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rose Mar 15. 2023

결혼 5년 차, 헬조선에서 탈딩크 하려구요

임식, 육아, 출산도 마음먹기에 따라 달린 것


딩크였던 이유

 성인이 된 후로 가족 혹은 지인들이(남편은 제외) 나에게 이것 좀 해보라고 무언가를 진지하게 권유했을 때, 바로 마음이 동한 적이 별로 없다. 호기심이 가는 제안이라면 뒤에서 자료 조사를 한껏 해보고 행동에 옮겼을 건데 그랬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임용을 준비하게 된 것도 아무도 하라고 안 했는데 눈치껏 결심했다. 수개월 전, 남편이나 친구들이 요가나 명상을 시작해 보라고 했을 때는 그닥 끌리지 않아서 시작하지 않았었는데 최근에는 요가에 아주 빠져 산다. 동료 선생님들이 남친 있어도 소개팅을 해보라 했을 때 별로 호기심이 가지 않아 모두 거절했다. 남편이 취업을 하자마자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도 아, 지금이면 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섰을 때였다. 생각보다 빠른 결혼 결정에 어른들이 되려 놀래셨다. 이젠 엄마든 남편이든 난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거라 뭐든 강요를 안 한다.

2년 전에는 친정을 비롯한 주변 어른들이 임신에 대해 약간씩 눈치를 주셨는데, 나의 무의식은 한창 거부 반응을 일으켰었다. 난 내 자유의지가 매우 중요한 사람인가보다. 하여튼 결혼할 때부터 앞으로 근 5년간은 딩크로 살겠다고 여기저기 떵떵거리고 다녔었는데, 호기심 많고 변덕스런 내 결심이 5년 뒤에는 혹시라도 바뀔지 모르니까. 나도 나를 안 믿었지. 생각보다 난 나를 잘 알고 있는 듯.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면 아주 다양한 학부모들을 만나게 된다. 나이스하고 젠틀하신 학부형님들도 있지만, 학교를 뒤집어 놓겠다 협박을 일삼거나 돈에 눈이 멀어 피해 보상만을 요구하시는, 자녀 혹은 학교 일에 관심 1도 없으신 학부형님, 본인은 바빠 죽겠는데 자녀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감시하고 핍박하며 잘못된 육아를 시전하시는 학부형님 등등. 그 밑에서 자란 안하무인의 수많은 학생까지 포함해서 학교에는 상식 이하의, 이해 가지 않는 사람들 투성이었다.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는 도대체 어떻게 될까 싶은 나름 진지한 고민도 해봤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운다? 내 아이도 그들과 다르지 않고 악랄할 수 있거니와, 혹여나 내 아이를 그런 극악무도한 아이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하게 할 수 있을까? 돈도 많이 드는데 애써 키웠더니 애가 멀쩡하지 않은 상태면? 또는 만약 장애가 있는 애를 낳으면 어쩌지? 각종 두려움이 몰려오면서 애초에 사서 고생하지 말자 주의였다.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

언젠가는(난임 일 수도 있으니까 언젠가는) 아이를 낳아보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아무도 나에게 애를 낳으라고 보채지도 않는 시점에서 내린 결론. 심지어 요즘은 애를 낳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런지 ‘이제 애 낳아야지~’라는 선 넘는 말들이 쏙 들어갔는데, 왜 나는 청개구리처럼 이제서야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게 됐을까.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결심을.



친구가 쏘아 올린 엽산 선물

 나보고 애를 낳으라고 압력 넣기 위해 엽산을 선물로 준 건 아닐 거다. 다른 선물도 함께 받았으니까. 그 친구를 포함해서 주기적으로 모이는 3인방 친구들이 있는데, 딩크였던 나를 제외한 2명은 모두 아이를 가질 생각이 당연히 있는 친구들이었다. 둘이 하는 이야기를 유심히 듣기도 해보고, 술을 좋아하던 친구가 임신을 하더니 미련 없이 금주를 하는 씩씩한 모습을 보고는 은근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챙길 것도 희생할 것도 많아지는 문제임에도 기꺼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습들이 용감해 보였다. 난 또 멋있는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때부터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난 멋있어지고 싶으니까. 임신을 준비할 때 꼭 챙겨 먹는, 태아의 뇌 기능과 신경 발달에 도움이 되는 엽산이라는 것을 생일 선물로 받고 나서 기분이 묘했다. 선물로 받은 영양제인데 먹긴 먹어야 해서 매일매일 챙겨 먹긴 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엽산이란 영양제가 꼭 임신 준비할 때만 도움이 되는 영양제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꼬박꼬박 챙겨 먹다 보니 임신이라는 것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더라. 이때까진 순전히 호기심이었고 그때부터 관련 정보들이 시야에 쉽게 들어왔다.



