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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rose Aug 28. 2022

무력해지는 교직 생활

교사를 비롯해서 다른 회사 직장인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하는 여러 일들이 스스로에게 진정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품처럼 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교사라고 그렇게 다르지 않다. 요즘 학교는 교육 기관이라기보다는 보육시설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학생을 일과 중에 무사히 보호하고 무사히 하교시키는 것이 목표랄까.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나는 훌륭한 교육자가 되어서 학생들의 바람직한 인성을 길러주고, 지식을 효과적으로 학습시키는 방법을 활용하여 지성을 겸비한 학생들을 양성할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교단에 서서 열심히 강의를 하는 장면들을 교육학 강의를 들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그러다 보니 2~3일에 한 번은 꼭 학교를 배경으로 한 꿈을 꾸곤 했다.


내가 교사라는 일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학생의 성장을 이끌어 줄 수 있다는 희망찬 기대들이 교직 생활을 하며 해를 거듭할수록 약해져 갔다. 어느 정도 내 능력 부족도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효과적이라 입증된 다양한 교육 방법론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그것들을 수업에 적용해서 테스트해보기에는 당장에 닥친 풀어야 할 생활 속 난제들이 참으로 많았으며 그것은 내겐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었다. 차라리 임용 과목에 학생 지도 현실적 방법론을 배웠으면 짐작이라도 했을텐데, 사회생활은 해본 적 없을뿐더러 학교가 지금처럼 민원처리 시설 인지도 모르고 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 교사도 공무원인데 다른 공무원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짐작을 했어야 했다.


학생들의 태도가 변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여서 그런지 몰라도, 학생들은 서로를 돕고 돕는 관계지향적인 태도나 도덕성을 추구하기보단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방어 기제도 굉장히 강해졌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서 일 삼기도 한다. 또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이기적인 방식으로 사고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지도를 해봤자 학생들은 속으로 계속 물음표를 가진채 한 귀로 흘리곤 한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자기를 방어하는 만큼 진정으로 멘탈이 강해졌는가? 그것도 아니다. 외부 스트레스 요인에 굉장히 취약해짐과 동시에 이를 스스로 견디지 못한 나머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특히 작은 소음이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서, 짝꿍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들어 자리를 바꿀 때마다 다시 바꿔달라 한다던지,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수업을 듣기 위해 참아내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바로 조퇴를 시켜달라고 한다. 한 명이 조퇴를 하면 그걸 보고 나머지도 우르르 조퇴를 하기도 한다.

 

교사에게 어떤 힘이 있는지 모르겠다. 교권 추락으로 인해 좋은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지도를 한다 해도 그런 교사를 진정으로 믿고 따르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몇 없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처참히 밟힌다. 사소한 언행도 민원의 소지가 다분 할 가능성이 있어 계속해서 검열하고 방어적인 태도로 조심하다 보니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소신 있는 발언도 주저하게 된다.

하루 동안 발생하는 학생 관련 사건 사고를 말 그대로 ‘수습’ 하기 바쁘고

학부모와 학생들이 요구하는 사소한 것부터 과도한 책임을 요구하는 민원들을 처리해야 하며

정신적, 신체적으로 유약해진 학생들에게 진심을 다해 상담을 해줘도 감사해하는 학생은 손꼽는다.

맞벌이로 바쁜 학부모들은 여유가 없어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가정교육까지 학교 담임에게 미루기도 한다.

그 와중에 공문에 점을 잘못 찍거나 사소한 오타가 났다고 연락이라도 받는 순간 짜증이 확 밀려온다.

세상에는 이보다 중요한 일들도 많은데 여기서는 그 작은 글자 실수도 큰 일 난 것처럼 지적해서 뭐하나 발견해 큰 거라도 해결한 것 마냥 속 시원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학교 일은 실수가 일어나도 웬만해서는 수습 가능한데 뭘 그렇게 빡빡하고 깐깐하게 구는지 여간 나랑 맞지 않다.


학교는 학생들을 일과 시간 동안 교육하고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규칙이 있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규칙을 어기고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는 학생들은 벌을 받아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학습해야 마땅하나 이런 생활지도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학부모가 허락을 하지 않으면 학생에게 벌을 주는 것도 어렵다.

여학생을 은근하게 스토킹 하듯이 따라다니는 남학생의 문제 행동에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도, 아들의 원래 기질이 그렇다며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A B 여학생끼리 오해가 생겨 우정에 금이  후로 쳐다만 봐도 째려본다 생각해서 지나치던 길에 머리채를 잡고 싸워 A 얼굴에 상처가 나는 일이 있었다. 그걸 목격한 친구   명이 폰을 소지하고 있어 A 어머니께 먼저 전화를 드려 사실을 먼저 알게  상황.   담임은 수업하랴,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구체적인 상황 설명 들으랴 바빴고 일과가  끝난 후에 전화를 드렸는데  이제야 전화를 하냐며 화를 버럭 내고 담임이 책임을 물으란 식으로 나와 곤욕을 치른  있다.


교사들은 학교의 정해진 규칙에 따라 용의 복장 지도를 하지만 말을 안 듣는 학생들이 당연히 있다. 딸이 교외에서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데 학교에서는 신발 지도를 하는지 묻는다.

어떤 학생은 오래된 음식을 가지고 와서 친구에게 나눠주고 으며 재밌어하기도 한다. 학생에게 식중독의 위험성에 설명해도 이제까지   적이 없다며 음식을 압수한 것에 대해 납득 하지 못한다.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에게 큰 소리를 내면 아동학대고 수업 방해 행동을 해서 교실 뒤로 보내면 학습권 침해이다. 교사의 수업권도 보호받아야 하기에 수업 중 사용을 금지한 핸드폰을 어떤 학생이 몰래해서 압수를 하면 자신의 민폐 행동에 반성 하나 없이 자신의 물건을 왜 빼앗냐며 인권 침해라 한다.


교직사회를 경험하고 나서는 초반 열정 가득했던 교사들이 왜 점점 무기력해지고 적당한 수준에 타협하며 사는지도 알겠다. 그런 모습을 보는 다른 사람들은 교사를 비난하고 공교육이 이래서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 반응을 보면 더욱 무기력해진다. 공교육 시스템이 문제도 있겠으나 내가 그 시스템을 바꿀 순 없다.

이제 나는 높은 등급의 성과급을 받으려 노력하지 않는다. 수업 중 방해를 하는 남학생을 시간을 쏟아 혼내거나 설교, 설득을 하기보단 포기하고 무시하게 된다. 거기에 쏟을 만한 신경과 에너지를 아껴서 내 정신 상태를 회복시키는 데 투자한다.

그래도 내가 맡은 담임반 30명은 최선을 다해 보호하고 애정하고 신경 쓰고 있다. 딱 거기까지.


교사의 좋은 점을 생각해보자면 세 가지가 떠오른다.

웬만큼 잘못하지 않는 이상 잘리지 않는 것

10년 이상 근무하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것

신체적, 정신적으로 미칠 것 같은 시기쯤 찾아오는 방학이 있다는 것


이 무력함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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