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rose Aug 27. 2022

[생각노트] 해방감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되는 방법을 깨달았다.

평소에 노력은 했으나 실제로 경험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릴 적부터 평균 이상으로 외부적 요인에 예민했으며 지금까지 살면서 항상 긴장한 상태로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일전에 몸이 너무 지쳐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이끌리듯 한의원에 간 적이 있는데 스트레스 지수가 굉장히 높게 나온 적이 있다. 원래 체질이 그렇다나.(기억해보면 1년에 한 번씩 학교에서 도망치듯 나와 울면서 병원에 갔었다) 한의원에 갔을 때도 의사 선생님한테 내 증상을 이야기하면서 울음을 터뜨려 의사를 당황하게 만들었었지. 그날 한약 값만 생각지도 못한 50만원이 나왔는데 나를 불쌍하게 여기신 의사 선생님께서는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환을 서비스로 주셨다. 금액에 순간적으로 흠칫함과 동시에 동네 손님도 많지 않은 한의원도 약 드럽게 비싸다며 속으로 투덜댔다. 실제로 그 약이 효과가 있었는지 정확이 알 수는 없지만 그때 그렇게 한의원을 다녀온 이후로는 괜찮아졌었다.  

 

내가 인생을 살아왔던 태도를 돌아보았다.  것이든 작은 것이든 목표가 있고 해야  미션 리스트가 있으면 미션을 하나 둘씩 클리어하기 급급했고 리스트 길이가 줄어들면 계속해서 추가했다. 그런 식으로 살아와서 그런지  정신과 신체의 구체적인 상태를 객관적으로 느낄 틈이 없었다.  식습관은 건강한지, 내가 적당한 속도로 걷고 있는지, 내가 무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떤 행동을 해야 오롯이 편안한 상태가 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고  관심 밖이었다.

바쁜 일이 없음에도 신호가 바뀌면 빨리 뛰어가 건너가는데 급급했고

머릿속은 당장 혹은 내일 해야 할 일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다소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하고 대부분의 모든 일을 잘 해내려 노력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이게 내 성격이니까 바뀔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최근에 이슈가 됐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나서는

어쩌면 나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왔다. 과거 바보상자라고 불렸던 매체에서 나오는 드라마가 내 사고방식에 이렇게나 큰 영향을 줄 줄이야.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몸소 체험했다.

힘을 빼고 천천히 걷는 것부터 해서, 움직이는 나의 팔과 손 그리고 다리를 느끼기 시작했다.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감각이 일종에 ‘명상’을 통해 얻는 효과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매트를 펴고 가부좌 상태로 눈을 감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도해볼 수 있는, 명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이다.

내가 할 수많은 일들 중에 당장 어떤 한 두 가지의 일을 못하고 실수하더라도 내가 걱정하는 것만큼 큰일이 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이와 같은 경험을 하고 나서는 비슷한 상황을 두고도 그것에 대해 드는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다.

학기초 새로운 학교로 출근할 때는 낯선 환경과 학생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으나

막상 생활을 해보니 이전 소규모 학교에서 일하던 때보다 지금 다니는 곳이 규모가 큰 학교라 일하기 훨씬 수월한 요소들이 많았고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알게 됐다.

어떻게 된 일인지 학급 아이들도 나를 잘 따르는 편이었다.

중학생이라면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해도 미워보이고 생각하고 곱씹을수록 마음에 가시가 돋치곤 했는데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나서는, 나를 따르는 착한 아이들을 보며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으며 신뢰 관계를 쌓고 서로를 애정할 수 있었다.


최근 그림 그릴 작업실을 구하고자 하는 막연한 작은 소망과 바람에서 시작해서

나보다 계산 능력이 좋은 남편의 설득력 있는 부추김으로

계약한 차를 취소하고 월세 사무실까지 계약하는 내 딴에는 크나큰 용기를 내었다.

작업실을 채울 물건들을 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과거의 나였다면 돈 때문에 시도도 해보지 못했을 일인데 내가 원하는 것을 실현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가족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졌다.

어버이날을 기념해서 어머니와 아버님과 식사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행복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와인을 곁들인 것도 있었겠지만)

결혼 전에 많이 듣고 걱정했던 소위 시월드에 대한 선입견과 답답함이 한 번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예민해하지 않고 생각을 조금 덜어 뇌와 마음 어느 한 켠에 여유가 생기니

그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귀 기울여 들으며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의심하지 않으며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공감해드리는 순간 내 마음이 충만해지는 걸 느꼈다.

나와 남편을 묵묵히 믿어주시는 마음을 느끼고는 정말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 여행 이야기가 나와도, 원하시는 대로 언젠가는 꼭 모시고 해외여행 가야지 싶었다.

어른을 모시고 여행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으나

이렇게 훌륭한 남편을 키워주시고 딱히 잘해드리는 것도 없는 나를 믿어주시는 아버님, 어머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라면 가족 여행 얘기가 나오는 순간, 흠칫함과 동시에 내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는 생각, 내가 여행을 가서 해야 할 역할과 일들에 대해 떠올리며 미리부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회의적이고 비판적이었던 내가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했다.

심적으로 좋은 상태가 되고 여유를 알게 되어 행복한 상태라는 것을 체감했다.


친정 엄마와 아빠와 식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좋은 장소, 맛있는 식사를 행복하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웃으며 할 수 있는 상황이 굉장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오글거리게 생각해서 시도조차 할 수 없던 대화의 주제들도 편하게 이야기하게 됐고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 부부 생활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었다.


내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세상에 궁금한 것들이 많아지고

주변 사람들과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아름다워 보이면서

좋은 날씨에 감사까지 하며

무엇보다 내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아직 어리지만, 행복이란 것은 분명 이런 것일 거다.

마음이 평온하고 심장이 긴장하지 않으며

머리가 비워져서 멍 때리더라도 그것이 마냥 행복하며

혼자가 되어도 생각보다 힘들거나 외롭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드는 것.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살만하고

생각보다 살기 어렵지 않으며

사람들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으며

생각보다 비관적이지 않다.


내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다


이 사실 자체가 나에게 희망을 준 것 같다.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이 행복감이 깨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 이때를 기억함으로써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

.

.


불과 한 달 전에 썼던 글이다.

이 글을 곱씹으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덜어내고 힘을 내는 중이다.


글쓰기를 해야하는 이유가 다시금 명확해진다.

오늘 밤도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건강한 기운이 깃드는 내일 아침을 맞이하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 [책추천]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