방이 어둑한 새벽 2시, 작은 어촌 마을 코히마르의 어부들이 오늘도 바다를 향해 나선다. 소리꾼 이자람이 헤밍웨이의 소설을 판소리로 각색한, 동명의 창작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의 시작이다. 한 뼘 남짓한 판 위에 자리 잡은 소리꾼과 고수가 부채와 북, 목소리로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리 끌면 이리로, 저리 끌면 저리로 와르르 뒹구는 사이 2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이자람이 바다로 끌면 바다가 보이고, 고기를 잡으면 고기가 보이고, 상어와 싸우면 상어가 보였다. 유례가 없는 경험이었다.  


쿠바의 어촌 마을에 사는 노인 산티아고는 평생 외줄낚시로 커다란 고기를 낚아온 어부이다. 하지만 바다로 나간 지 84일이 되도록 좀처럼 고기가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부로서 그의 운이 다 한 것 같다며 뒤에서 수군거린다. 묵묵히 오늘도 바다로 나간 산티아고가 85일 만에 커다란 청새치를 만나 사투를 벌인다.


이자람의 판소리에서는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청새치와 며칠에 걸친 힘겨루기를 하며 한계까지 자신을 밀어붙이던 노인이 마침내 수면 위로 몸을 드러낸 청새치와 마주한다. 그 고기는 태어나 처음 만나는 크기였다.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고기의 정체를 확인한 노인이 너를 죽이면 마을 사람이 몇이나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러다가 어쩌면 너같이 위대한 고기를 먹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그럼 나는 너를 왜 잡으려 할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왜 너를 죽이려 할까."

"죽이지 않고 이길 수는 없을까."


이자람은 청새치를 마주한 노인의 질문을 소리꾼 이자람의 질문으로 이어받았다.


"나는 왜 판소리를 할까."

"이 힘든 걸 왜 계속할까."


공연을 보기 전, 이자람의 최근 인터뷰를 읽었다. 창극 <정년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서 이자람은 말한다. 언젠가 판소리의 속을 잘 아는 '귀명창'들이 가득 들어찬 공연장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저는 대체 언제까지 판소리가 이런 거라고 새로 소개해야 할까요?"

5살에 가요 예솔아!로 알려진 이자람은 올해로 44살이 되었다. 여전히 그를 통해 판소리가 새로 알려지고, 나 역시 이자람을 통해 판소리 공연장에 처음 앉아있다. 그러니 저 질문이 그의 삶에 얼마나 끈덕지게 따라붙었을지 상상해 본다. 나는 이걸 왜 할까, 이렇게 힘든 걸 왜 할까.


공연장의 팸플릿에 이자람의 작업노트가 실려있었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힘 있게 다뤄야 할 것이 노인의 건강한 체념인 줄 알았다가,
버리지 않는 희망인 줄 알았다가, 주어지는 삶을 버텨내는 것인 줄 알았다가,
청새치와의 싸움인 줄 알았다가,
지금은 그 모든 크고 작은 싸움이 작업을 하는 나 스스로에게 와 있습니다.
판소리는 대체 무엇일까. 관객을 만나는 일은 대체 무엇일까.
삶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 대상일까.
내게 청새치는 무엇이며, 상어는 무엇일까.


노인 산티아고는 결국 청새치를 잡았지만, 잡지 못했다. 거대한 청새치와 며칠에 걸친 사투 끝에 싸움에서 이겼지만, 피냄새를 맡고 찾아온 상어떼에게 청새치의 뱃살을 뜯기고, 지느러미를 뜯기고, 옆구리를 뜯긴다.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청새치의 거대한 머리와 뼈다귀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노인의 승리는 순식간에 상어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집으로 돌아와 죽은 사람처럼 깊은 잠에 빠진다.


이자람의 판소리는 노인 산티아고가 수제자를 자청하는 니콜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산티아고는 손에 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새벽 2시면 일어나 컴컴한 바다로 향할 것이다. 이자람은 이 극을 만들며 삶은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는 대상인지 궁금했다고 했다. 인생이 주는 일희일비에 어느 날은 희희희희 하고, 어느 날은 비비비비 하며, 어부들은 다음 날 다시 바다로 가고, 소리꾼은 이 판에 다시 서는 것이 이자람이 찾은 삶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우리는 늘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기다리는 것들이 결국은 나타날까."


이제 이자람이 던진 질문은 관객으로 참여한 내 앞에 떨어졌다. 나의 청새치는 무엇이며, 상어는 무엇일까. 어부가 바다로 가고, 소리꾼이 판에 설 때, 나는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고 싶을까.

인생이 던져주는 일희일비에 오늘은 희희희희 하고, 내일은 비비비비 하며, 파도에 넘실, 가볍게 흔들리는 삶. 청새치와 상어 떼가 왔다가 가는 삶. 아침이면 해가 뜨고, 밤이면 별이 빼곡한 삶. 넘실, 흔들리며 내일 또 바다로 가는 삶. 이자람이 끌고 간 소리 속에 더 넓은 바다가 보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몫의 바다와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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