유튜브 덕분에 막연했던 두려움이 해소됐다

 내가 딩크였던 이유를 요약하자면 그건 다름 아닌 ‘두려움’ 때문이었다. 얼마나 내가 힘들어지고 고통스러워질지, 내가 얼마만큼의 커리어를 희생해야 할지 그 무게가 너무 클 것 같아 가늠이 안 됐다. 오히려 육아라는 분야에 대해 제대로, 깊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리원 비용부터 육아 용품, 도우미 비용, 사교육비까지 하면 돈이 어마무시하게 들겠구나 싶었고, 육아는 너무 피곤하고 성가시며, 아끼며 사는 것이 익숙한 나는 끝까지 딩크 입장을 고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평소 즐겨 보던 유튜브 채널들이 많은데 그중 20대 후반-30대 유튜버들이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게 되거나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어 공동육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유튜브가 없었던 우리 윗 세대들은 남들이 어떻게 출산하고 육아하는지 알기 위해서 책을 보거나, 인터넷 포털에 검색해 단편적인 사진이나 글로 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유튜브 브이로그 영상에 모든 정보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내가 신뢰하고 좋아하는 인물들이 알려주는 정보들, 예를 들어 임신 기간 입덧을 비롯한 힘든 부분들, 출산의 고통, 주기별 육아 방법, 육아템 추천, 정부 지원금 종류, 올바른 육아 방식 등에 대해 알고 나니 오히려 걱정을 미리 대비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맨땅에 헤딩하는 건데, 각종 정보들을 자연스럽게 미리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고, 나라고 못할 거 없겠더라.



딩크로 사는 행복은 예측이 가능했다

 즉 일하며 커리어를 쌓고, 계획을 세워 여행하고, 책을 읽고, 투자를 공부하고, 술을 먹고, 맛집을 다니고, 친구 아이들을 봐주고 노후 자금이 넉넉한 그런 삶. 내가 과연 그런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만족할 수 있을지, 그 외에 혹시라도 주어지게 될 도전적인 기회들을 내 스스로 용기 내서 잡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딩크의 삶이 재미가 없다는 게 아니다. 즐겨보는 유튜버들 중에 딩크의 삶을 누리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영상도 매우 많이 접했기 때문에 그 행복 또한 알고 있다. 조용하면서도 관심을 바라는, 겁이 많지만 도전하고 싶은 모순점이 많은 나 같은 성향은 내 안의 애매한 지점을 깨부수지 않으면,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결국 알을 깨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우울하게 살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딩크로 사는 나, 육아를 하는 나를 상상했을 때 조금 나에게 더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쪽이 후자였다. 교육계에 종사하다 보니 오히려 미래에 나만의 사업을 키우고 싶다면 육아를 경험해 보는 쪽이 맞다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시는 부모들을 보다 보면 싱글이었을 때는 발휘하지 못한 굉장히 용감무쌍하고 씩씩한 모습들 혹은 굉장히 체력이 소진된, 고통과 우울 속에서 이겨내보고자 하는 입체적인 여러 모습들을 보게 된다.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자면, 난 이런 과정도 또 하나의 배움, 성장의 과정이라고 본다. 항상 공부하고 메타인지가 잘 되는 부모의 경우에 말이다. 아이를 낳는 순간 부모와 아이는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부모가 완전히 성숙한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 게 아니다. 또한 아이들은 변화무쌍하고 부모가 원하는 모습 고대로 크는 아이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거다. 놓이게 되는 환경, 인물, 사건들의 영향으로 미래의 일은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문제 상황이 닥쳤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한다면 부모도 아이도 함께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학교에는 훌륭한 사람들도 있다

 내가 한참 낙담하고 있을 때라 그런지, 학교 구성원의 안 좋은 점만 부각해서 육아에 대해 희망이 없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도 있다.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선생님들, 구성원들의 안위를 살피는 관리자, 착하고 성실하고 밝은 학생들, 정의롭고 용기 있는 학생들도 물론 있다. 어쩌면 내 아이도 그렇게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있게 키울 수 있지 않을지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그리고 교사로서 아이들을 대하고 업무에 성실히 매진했던 나의 태도를 돌이켜봤을 때, 나 또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거.



