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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rose Feb 28. 2023

자신의 mbti에 만족하시나요?

isfj이길 인정하기로


오랜만에 기분을 전환할 겸, 깔끔한 손톱을 만들면 손을 멀리 뻗어 옆구리가 늘어나는 아사나가 더 멋들어지게 잘 될까 하는 마음에 젤 네일을 받으러 갔다.

이상하게 네일샵 직원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이미 여러 번 본 사이처럼 친밀하게 대화를 하게 된다.

나보다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왠지 언니라고 칭해야 할 것 같은 귀염상 언니와 대화를 하다가 mbti이야기가 나왔다.

서로의 성격 유형이 무엇인지 밝히진 않았다. 왠지 밝히면 나를 알아가기도 전에 다 들키는 것 같아서…


내가 처한 상황, 시기별 나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방법으로는 mbti 검사가 제격이다.

mbti 맹신론자는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과거와 현재의 내가 어떠한 상태인지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좋은 도구다.

어릴적에 검사했을 때는 용감한 수호자 isfj로 나왔는데 나이가 들고 사회에서 이리저리 치여 살 때는 istj가 줄곧 나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성실하고 정직하긴 하나 참으로 ‘멋’ 없는 성격이다.

어쩌면 isfj 성향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는지도

사교적이지도, 진취적이지도, 강하지도 않다고 생각한 내 성격을 부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사고형 ‘T’와 감정형 ‘F’이 차이는 극명하다.

‘T’ 시절에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위로해 주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조언이 낫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내가 특정 감정(슬픔, 우울, 연민, 몽글몽글한 감동)을 순간순간 느낄 때마다

그것은 연약한 감정이라 스스로 자책하며 약한 모습이길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찬물을 끼얹고 덮어버렸다.

사람 간 관계를 중시하거나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아낌없이 주기보단

겉으론 친절해 보일지 모르나 속에서는 선을 그어 놓고 타인에게 절대로 마음을 주지 않았고

감정적인 문제, 사랑을 논하는 것은 사치(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꺼내는 거 자체도 소름 끼쳐했으니)

돈을 논하는 경제적인 이야기, 단물 빠진 무미건조한 현실적인 결론을 낼 때 왠지 내가 성숙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isfj는 천성적으로 사랑하고, 돌보고, 이해하며 수용하는 유형인데

무미건조했던 내가 감정지향형인 ‘F’ 성향으로 다시 회귀하여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귀감이 돼준 사람은

첫째가 남편이고 둘째가 작년에 만났던 담임반 학생들이다.

남편은 사랑해라는 말을 연애 때부터 입에 달고 살았다. 너무 남발하는 것 같아 감흥이 없어져 단어의 효용이 오히려 떨어질 정도로.

정말 이 순간, 혹은 이 사람이 정말 정말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들 때, 사랑하는 것 같다는 감정이 넘쳐흘러 벅찰 때 비로소 그때 할 수 있는 말이 사랑해가 아닌가라고 생각해 왔었다.

근데 실제로 그런 벅찬 감정이 들 때, 오히려 입가에 미소만 지을 뿐 아끼고 아꼈던 사랑이라는 단어가 속으로만 삼키게 되어 입 밖으로 절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리고 남편이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는 것을 보고는,

또 담임반 학생이 나에 대해 뭘 안 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막 해대는데 나도 안 할 수가 없더라.

그리고 무뚝뚝한 내가 그 말 한마디를 하니 엄청 좋아하더라…

꼭 사랑한다는 말을 희소하게만 써야 하는 게 아니구나,

이걸 가랑비 옷 젖듯 몇 년의 세월을 걸쳐서 배우게 됐다.


내가 가장 무너진 순간, 날 옥죄어 오던 가장 힘들게 한 요인이 ‘감정’이었는데.

이놈의 감정을 컨트롤하려고 갖은 하소연을 하며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고 수많은 책을 읽었다.

이제까지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얕보고 소홀히 대했던 대가였을까.

현대 사회에서 중시하는 실질적 효용과 이익에 눈이 멀어

인간이 특별하게 누릴 수 있는 사소한 감동, 애정, 연민, 사랑 등의 간지러운 감정에는 내 지분을 주지 않았다.

지분을 주고 싶다가도 마치 철없는 어린애가 되는 것 같아 겉만 어른 행세를 한 거지   


그래서 결론은. 결국 내 예전 mbti였던 isfj로 돌아오게 됐다.

예전엔 마냥 착하고 호구 같이 느껴졌던 어릴 적 내 성격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젠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상과 현실적인 내 모습에는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람이라면 어느 부분에서든 약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했고 내 스스로 그것을 드러내는 데 부끄럽지 않은 정도는 됐다.

글을 쓰는 것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이제는 가식을 떨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됐다.

아직도 팔에 닭살이 돋거나 볼이 붉어지고 쑥스러운 순간들은 있지만

그런 순간이 싫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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