좀 더 이상적인 육아를 해보고 싶다.

 현실적으로 많이 어려워진 대한민국 사회이긴 하나, 이 교육계에 발을 들여본 한 명의 교육자로서, 내게 주어진 아이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태도로 육아를 해보고 싶었다. 어렵고 곤란한 상황에 닥쳤을 때 위축되는 나 같은 아이 말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적절한 관심, 존중으로 키워낸 남편과 나 사이의 아이를 만나보고 싶다. 현명한 부부가 돼보고 싶다. 노후를 버리고 사교육비에 몽땅 투자하는(우리 노후 준비 때문이라도 그렇게 못한다), 아이에게 꼭 입시 공부가 전부인 것처럼 주입하지 않고, 실정에 맞는 소비를 하는 것. 건강한 정신으로 무장시켜서 공부든 사업이든 본인 스스로 인생을 건강하고 주체적으로 해쳐나갈 수 있게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유년기를 지내볼 수 있도록 내 자녀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싶다. 중산층의 우리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넘치게 살지 않으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다.


꽤나 무모한데, 이상한 승부욕이 생긴다

 검색 포털, SNS, 유튜브 등 그 많은 곳에는 ‘출산을 하지 말아야 하는 100가지 이유’에 대해 지나치게 잘 나와있다. 심지어 조회수도 매우 높은 데다 댓글창을 보면 딩크 혹은 비혼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열렬히 그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댓글창을 보다 보니, ‘아이와 함께 사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의 댓글의 대댓글들이 장난이 아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 얻는 게 그 행복뿐이냐며. 싱글 혹은 딩크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혼, 듀크(맞벌이하면서 육아하는 부부)를 가엽게 여기는 마음을 굳이 굳이 일일이 적어내며 ‘나는 너네처럼 돈 쓰고 희생하고 사는 그런 바보 같은 짓 안 할 거야. 그 돈 다 나한테 투자할 거야 부럽징?’ 이라며 본인들을 치켜세우고 남을 깎아내리는 우월감을 글에 투영시킨다. 이런 힘든 시기에 아이를 왜 낳냐며 바보 취급을 하고 있다. 너어어무 열이 받는다. 아직 임신 시도도 하지 않은 내가 볼 때도 열불이 나는데 아이 있는 부모들은 얼마나 속상하고 울화가 치밀까. 출산은 본인의 상황과 가치관에 맞게 이행하는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물론 현실 사회가 거지 같은데다, 근거가 부실하고 중심이 잡히지 않은 학부형들의 무자비한 사교육에 대해서는 나 또한 반대하는 바이다. 아이를 낳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진 않을뿐더러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의 정답이 아니다.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건강한 개인들이 해결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예로부터 번식은 인간의 본능임에도, 이 시대 우리는 본능을 거슬러서 자신의 인생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들에 용기 있게 반기를 든다.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가 팍팍하면 이러는지. 행복 지수, 출산율, 자살률 등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실정이다. 사람은 이러나저러나 살다 보면 결국 어릴 때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점점 더 힘든 일에 내몰린다. 고생 끝이라고 생각하면 다음 고생이 어느 순간 눈앞에 다가와 있다. 끝도 없는 퀘스트를 달성해 내야 하는 게임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다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의지로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임신, 출산, 육아라는 퀘스트에 합류하고자 하는 거고.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라는 것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자주 되네이고 업데이트 시키며 살아갈 것이다. 겸손하게, 보다 계획적으로 대비하고, 보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마음 가짐으로 살아보자.  

작가의 이전글 3월은 새로운 시작의 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